유쾌함이 내 재능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내 안에는 예능 DNA가 아주 진~하게 흐른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면 내 안의 예능 DNA를 마음껏 꺼내 드러낸다.
나를 보며 즐거워하고 다음을 기대하는 그들 모습에, 난 더 신나서 날개를 단 듯 내 모든 끼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가끔은 나도 내가 너무 재밌어 죽겠다.
' 아, 어쩜 거기서 그런 말이 나왔지? ' 하며.
고등학교 친구 K도 그중 한 명이다, 18살부터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누구보다 좋아해 준 사람.
그녀는 지금도 가끔 우울할 때면 전화를 한다.
'모모야, 아무 얘기나 해줘. 너 얘기 들으면 나 기분이 좋아져'
어쨌든, 때는 고3 어느 날 쉬는 시간이었다.
나는 '전날 슈퍼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아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너무 별것도 아닌 이야기였지만, 당시 내 머릿속에서는 그게 아주 큰 하나의 ‘서사’였다.
그날도 내 말을 흥미진진하게 듣던 K가 말했다.
“모모야, 너 진짜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 같아.”
“내가? 무슨 재주?”
“진짜 별거 아닌 얘긴데 네가 말하면 너무 재밌고 특별한 얘기 같아.”
두 가지가 동시에 충격이었다.
하나, 이게 별거 아닌 이야기였다고? 이건.. 진짜 별 건데!
둘, 내가... 재밌게 얘기한다고?
돌이켜보면 나는 내 일상에 약간의 상상과 해석을 덧입혀서 말하는 편이긴 했다.
논픽션과 픽션의 중간쯤, 그런 지점.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K의 그 말이 내가 가진 재능의 첫 단서였다.
언젠가 한참 이민을 알아본 적이 있다.
진심으로 이민을 가려한다기보다는 일탈이 필요했던 것 같다. 마음으로나마.
최종 후보를 캐나다와 말레이시아로 정하고,
과연 멀로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에서는....
목공기술이 메리트가 있다고 하니 신랑은 그걸 하면 되겠다, 거긴 중장비 기사도 꽤 벌이가 괜찮다고 하던데, 중장비 면허를 따라고 해야겠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에어컨 수리공이 괜찮다고 하니 신랑한테 에어컨 수리하라고 해야겠다.'
손재주도 많고 기계도 잘 다루고, 빠릿빠릿하고 야무지기까지 한 신랑은 할 일이 그래도 많았다.
문제는, 나는..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딱히 요긴한 재능이 없었다.
기껏 생각해 낸 것이, 당시 요가를 3년 가까이하던 터라 요가 강사, 그것도 젊은이 대상은 자신이 없어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요양원 요가 강사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쓸모가 없을 줄은 몰랐다.
좀 충격이었다.
내가 되게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무능하거나 뒤쳐진다고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아니, 사실 난 가끔은 내가 유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물었다.
' 내 재능은 머지? 내가 잘하는 건 멀까?'
근데 이제 알겠다.
내 재주는 바로 이 '예능 DNA'인 것이다.
사람들은 나랑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단다.
내가 오면 주변이 밝아지고 활기차진단다.
말을 재밌게 해서, 함께 있고 싶단다.
아, 이거다!
경제적으로도, 눈에 드러나는 성과도 아니지만 말이다.
나의 예능 DNA 덕분에 내 인생의 대부분은 시트콤처럼 흘러간다.
신랑은 종종 마음이 어두워지곤 하는데, 내 '장기'덕에 그늘이 좀 빨리 걷히기도 한다.
삶을 돌아보건대, 제법 무겁고 버거운 일들도
이 '유쾌함'덕에 조금은 가볍게 넘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몇 년 뒤면 오십이 된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큰~ 어른이 돼서 좀 큰 생각을 하고 깊은 통찰을 하며 인생이 진중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별 것 아닌 일로 울고 웃고 감동한다.
아마 호호할머니가 되어도 이렇게 살 것 같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맛으로,
별것 아닌 일에 설레고 감동하며.
돌아보니,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건, 바로 이 '유쾌함'이었다.
그 힘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힘으로, 나답게 천천히 웃으며 살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