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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바다 Nov 18. 2021

낯선 곳


눈부신 가을날이다.  축복 같은  햇살을 받으며  공원을 걷는다.  산뜻한 구절초는 관객이고  바람의 지휘 하에 억새는 합창을 한다. 삼십 분을 걸어도 누구 하나 만나는 사람 없어 마스크를 잠깐 내리고 가을을 마신다.


주머니 속 라디오에서는 가정음악 시간이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귀에 익은 음악이 걸음걸음 따라와서 행복을  쏟아놓는다


"저기요, ㅇㅇ 리조트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돌아보니 맨투맨 티셔츠에 에코백을 걸치고 검정 바지를 입은 사십 대 초반 정도의 여성이다.  사람조차 없는 곳에서 길을 잃어 당황했는지 불안한 표정이다. 이렇게 밝은 날인데도 모르는 곳이라서 두려웠을까. 이마에 땀까지 흐르는 것을 보니  안쓰럽다.

여기서는 오른쪽으로 가든 왼쪽으로 가던 거의 반 정도 위치라 머뭇거리다가, 조금이라도 덜 걷는 왼쪽으로 가르쳐줬다.
황급히 걷는 까닭에 한 가닥으로 묶은 머리도 바삐 움직여주는 뒷모습이 짠하다.
 
ㅇㅇ 리조트 손님이면 차로 모실 텐데 손님은 아닐 것 같고  무슨 일로 동서남북도 모르며 예까지 왔을까. 버스도 없고 택시도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가려고. 전화로 일자리를 문의하고 일단 와보라니까 가는 것 아닐까.
 지름길이지만 사람이 거의 안 다니는 길이다.  게다가  긴장한 것 같아서 더 무서울 텐데 괜한 걱정에  마음이 쓰인다.

 십 오륙 년 전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에 다니던 사십 대 중반이었다. 집안의 자잘한 손길보다 학원비다 과외비다 해서 돈이 더 필요했다.
처음  마트에 일자리를 얻었을 때다. 대구 ㅇㅇ점에 견학 가서  상품을 잘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루 매출은 어느 정도인지 규칙은 무엇 인지 등을 보고 오라고 했다.

 혼자서 동대구역에 내려서 ㅇㅇ 가는 버스를 탔다. 내리고 보니 목적지가 아니고 다른  곳이었다. 모르는 곳이라 당황스러웠다. 체면 불구하고 정류장에 있는 사람에게 묻는데 묻자마자  저 버스 타고 가라며 손짓해주었다. 그 버스는 문을 막 닫고 출발하고 있었다. 나는 버스를 향해서 마구 달렸다. 마침 버스가 신호에 걸려서 멈추었는데 헉헉거리며 문을 두드렸다. 버스 문이 열리면서
"여기서 승객 태우면 안 되는데 아주머니가 하도  뛰어와서." 하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라고 숨 가쁘게 인사했다. 덕분에 견학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낯선 곳은 꼭 불안하고 두려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도 있었다.

 견학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버스를 따라 억측스레 뛰었지만 우리 동네였다면 누가 볼까 봐 창피해서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 엄마가 또는 누구 씨가
 버스를 따라 뛰더라. 삼백미터도 더 뛰던데 뛰는 폼이 진짜 웃기더라. 또 어떤 이는 무슨 일인지 절박한 표정으로 땀에 절은 머리칼로 한참을 뛰더라.' 등등 뒷담화나는 불편한 심사가 되었을 것이다.  평소 때라면, 굵은 몸에 뛰는 게 부끄럽고 또 나름의 체면도 있어서 다음 버스를 기다렸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 창피한 줄도 모르고 뛰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무시한다면 자신의 감정을 덜 피곤하게 하지 않을까.

"행사기간이라서 한 개 사면 한 개 더 드립니다. 행사기간에 많이 이용해 주세요."라는 멘트를 하라고 했다. 그곳은 대 도시라 그런지 매장에 고객들이 많았다. 남들 앞에서 앞치마 유니폼을 입는 것도 그렇고 , 쑥스러워 입이 안 떨어졌다. 관계자 분이 자꾸 시켰다. 속으로 이것도 못 하면 삼일을 굶을 거다 라고 다짐했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으니 창피할 것도 그다지 없다고 생각했다. 숨 한번 크게 쉬고 말했다. 내 귀에만 크게 들리는지 오가는 사람들 중에 쳐다 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마침 지나는 고객이 한 개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갔다. 우리 동네 마트에서 일을 시작했다. 아는 사람이 있어도 남의 시선을 버리니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햇살 속으로 바지런히 걸어가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열심히 일한 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기를 바라며
다시 눈부신 10월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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