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강원도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엄마는 서울의 한 회사에 다녔다. 당시만 해도 아이를 낳으면 여자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젊은 두 내외는 미래를 위해 주말부부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주에 6일 일하던 시절이었고, 맞벌이를 하며 그들만의 힘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도 불가능에 가깝겠으나 그때는 말 그대로 가능성이 제로였다.) 지방에 있는 친가의 손은 빌릴 수 없었고, 나는 태어나자마자 아주 자연스럽게 외조부모 손에 맡겨졌다.
어찌 보면 '외'조부모라는 단어도, '조부모'라는 단어도 어색하다. 인생에서 가장 처음 기억한 집 주소와 전화번호, 보호자 이름이 모두 할머니의 것이니까. 사람들이 '엄마'를 떠올릴 때 느낀다는 감정을 나는 '할머니'에게 느낀다.
나의 할머니는 목소리가 크다. 어릴 때 동생을 괴롭히면 할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소리를 치며 무섭게 쫓아오고는 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쩌렁쩌렁 울리는지 무서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할머니는 욕도 잘한다. 어린 친구들이 하는 그런 귀여운 비속어가 아니라, 주로 옛날 고문 방법을 어원으로 하는 살 떨리는 단어들이다. 그나마 제일 수위가 낮고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지랄하고 자빠졌네'인데, 이 말을 터프하게 내뱉을 때 특유의 통쾌함이 있어, 의미도 모르면서 어른들 몰래 혼자 따라 해 보고는 했었다.
또, 할머니는 정말 부지런하다. 젊어서 일을 많이 해 무릎이 아프다면서도 단 한 시도 몸을 가만히 두는 법이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도 바로 치우고, 마당은 자주 물청소를 했다. 팔팔 끓는 물에 삶은 수건에서는 항상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50년을 넘게 살아온 당신의 동네 친구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시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노인정은 코로나로 인해 폐쇄되면서 할머니는 집에서 머무는 날이 늘어났다. 전화를 하면 목소리에 힘이 없어서, 어떤 때에는 내가 아는 그 호랑이 같은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집에서도 이상한 변화들이 감지되었다. 손때가 가득 묻은 냉장고 손잡이, 음식 얼룩이 그대로 남아있는 찬장의 식기, 깨끗했던 방 안에 계속해서 늘어만 가는 의미 없는 물건들을 보며 가족들은 무언가를 느꼈겠지만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지난 추석, 여느 때와 같이 할머니의 오래된 집을 방문했다. 저녁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는데, 상을 물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밥을 먹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 표정이 너무나 태연해 당황하며 조금 전에 같이 식사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의 눈빛이 흔들린다.
욕실에 들어가니 타일에 잔뜩 때가 끼어있다. 샴푸와 린스, 세안제 등 샤워용품은 30개 이상이 바닥에 늘어져 있었는데 그중 상당수가 이미 유통기한이 몇 년도 훨씬 지난 제품이다.
그뿐만 아니라 웬 장독대부터 바구니까지 온갖 물건들이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쌓여있었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들 근처에서는 좋지 않은 냄새가 나고, 주변에 날파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당장 사촌동생을 이끌고 할머니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마트로 향했다. 청소용 솔과 세제, 욕실 수납 선반 등을 사서 돌아와 청소를 시작했다. 팔과 다리를 걷어붙이고 세제를 이곳저곳 칠하고,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목욕용품들은 전부 쓰레기통에 넣었다. 욕실의 구석구석 가득한 검은 때들이 구정물로 씻겨 나왔다.
내가 욕실을 청소하는 동안 엄마와 이모는 부엌 청소에 여념이 없었다. 가족 구성원들이 달라붙어 여기저기 청소를 하면서, 안타까움에 한 시간에도 몇 번씩이고 큰 탄식이 새어져 나왔다.
욕실 한구석에 가득 쌓인 바구니들을 전부 들추어보았다. 그중 하나를 열어보니 썩은 생선 냄새가 났다. 무엇을 만들려고 했던 것인지, 그 상태로 얼마나 오래 거기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생선은 뼈만 남은 채 액체가 되어있었다.
그 옆에 있는 작은 장독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나는 매실 원액이 담겨 있었고, 뚜껑을 열자마자 온갖 날벌레들이 너풀 날아올랐다.
또 다른 통에는 소금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살짝 흔들어보니 소금 아래로 조기가 몇 마리 보였다. 이미 한 번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조기 위로 무언가 이상하게 반짝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들은 마트에서 파는 상태 그대로 래핑 되어있었다.
생선을 소금에 절여놓아야겠다고 생각한 할머니가 포장도 풀지 않은 채 소금을 잔뜩 뿌려두고는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할머니의 냉장고에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혹은 너무 오래돼서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음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이 생선이었다.
'엄마는 무슨 먹지도 않을 생선을 이렇게나 사놨어.' 삼촌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이제는 그것들을 처리할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필요했다. 할머니에게 여쭤보니 여분이 없다고 하여 동네 슈퍼로 향해 봉투를 다섯 장 사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찬장을 정리하던 엄마가 무언가를 내 눈앞에 내밀었다. 할머니가 사놓고는 계속 잊어버리고 계속 다시 사 왔을, 음식물 쓰레기봉투 수십 장이었다.
할머니는 청소에 열중하는 우리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 기억이 나지 않는 물건들에 얼마나 답답하고 부끄러웠을까. 자식들이 본인의 물건을 '쓸모없다', '오래됐다'라며 마구 버리는 모습에 초조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부엌에서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싱크대로 연결되는 상수도관이 터져 그 옆으로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지하실의 하수도관은 막혀버렸다. 그 오래된 집도 할머니의 마음처럼 간만의 대청소가 너무나 버거웠던 모양이다.
추석 당일 수도관을 수리해 줄 사람이 있을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고 겨우 한 군데 업체를 구했다. 부부로 추정되는, 2인 1조 팀이 달려왔다. 그 순간 그들이 마치 우리를 구원하러 온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막힌 하수도를 뚫는데 썩은 생선 냄새가 강하게 코를 찔렀다. 일반 가정집 하수도가 막힌다고 한들 이 정도의 비린내가 날 수 있으려나 생각하는 순간, 하수도 수리 작업을 하던 남자분이 말했다. '집에서 생선 작업을 하시나 봐요.'
할머니가 손사래 치며 대답했다. '내가 젊어서는 생선을 떼어다가 시장에서 팔았는데, 지금은 안 해요.'
젊은 시절 가장의 역할을 하며 생선을 팔았다는 할머니. 신선한 물건은 손님에게 판매하고, 상품의 가치가 없어진 생선들을 집으로 들고 왔을 것이다. 그것들을 더 오래 먹을 수 있도록 소금에 절여두고, 일부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먹였을 테고. 오늘 버렸던 수많은 생선 혹은 생선으로 추정되는 잔해들이 떠올랐다.
할머니에게 생선은 그때의 가난, 고생,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떠올리게끔 모양이다. 지금 이 순간과 평범한 일상은 할머니의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데, 도리어 선명해지기만 하는 그때의 결핍이 원망스러웠다.
명절에 한바탕 일어난 이 대소동은 과연 그에게 언제까지 유효한 기억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쉬이 답을 하기 어려웠다. 집안이 온통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나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