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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Jul 25. 2020

'알잘딱깔센' 엄마

* 알잘딱깔센

주문 같기도, 외계어 같기도 한 이 말의 뜻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란다.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말 같지만
"뭐 어떻게 하든 알아서 하고 여하튼 내 마음에 쏙 들게 해와~"라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이 말이 무서운 이유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고, 깔끔한 건 어떤 것이 깔끔한 것이고, 센스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가 없다. 그걸 알아서 충족해오라니.. 김서방 찾아오는 게 더 빠를지도 ㅋㅋㅋ

누군가가 내게 알잘딱깔센을 시전 하면 ‘뭐래…’ 할 것 같지만 우리는 꽤 자주 알잘딱깔센 공격을 당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알잘딱깔센 공격을 가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나 자신이다.

생각해보면 20대까지의 많은 시간을 나 자신에게 알잘딱깔센 공격을 퍼붓는데 썼다.
분명히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뭔가를 했는데도 항상 부족한 느낌에 괴로워했던 것 같다.

그때 나한테 일이든, 사랑이든, 사회생활이든 이런 것들에 기준이 좀 있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하고 나머지는 다른 방법을 찾았을 텐데... 나는 항상 다 해내지 못하는 내 탓을 했다. 남들에게 친절하고 나한테는 인색한 사람이 나였다.

나에게 나름의 기준이 생긴 이후에는
뭘 너무 애써서 잘하려고도 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면 그걸로 만족한다. 혹시나 결과가 조금 아쉽더라도 거기에 만족하려는 노력도 해볼 수 있게 됐고.

아이를 키우면서 잊지 않으려 하는 것도 이런 부분이다.
'좋은(=알잘딱깔센한) 엄마가 되어야지!!!'라고 하면 잘 해내지도 못할뿐더러 결국 내가 나를 너무 괴롭힐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로서 중요하게 여길 것들만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그 정도만 되면 나는 잘한 거라고 만족하면 되고 말이다.

내가 엄마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로 한 것은 “온화한 무드”를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온화한 무드는 말과 표정, 터치로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온화한 무드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10번이라면 그중에 6-7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고, 그런 기회가 생겼을 때 집중하기로 했다. 실전판 다마고치 키우기(!)가 쉽지는 않지만, 내 기준에 따르면 적어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다.

각 사회 역할마다 이런 최소한의 바운더리가 설정이 되면 나를 '덜' 괴롭힐 수 있다. 내가 덜 괴로우면 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더 쓸 수 있어서 좋고.

지금보다 조금 더 여력이 생기면 엄마들을 위한 코칭을 꼭 해보고 싶다. 임산부 때 이런 거 생각해보면 더 좋고... 예비부부면 더 좋고... 사실은 싱글들에게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과 더 일찍 친해질수록 해결되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에ㅠㅠ

여하튼 혼자만의 시간 끗!
이제 남은 바나나 크럼블 털어 먹고
고슴도치 아빠 구해주러 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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