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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바다 Oct 16. 2021

주름


낮에 찍은 사진을 본다. 생각보다 잘 나온 것 같아 손가락으로 좍 펴서 확대했다. 맙소사. 주름이 짜글짜글하다. 육십 중반에 이르니 사진 찍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다. 내키지 않았는데 주위에 떠밀려서 찍었다. 역시 나이 먹은 티가 역력한 걸 보니 씁쓸하다. 눈 내린 경치가 아까웠지만 삭제했다.


조바심이 나서 마스크 팩을 붙였다. 깜박 졸다가 거울을 보니 팩을 붙인 얼굴이 뽀얘서 보기에 더 낫다. 역시 나이가 많으면 감추어야 한다는 걸 실감한다. 한밤중에 화장실 갔다가 무심코 본 거울 속의 얼굴이 밉다. 팩을 붙이고 에센스를 듬뿍 바르고 잤건만 누렇다. 눈 밑에 처진 살은 볼록하고, 코 옆으로 늘어진 팔자 주름은 골이 깊어 고약해 보인다. 입술은 낡은 철제대문처럼 색도 바래고 탄력도 없다. 게다가 눈이 부셔 잔뜩 찡그리고 있으니, 불만 가득한 얼굴이다. 너무 못생겼다.


내 얼굴이 언제 이렇게 되었나 울고 싶다. 유난히 하얀 피부 때문에 자신감 가득 한 젊은 날도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은 백치미가 있어서 예쁘고, 떠들 때는 눈이 반들반들하고 똑소리 나서 반전 매력이 있다고들 했다. 동네에서 제법 입살에 올랐던 미모였다.


나이 들면 세월 때가 묻어서 피부색은 거무튀튀하기 마련이다. 표정까지 침침해 보인다. 피부는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해서 등고선같이 골이 줄줄이 생겨 본의 아니게 심술궂게 보인다. 머리칼도 시나브로 빠져서 엉성하다. 나 또한 벌써 그 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뭘 했다고 주름이 생겼는지 지나간 시간을 구간 구간 점검해 본다. 남편이 주식으로 한창 속 썩이던 때에 이 굵은 주름이 생겼을 거다. 눈가의 것은 딸애가 도회지에서 대학 다닐 때 걱정을 많이 해서 생긴 것이 아닐까. 주섬주섬 꺼내어 속상해하다가 말았다. 가족 때문이라는 것은 내 사고가 미성숙한 것 같아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주름이 많든 적든 내가 만들었다. 지나온 나의 소중한 업적(?)이다. 긴 인생행로에 꽃길만 걸은 사람은 없다. 주름은 흘려보낸 세월이라서 힘든 시절을 보낼 때는 깊어졌겠지. 물론 개인차가 있어서 깊고 얕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리라고 본다.

남의 주름은 가볍게 지나치지만 내 얼굴의 주름은 거슬려서 속을 태운다. 그렇다고 주름을 없애려고 편법을 하기에는 상당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편법 친구를 보니 예뻐져서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다. 돈을 들여 젊음을 훔치려는 것은 도둑질이다 싶어 마음을 주저앉혔다.


 주름은 지나간 삶이다. 땀 흘리며 높은 산 고개도 넘었고 뙤약볕 아래 지난한 모랫길도 걸어왔다. 감미로운 바람결을 느끼며 풀 내음 속에 산책도 했다. 폭풍우가 미쳐 날뛰는 날은 죽은 듯이 구석방에서 숨 죽여 지냈다. 이런 살아온 흔적이 주름이 되었다. 삶이 다 할 때까지 주름은 계속 생길 것이다. 이러니 외면하거나 밉게만 보지 말고 흔쾌히 맞이해야겠다.


그래서 주름과 함께 사이좋게 살아갈 방법이 없을까 궁리해 본다. 감히 중력을 거슬러보기로 했다. 얼굴을 양 손바닥으로 감싸서 살짝 위쪽으로 올려본다. 처진 피부가 위로 올라가니 조금 젊게 보인다. 백만분의 일이라도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화장할 때마다 뺨을 올리고 두드린다.


누군가는 그랬다. 이 주름을 드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나도 당당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게 멋진 주름을 만들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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