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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스터디 Jul 11. 2022

대치동 안도와 불안과 두려움 그 어딘가

초등 고학년 대치동 입성기

“휘”


199*년  3월,


대학교 캠퍼스는 새내기들이 입학하며 활기가 넘쳤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입학했던 9*년도의 3월은 세상의 싱그러움이란 싱그러움은 다 가져다 놓은 것처럼 기쁨이 새어 나오던 젊음의 공간이었다.

교문 앞 게시판마다 빨간 글씨로 쓰여있던 ‘휘’라는 글자.

휘문고에서 동문 모임을 알리는 대자보였다.

고등학교마다 동문회 대자보를 붙였지만, 그 시절 내 눈에 깊게 각인된 건 바로 휘문고의 빨간 글씨였던 것 같다.

락카로 쓱쓱 뿌려 다른 구구절절 설명 없이 ‘휘’라는 글자 하나로 알리는 모습에서 자랑스러워함이 보였다고 할까.


​경기도의 인문계 고등학교, 내가 입학했던 대학교에는 전교생 통틀어 문과 한 명, 이과 한 명 사이좋게 두 명이 입학을 해서 동문회는 언감생심이었다.

내가 자라온 환경,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노력하면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믿었던 어린 시절.

애써 고등학교 동문 따위가 무슨 상관이냐며 쿨한 척했지만 소위 서울의 명문 고등학교의 힘에 부러움을 느꼈던 첫 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대치동으로 이사



지금 이사 온 우리 집에서 코엑스 쪽으로 슬슬 걸어서 넘어가다 보면 휘문고등학교가 보인다.

그제는 휘문고등학교를 보는데 예전 부러움에 빨간 대자보를 바라보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엊그제 입학한 것 같은데.. 그게 벌써 이십여 년 전.

그동안 나는 대학에서 만난 친구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벌써 그 아이가 올해 6학년이 된다.

​​

대치동으로 이사는 올해 1월. 아이의 5학년 학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3월에 6학년 신학기 맞춰 이사를 왔다. ​​

아이에게 또래 친구도 없고, 나도 동네 친구 하나 없이 덩그러니 놓인 이 상황.

대치동의 빠른 진도와는 완전 별개로 마이웨이를 걷고 있는 아이의 학업 상황.

어디에서 정보를 얻어야 할지, 아이는 어떻게 적응을 시켜야 할지 막막한 상태다.

​​


적어도 학습 공백이 있으면 안 되니 국어 영어 수학 학원은 어떻게 찾아서 넣기는 했는데, 누군가 맞장구 쳐주며 이게 최선이었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


그래도 이사 와서 두 달, 글로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이제 조금 살만해졌나 보다 싶다.

이 글은 우리 딸도, 남편도 읽지 않기를 바라며 쓰는 글.

답답한 마음이 들 때, 아니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하나씩 남겨보려고 한다.





대치동 와서 안도한 것


대치동에 와서 좋았던 점 중에 하나는 공부하는 아이들이 당연해 보이는 분위기라고 하겠다.

검은색 롱패딩을 입은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학원으로 이동하고, 도로에는 아이들을 픽업 혹은 드롭하는 차들로 가득하다.​

어둠이 깔려 걱정되기도 할 시간인데, 학원가의 앞 도로는 이보다 더 안전할 수 없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일탈은 버블티, 올리브영 화장 코너 그리고 아트박스 정도.

길을 걸어가면서도 손에 들린 메모장을 보며 공부하는 아이들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 동네.



예전 거주하던 곳에 중학교가 앞에 있었고, 큰 상가가 있었다.

그곳에는 늘 삼삼오오 아이들이 몰려있었고, 어김없이 담배를 피우는 무리들과 풀메이크업을 한 어린 여학생들이 모여있었다.

솜털도 가시지 않아 보이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에 걱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우리네 어릴 적과 너무나도 변해버린 세대를 그대로 인정해야 는 건가 고민이 많았다.


​​

이사를 오고 너무 감사한 것은 내 기준으로 걱정스러워 보이는 아이들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가끔 한껏 멋 부린 아이들도 보이지만, 크게 떠들고 욕설(?) 비슷한 것을 하는 아이들도 보이지만 모두들 삼삼오오 모여서 학원을 간다.​​

으슥한 골목길을 걷게 되었다. 저 멀리 편의점 앞에 덩치 큰 남자아이들이 대여섯 명 모여서 웃고 있었다. 손에 들린 길고 가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역시나 여기도 담배 피우는 아이들이 있구나 혼자 생각했더랬다.

가까이 갔을 때 아이들 손에 들린 것이 핫바라는 것을 알고 혼자 속으로 얼마나 안도하고 웃었는지 모른다.

​​

잘 활용하기만 하면 너무나도 안전하고 든든한 방패가 될 수 있는 공간임에 틀림없다.



불안과 두려움


​주말에도 집 앞에 가득한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리 아이는 괜찮은지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


남편도 나도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곳을 나왔고, 공부를 하기 싫어서 안 해본 경험, 못해본 경험이 없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건강하게 자라기를, 인성이 올바르기를 바랐고.. 또 아이 초등 저학년 때 남편 회사 일로 3년간 외국 생활을 하게 되어 그곳에서 적응하며 외국의 자유분방한 학교 생활과, 너도 소중하고 나도 소중하다는 아이 존중 문화를 깊.. 게 흡수하며 살았다.


한국에 4학년 때 복귀하게 되었는데 그때 느낀 당혹감이란. ​

이 얘긴 나중에 또 생각날 때 쓰기로 하고..


​​​


결론적으로 우리 아이는 선행이 전혀 안된 현행 하는 수준.

공부 잘했던 부모의 문제는 아이가 공부를 못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만.. 이 아니고 경험해 보지 않은 무지에서 오는 결점이라고 치자.

아이가 학교 수학 시험에서 70점대를 맞아왔을 때 그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말로는 인성이 중요하다, 공부 못해도 된다, 다른 잘하는 것이 있으면 된다 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아이를 향한 실망감으로 휩싸이고 있었다.


입으로는 괜찮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 하였지만 나의 흔들리는 눈빛과 실망하는 표정을 섬세한 딸은 알아챘을 것 같다.

​​


이런 상태로 대치동에 와도 되는 것일지, 괜히 잘하는 아이들과 비교해서 자존감만 떨어뜨리는 것이 아닐지.

그렇다고 무조건 푸시한다고 공부가 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 공부는 자기 몫인 건데​

대치동의 환경의 부작용이 분명 예상되기에 이사 결정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치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있는 이곳.

대한민국에서 욕 제일 많이 먹는다는 이곳.

그래서 이 글을 아무도 읽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고.

​​​


방 두 칸 작은 집 , 고민 끝에 이사 온 이곳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결론도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본 글.​​​



낼모레 개학이다.

새로운 학교에 들어가는 울 딸에게 만남의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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