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 임신이래!!!"를 외치던데 나는 헐이었다.
후다닥 뛰어나가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 두 줄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함께 "헐... 대박.... 진짜???ㅋㅋㅋㅋ 헐ㅋㅋㅋㅋ 진짜??ㅋㅋㅋㅋ아 대박ㅋㅋㅋㅋ"의 무한루프에 빠졌다.
실전은 드라마랑도, 실화랑도 다른데 괜찮으시겠어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드라마도, 실화도 나와 똑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갑자기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하면서 임신을 알게 되는데,
보통은 입덧을 느끼기 전에 임신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에선 우욱 하는 입덧도 사실은 그다지 우아하지 않다.
몸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술을 들이부은 다음날의 속처럼 울렁거리고, 모든 냄새가 울렁거리는 속을 폭발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된다. 나는 후각이 얼마나 예민해졌는지 씻고 나온 남편에게서 바디워시 향기 아래로 처음 맡아보는 톡 쏘는 체취를 느낀 적이 있다. 남편은 영문도 모르고 거실로 쫓겨났다. 입덧이 폭발하는 그때 모습은 우욱이든 우웩이든 세상 못생긴 표정이라는 것은 내가 보증할 수 있다.
그러면 선배맘들이 알려주는 임신과 출산, 육아의 현실은 어떤가? 선배맘들의 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후배는 30시간이 넘는 진통을 견디며 지옥문을 두드린 다음에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았다고 했다. 한 친구는 제모는 미리 하고 가야 굴욕을 덜 당한다고 왁싱을 강추했고, 무통분만을 원했던 친구는 무통 타이밍을 놓쳐서 생진통을 모두 겪고도 응급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았다며 원통해했다. 제왕절개를 한 또 다른 친구는 화장실 수발을 남편이 들어주면서 동지가 되었다며 전우애를 자랑했다.
아기를 낳기 전에 들은 이 이야기들은 너무나 현실이긴 하지만 출산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펼쳐진 내 출산은 좀 달랐다. 제모나 관장이 없었고, 엄살 대마왕인 나는 무통약 없이 차분한 분위기에서 아기를 낳았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드라마와 현실 그 사이 어디쯤의 임신과 출산 기간을 겪었다.
하지만 많은 엄마들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상태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많이 불안해한다. 나는 왜 이렇지 않지? 나는 왜 이렇지? 하면서.
문제는 신빙성 없는 정보들도 많은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지나치게 불안해하는 경우도 꽤 많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는 한다. 나 혼자라면 상관없지만 내 상태가 아기의 건강과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리멘탈의 내게 도움이 되었던 생각들은 이랬다.
1. 임신, 출산, 육아 경험과 감정은 각자의 생김새처럼 다~~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임신부터 육아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의 복합체였다.
현재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임신을 환영할만한 상황인지부터 시작해서 건강 상태와 감정 상태 역시 큰 영향을 주었다. 이 모든 것들의 복합체가 아이를 대하는 한 장면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저 사람과 내 상황이 비슷해 보여도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나 자신이 가장 힘들다.
또한 나는 내가 원하는 출산의 그림을 그리되 플랜 B를 생각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다닌 병원이 자연출산을 할 수 있는 병원이어서 자연출산을 준비하되 다른 출산 방법 역시 염두에 두었다. 실제로 나무가 35주차까지 똑바로 서있는 역아였고, 어찌어찌 돌긴 했는데 아기가 너무 작아서 유도분만을 잡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상황은 또 달라져서 자연출산으로 아기를 만났다.
모유 역시 그랬다. 가능하다면 모유수유를 하고 싶었는데 양이 워낙 적었다.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분유 수유를 선택했는데, 조금씩 연습하고 적응하다 보니 결국 이유식 전까지 완전 모유수유로 아기를 키우게 되었다.
나의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지켜본 사람들 중에는 나의 노하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나 역시 싱글일 때 부부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분들을 보면 꼭 그 비결을 묻곤 했었다. 그런데 막상 겪어보니 더 해줄 말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모두의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입이 점점 무거워진다.
2. 의사의 이야기를 믿고, 아기의 힘을 믿어준다
많은 정보들을 검색 한 번이면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만큼 잘못된 정보들도 정말 많다. 정보 부족이 아니라 정보 과잉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랄까.
특히 맘카페에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이 분은 병원에 먼저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 하는 사람들도 많다. 비전문가의 이야기는 경험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음의 위안이 될지는 몰라도 정확한 진단은 될 수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자꾸 다른 이들의 말에 기대게 된다.
같은 상황의 다른 이들에게 위로는 받되, 특히 의료적인 도움은 바로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전문의의 말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을만한 의사를 찾거나 나와 성향이 맞아서 내 고민을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의사를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임신 기간 중에 일어나는 다양한 이벤트에서 가장 믿고 서로 의지해야 하는 사람은 아기이다. 엄마가 없이는 아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무능력한 존재는 아니다. 아주 작은 세포에서 시작해 팔과 다리를 만들고 장기를 만들고 사람이 되어서 나오는 위대한 존재! 거기에다 소리를 듣고 딸꾹질도 하고 할 것은 다하지 않는가!
우리 생각보다 아기는 정말 위대하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아기를 믿고 응원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고 또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