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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나 Jun 14. 2022

조금은 이른 여름휴가 이야기 - 2

부산 산복도로와 볼리비아 라파즈

J는 태종대에서 산복도로로 이동해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산복도로’라는 단어는 J에게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생소하다는 듯 ‘산복도로?’하고 되물으니 J는 ‘응, 6.25 때 피난민들이 내려와 만든 마을이 있는 곳이야’라며 설명을 덧붙였다.


알고 보니 산복도로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산의 중턱을 지나는 도로’를 뜻하는 일반명사였다. 차를 타고 산을 따라 경사진 나선형의 길을 굽이굽이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니 횟집과 카페가 나란히 위치해 있었다.


J의 선택은 탁월했다. 결코 화려한 경치는 아니었지만, 바다를 끼고 둘러앉은 도시 부산의 진면모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곳. ‘정말 부산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곳이었다. J와 나 모두, 사람 사는 다양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에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횟집에서 밥을 먹고  옆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씩 마셨다. 더운 여름날 (6 초였지만 부산은 이미 상당히 더웠다) 시원한 곳에서 카페인을  섭취하고 나니 동네를 다시 돌아볼 힘이 났다.


각각 산복도로의 카페와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의 풍경


동네의 풍경은 조금 독특했다. 가파른 경사를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다 보니 층수의 구분이 상대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래에서 보면 3층짜리 건물인데 좀 더 위로 올라가 보면 3층이 곧 1층이 됐다. 집집마다 자동차는 건물의 옥상에 위치해 있었다. 사람들은 옥상에 주차를 하고 계단을 이용해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전망대로 향했다. 주민들이 좁고 가파른 계단 대신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둔 것이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잡아 5층으로 올라가니 아까 보았던 것과 비슷한 가정집들이 또 나타났고, 그 옆에는 소박한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한 손으로는 난간을, 다른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잡고 아슬아슬하게 길을 내려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독거노인에게 쌀을 보급하는 1톤 트럭이 간신히 돌아다니는 좁은 골목. J가 옆에 있어서 그런 것인지, 볼리비아 라파즈가 더 생각났다.




안데스 산맥이 가로지르는 남미의 도시들은 대부분 비슷한 분지형 구조를 갖고 있었다. 도심은 그 지역에서 가장 낮은 평지에 위치해 있고 그것을 둘러싼 고지대가 있어, 도심에는 주로 성당, 정부청사, 대학교 및 부촌이 위치해 있고 그보다 높은 지역에는 거주지역이, 더 높이 올라갈수록 빈민가가 위치해있는 식이었다.


J와 함께 여행했던 볼리비아 라파즈(La Paz)에는 종점의 고도가 무려 4,000m 이상인, 세계 최고도(最高度)의 케이블카가 있다. 내가 방문했던 당시에는 3개 노선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몇 개의 노선이 추가로 생긴 듯하다. 2016년 기준 탑승 비용은 3볼(한화 500원) 정도로 시민들의 대중교통수단으로써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케이블카는 더 높은 곳, 즉 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차별하지 않고 쉼 없이 오갔다.


라파즈의 낮 풍경, 라파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행정 수도이다.


덕분에 나는 라파즈 사람들의 생활을 더욱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시멘트로 대충 만든 벽, 슬레이트 지붕, 길을 밝히는 주황색 가로등, 케이블카에서 내려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 불빛이 모이고 모여 소박한 전구색 야경을 만들어냈는데, 나는 그 광경이 참 애틋하게 느껴졌고 아직까지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조심스레 J에게 말을 꺼냈다.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여기 오니까 라파즈 생각이 나.’ 그러고는 주절주절 머릿속에 있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이 동네에도 라파즈처럼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사람들이 이동하기에 훨씬 수월할 텐데. 여기 주민들이 거의 노인분들인 거 생각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 걸어 다니기도 너무 힘들 것 같고. 움직이는 게 힘들고 두려워지면 사람이 집에만 머물게 되잖아. 그러면 또 치매나 고독사가 문제가 될 테고...’


전망을 바라보고 있던 J가 입을 떼었다. ‘이 동네는 이제 조금씩 사라질 거야. 재개발 착수해서 이미 저-쪽에서부터 건물을 허물고 있거든’ 그리고 말을 이었다. ‘이렇게 경사진 동네에, 더 높고 화려한 건물을 지어야만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 재개발되고 집값 오르면 여기 살던 사람들은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어질 텐데. 그럼 이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라파즈의 야경, 경사진 길을 걸어 올라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


전망대 옆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각자 집에서 가져온 주전부리를 펼쳐놓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약 70년 전, 북침을 피해 삶의 터전을 벗어나 이 항구도시에 도착했을 사람들 혹은 그들의 자식 세대일 것이다. 당시 피난민들은 부산 토착민들이 살지 않는 높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와 소위 '판자촌'을 형성하며 주어진 삶을 살아냈다.


고향을 떠난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가족이 되어주며 산복도로에 마음을 붙이고 살았을 사람들. 그런데 이제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에 그들에게 허락되었던 가장 소박한 거처에서마저 떠나가야 한다.


세상에서는 항상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약한 사람들은 세상의 논리에 따라 본인이 가진 것들을 계속 잃어가고, 그래서 점점 더 본인의 것을 만들어가기 어려운 환경에 노출된다. 산복도로의 사람들은 또 어디까지, 언제까지 이렇게 떠나가고 밀려나게 될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산복도로를 보는 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그 풍경을 더욱 애써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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