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라이 - 바른청년 무함마드
Ramadan Kareem(라마단 카림. 은혜로운 라마단이 되라는 뜻의 아랍어 인삿말). 뜨거운 태양 아래 땅은 더욱 바짝바짝 마른다. 오전 11시. 벌써 30도에 가깝다. 목이 탄다. 냉장고에 가서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창 밖에서 리어카를 끄는 아저씨에게 괜시리 미안하다. 라마단 기간에 그들은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물 한 모금 먹지 않는다. 오로지 신앙심으로 육체의 한계를 버틴다. 자신을 비워냄으로 신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은 것일까.
햇빛이 쨍쨍. 교실 안은 이미 찜통이다. 우리는 복도로 나와 두 줄로 짝을 지었다. 온 몸을 까맣게 가린 여학생들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을 줄줄 흘린다. 선생님은 두 명씩 짝을 지어주었다. 내 차례가 점점 다가오는데 내가 꼭 마지막에 남을 것만 같다. 아니나 다를까. 세 명이 남았다. 항상 이렇다. 선생님은 우리 셋보고 같이 대화라하고 하셨다. 영어책에 나와 있는 질문을 읽으면 상대가 대답을 한다. 얼굴을 가리는 니깝을 쓴 여학생은 말할 때마다 뜨거운 입김에 니깝이 달라붙는다. 니깝을 떼면서 말하려니 말도 얼마나 느린지. 보기만 해도 갑갑하다. 거기다 단어를 말할 때마다 '음, 음' 추임새를 넣는다. 나는 살짝 짜증이 나려고 했다.
“Jamir, It's okay. Take your time.” (자미르, 괜찮아. 천천히 해.)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무함마드였다. 여학생이 영어 단어가 기억이 안나서 머뭇거리니 아랍어로 가르쳐주었나보다. 여학생은 문장 말하기를 다 마치고 그에게 웃으며 땡큐라 말했다. 친절한 무함마드. 그는 조급해하는 면이 없다. 여학생의 예메니식 영어 발음은 니깝 때문에 더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빙그레 웃으며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영어 단어를 가르쳐주는 태도에 따뜻함이 베어 있다. 남성 우월 사회에서 찾아 보기가 드문 배려심이다. 세네카는 '좋은 농부는 똑바르게 자란 키 큰 나무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의 원인으로 구부러진 나무도 똑바로 서도록 지주를 대준다' 고 말했다. 무함마드는 좋은 농부임에 틀림없다. 각 나무에게 맞는 방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농부.
한참 수업 중에 라미스가 내 허리를 쿡쿡 찔렀다. 나는 노트에 'what?' 이라 썼다. 라미스가 손짓으로 뒤쪽을 가르켰다. 돌아보니 무함마드가 내게 쪽지를 건넨다. 커피 한 잔 마시자는 내용이었다. 학원에서 외간 남자가 커피 마시자고 쪽지를 남겼다며 남편한테 자랑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니까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라미스가 옆에서 또 쿡쿡 찌른다. 아. 수업시간이지.
1층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인조잔디가 넓게 깔려 있었다.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이 커피숍은 예멘의 20대가 몰려드는 핫플레이스다. 자리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란다. 다행히 먼저 도착한 무함마드가 옥상에 올라오는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남편과 무함마드는 악수를 하고 아랍어로 인사했다. 무함마드는 한국에 간다고 했다. 한국 정부에서 초청한 장학생의 신분으로 고려대학교에 간다고. 그는 영어학원 게시판에 공고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 개월 동안 서류를 준비했고, 이제 비자 인터뷰만 남겨둔 상태라 했다. 한국에서는 컴퓨터 관련 전공을 하고 엔지니어가 되고싶다고.
이쯤 되면 무언가 부탁을 해야하는데. 한국에 갔을 때 아는 사람 집에 혹시 머물 수 있겠냐는 그런 부탁은 오히려 다행이다. 혹시라도 비자 수속을 알아봐달라고 하면 어떻게 친절히 거절해야 할까. 어서 무슨 말이라도 하면 좋겠다. 만나자고 한 순간부터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마음 상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안절부절 못하는 내 눈을 바라보며 무함마드는 말했다. 수업시간처럼 여전히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고 예의 바르게.
“Lucy, I wanted to tell you about my stroy when I saw you first time in the class.” (루씨, 네가 교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한국 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Oh, really? Why didn't you?” (그래? 근데 왜 안했어?)
“I was still in the process then. If I tell you, I was worried I would get you in trouble.” (그 때는 서류가 진행중이어서 내가 괜히 말했다가 네가 곤란해질까봐 말 안했어.)
그랬구나. 그래서 지금까지 어떤 부탁의 뉘앙스가 느껴지는 말도 꺼내지 않았구나. 그래서 서류가 합격하고 비자를 신청하면서 만나자고 한 거구나. 나는 어쩜 시야가 이리 좁은가. 김우창은 '사람의 사고는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일정한 방향과 태도 또는 입각점 또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얼굴이 빨개졌다. 무함마드가 부탁을 하기 위해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거라고 마침표를 찍었다. 그의 순수함을 오해했다.
무함마드는 중산층 가정의 막내아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집안이 쉽게 해외여행을 하거나 아이의 유학을 보내지는 못한다. 다른 나라와 물가 차이가 워낙 크기도 하고 유학을 편히 보낼 재력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국가의 지원이나 장학금 없이 그냥 외국으로 나가기는 어려운 중산층. 무함마드는 자신의 형편을 잘 안다. 그러나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기 나라의 상황이 어떤지도, 이 나라에서 계속 살았을 때의 자신의 미래도 잘 안다. 앞은 보이지 않아도 매일을 차근차근 공부했다.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와중에 공고를 보고 평소 준비가 되어 있는 만큼 서류도 면접도 잘 치루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기회를 잡았다. 인생의 성공 여부가 출신성분과 같은 사회적 변수에서 비롯되어서는 안된다는 정의감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가족들은 그를 지지했다. 부모님은 무함마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들은 함께 꿈을 나누었다. 아이는 꿈을 꾸고 부모는 응원했다. 뤼디거 달케가 '모든 결과는 자기 내면에 있는 꿈의 그림에서 도출된다' 고 말한 것처럼 아이의 꿈은 이루어졌다.
자녀를 머나먼 타국으로 보내는 것이 쉬운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 특히 예멘과 같은 경제가 낙후된 사회에서 똑똑한 아들을 가진 부모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한 번 나가면 아들이 쉬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부모님은 아들의 어깨에 짐을 얹지 않았다. 똑똑한 아들이 예멘에서 대학교수가 되면 오히려 안정적일텐데,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익숙하지 않은 나라, 한국으로 떠나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재정지원을 해주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부모의 꿈을 아이의 어깨에 충분히 지게 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그들은 아들을 신뢰하며 지지했다.
유대인은 Best(베스트, 최고)를 지향하지 않고 Unique(유니크, 독창성)를 지향한다. 탈무드에는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자기 눈에 감긴 수건부터 풀라'는 말이 있다. 아이의 재능과 개성을 무시한 채 부모의 욕심을 앞세우지 말라는 뜻이다. 유대인 부모들은 하나님이 개개인에게 남과 다른 독특한 달란트를 주신 것을 믿고 따라서 부모들은 그 독특한 재능을 찾아내 이를 살려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유대인을 지칭하는 또 다른 말 '헤브라이'는 강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인데, '혼자서 다른 편에 서다'라는 의미도 있다. 유대인은 세상에서 각자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이 따로 있음을 믿는다. 그래서 모두와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아이의 초등입학을 앞두고 고민을 한다. 운동 하나는 배워야겠지. 아니, 악기도 하나쯤은 다루는 게 좋겠어. 요즘 수학 트렌드는 뭐지. 영어는 회화부터 하는 게 낫겠지. 무함마드 부모님처럼 나는 아이의 꿈을 알고 있지도, 아이와 꿈의 대화를 나눠보지도, 아이가 학원을 정말 다니고 싶어 하는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말로는 아이의 유니크함을 믿는다고 했지만, 내가 기르는 방식은 베스트를 지향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아이가 대답하면 귀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한낱 어렸을 때의 꿈이라고 너의 꿈은 분명 바뀔 것이고 그 꿈의 범주는 내가 정해주겠다고 마음 속에 확정지었던 것은 아닐까.
무함마드의 부모님은 꼭 잡고 있던 아들의 손을 놓았다. 대신 아들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아들의 마음에 대고 당신들이 얼마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지 말씀하셨다. 떠나는 아들의 마음에 묵직한 짐 대신 기쁨과 감사가 넘치도록. 나도 아이의 손을 놓을 때가 오겠지. 나도 그 땐 아이의 가슴에 손을 얹으리라. 아이의 삶을 응원하고 기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