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콧물의 수학
저녁 7시 30분,
수학학원 끝나고 집에 진작 도착해야 할 아이가 아직 소식이 없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아 학원에 전화해보니, 아직 시험을 보고 있다고 하셨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정리하는 성취도 평가 날인데, 무슨 일인지 늦어진다.
저녁 7시 40분,
거의 한 시간이나 늦어지는 아이가 걱정되어 학원 앞으로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학원 앞에 다 왔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낯익은 어린이 한 명이 나온다.
딸아이 이름을 부르며 가방을 들어주려는데, 어깨가 들썩들썩거린다.
눈물 콧물 범벅으로 학원을 나온 아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를 나누며 집으로 오는데, 울먹이지.. 마스크는 썼지.. 길가에 차들은 계속 빵빵대지 도통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아이의 말을 들어보았다.
“ 시험을 봤는데 정말 나는 세 번 확인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너무 점수가 낮게 나왔어.
남아서 틀린 거 풀고 가도 된다고 해서 남아서 하는데 또 틀리는 거야.
다음반 애들이 나 풀고 있을 때 지나갔는데 고등학교 진도 하는 6학년애가 이거 너무 쉽다고 하고 지나갔어
심지어 우리 반에 백점도 나왔어.”
중1-1 심화 과정을 반타작하고 나온 아이의 절절한 눈물에 짠한 마음이 들었다.
“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마.
사람마다 빠르게 진도를 나가는 사람이 있고 느리게 가는 사람이 있는데 중요한 건 골인 지점까지 누가 정확하고 제대로 해서 가느냐인 거야.
OO이가 지금 하는 과정이 다른 애들에 비해 늦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걸 제대로 하고 가면 절대 늦은 거 아니야.”
“나만 못하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
“하지만 OO이가 속상한 게 여러 번 확인했는데도 틀린 거에 있구나.
한번 차근차근 친척동생한테 설명한다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을 써보는 건 어떨까?
엄마가 어디서 봤는데 OO 같은 MBTI를 가진 친구들은 직관적으로 문제 해결 방법이 보이기 때문에 중간 과정을 뛰어넘고 바로 끝으로 가버린대.
그러면서 잔잔한 실수들이 생긴다고 하더라고.
수학은 아주 작은 실수 하나가 있어도 틀린 답이 나오는 과목이잖아.
그러니까 귀찮아도 처음부터 하나씩 건너뛰지 말고 한번 풀어보자”
밥도 안 먹고 틀린 문제를 풀어보겠다며 울고불고하던 딸은
생각보다 화를 안내는 엄마의 태도에 안심이 된 건지, 엄마의 말에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위로를 받았는지
집에 와서 밥을 한 그릇 뚝딱 먹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수학을.. 풀었으면 좋았겠지만, 다음날 학원 숙제를 했다.
아이가 공부로 눈물을 보인 건 처음이다.
워낙 ‘너도 소중하고 나도 소중해, 우리 모두 소중해’를 어릴 때부터 깊게 이해하며 자란 아이다.
옆 친구가 잘하거나 말거나 궁금해하지도 않고, 오직 자기만 소중하던 아이.
자기가 흥미 있는 것 아니면 꼭 잘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아이.
자존감이 높은 건 좋지만, 공부에 욕심도 없고 잘하는 아이를 부러워하거나 경쟁심이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여 엄마 입장에서는 살짝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도 했었다.
대치동에 이사 와서 반 아이들의 허세 (어디까지 진도 나갔다 이런) 와 실력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아이인데, 애써 외면했던 마음이 하나하나 쌓여서 터진 것인지 울분을 토해냈다.
부러운 마음이 당연히 있겠지.
애써 외면하고 있었겠지.
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너무 싫었겠지..
모쪼록 아이의 눈물이 양분이 되어 이눔에 보기 싫은 수학 내가 해버리겠다는 다짐의 기회가 되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