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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Dec 26. 2020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나의 아기와 내 마음속 아이

테스 형의 콘서트를 보다가
새로 발표했다는 곡에 마음이 머물렀다.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너무 좋아 죽습니다.
내가 사랑에 빠졌어요. 자랑하고 싶다구요.



사랑에 폭~ 빠진 이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가사가
테스형의 수줍은 모습과 어울려 묘한 느낌을 주었다.

나한테도 애인이 생겼다. 사랑에 빠져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그 이름, 나나 무!

자고 일어나서 부스스한 모습도, 밥 먹다가 하품하는 모습도, 거하게 황금을 낳은 뒤에도 예쁘고, 침을 잔뜩 묻은 볼도 예뻐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뽀뽀하는지 모르겠다. 매일 아기의 작은 몸을 으스러지도록 껴안고 쓰다듬고 뽀뽀하는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사실 참 신기하다.
나는 스킨십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들이 내 손을 잡고 다니는 것도 어색했던 나는
남편 덕분에 스킨십이 자연스러워졌다.

어느 날 아이를 꼬옥 껴안고 뽀뽀를 퍼붓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받고 싶었던 대로 이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경상도 토박이인 우리 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들이지만 스킨십이나 마음을 나누는 대화에 능하신 분들은 아니었다. 나는 부모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꼬옥 안아주고 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아기라고 해주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렸을 때의 기억, 체험, 감정들은 마음속 깊은 공간에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의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을 결정한다.

내가 지치고 힘들 때는 아빠가 업어주고 달래주던 기억들이 큰 힘을 발휘하고, 너무 힘든 마음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크게 거절당했던 기억은 지금도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아이를 낳은 직후에는 아기가 온 힘을 다해서 우는 것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내 청각이 유난히 예민한 탓도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 우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금방 그쳐야 했던 기억들이 아기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아기가 심하게 울 때는 우선 귀마개를 착용해서 청력을 둔감하게 만들고, 아이니까 울 수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언제든 울어도 괜찮고, 모든 것들을 너무 잘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여준다.

이렇듯 어렸을 때의 기억, 체험, 감정들은 평소에는 크게 느낄 일이 없지만 중요한 순간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듯 튀어나온다. 특히 타인과 더불어 사는 지혜가 필요해지는 연애, 결혼, 임신, 육아에서 더 그렇다.
처음 겪는 일들의 연속인 임신, 육아의 경험에서는
엄마 역시 다시 아이가 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럴 때 무의식에 숨어있던 어린아이의 감정이 나와서 지금의 상황을 해석하게 되는데, 무의식에 있는 어린아이의 감정이 건강하지 않다면 지금 겪는 모든 상황이 너무나 힘들 수밖에 없다.

어린 내가 진짜 듣고 싶었던 이야기, 받고 싶었던 사랑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가지고 싶었던 것이나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울어도 괜찮다는 이야기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했고, 인형도 가지고 싶었다.
싱글일 때부터 내 마음속 어린아이를 안아주고 달래주는 작업을 해왔다. 그걸 어느 정도 해결하고 엄마가 된 지금도 가끔씩 마음속 아이의 새로운 요구를 발견한다. 아기가 하는 행동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감정들은 정말 낯설다.
그것이 사랑의 감정일지라도. 하지만 그 낯섦 속에는 내 마음에 사는 어린아이가 진짜 원하는 말과 요구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아준다면 마음속 어린아이는 더 이상 외롭지 않고 건강한 마음을 가진 친구로 자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가장 든든한 육아 파트너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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