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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바다 May 04. 2022

봄소풍 준비

립스틱



어젯밤에 내린 비로 갈증이 해소되었나 아침은 흡족한 표정이다. 고불고불 길가엔 연노랑 꽃들이 오독오독 피었고 연분홍 꽃들은 하늘에서 살랑인다. 비를 다 토해낸 하늘도 그야말로 연하늘색이다.

코로나로 2년 넘게 마스크에 갇혀 살았다. 살랑 이는 꽃들을 보니 눌러놓았던 마음에도 뾰족 뾰족 봄이 움트건만 모른 체 하려니 가슴이 답답했다.

글공부 모임에서 공지가 떴다. 거리두기가 해제되었다고 모임을 알리는 내용이다. 영양 자작나무 숲으로 2시간가량 걸으면서 좋은 시를 읊기도 하고 힘들면 쉬기도 하면서 마음이 가득 찰 때까지 숲 향기를 마시잔다. 숨통이 트였다.
숲 속에서 김밥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쌓인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만으로도 신바람이 났다.

 무슨 옷을 입을까 운동화는  어떤 거로 신을까. 열흘 후면 볕이 뜨거울 텐데 모자도 가져가야겠지. 생각만으로도 즐거워 청소기 돌리는 무릎도 가벼워지고 설거지하는 손이 춤을 춘다. 얼른 설거지를 끝내고 창 모자를 꺼내 보니 색이 바랬다. 마음에 들어서 이것만 계속 썼더랬다. 바랜 부분에 아무도 모르게 꽃을 그려 넣었다. 잔잔한 별꽃이 무더기로 핀 모자를 써보니 제법 멋이 있다.






봄빛이 가득한 숲에 앉아서 김밥 먹는 상상을 하다가 아차, 싶었다. 밥을 먹을 때 마스크를 벗을 텐데 2년 동안 바깥 구경하지 않은 입술이 어색했다. 침침한 얼굴에 립스틱을 발라보았다. 이건 색이 너무 아니다. 저것도 발라보니 어둡다. 유통기한이 지났나 마땅한 색이 없다. 이러다가 부푼 마음이 꺼질 것만 같았다. 내처 립스틱을 샀다. 두 개를 묶인 것이 싸게 먹힌다고 해서 질렀다. 집으로 와서 색별로 발라보았다
 세상에, 고작 립스틱 하나 발랐을 뿐인데 주황 튤립이 되었다가 붉은 장미가 되는 게 아닌가. 마음은 붕 떠서 샤갈의 그림처럼 마을 위를 날아다녔다.




사람들이 이래서 립스틱을 바르고 화장하는구나. 눈을 치 떠고 목을 꼿꼿이 해서 자신감에 차서 걸어가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대단한 힘이었다.

옛날 소견을 가져서 감정은 물질보다 뒷전이라 소홀히 했었는데 이렇게 즐겁다니. 세상이 아니 인생은 아름다워라 였다. 평소에는 입이 튀어나온 편이라 바른 듯 만 듯 옅은 색으로 사용했었는데 지금은 당당하게 기쁨을 표현하는 진분홍으로 발랐다. 내 감정이 중요하니까

동료가 마스크 속의 립스틱을 바르고 다녔다. 점심때 직원 식당에서 벗어놓은 그녀의 마스크는 빨갛게 묻어서 보기 흉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왜 바르고 다닐까 별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출근할 때 자신감 한껏 충전하려고 그랬구나  싶었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라는 노래를 한동안 자주 불렀었다. "마지막 선물 잊어주리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라는 대목이 그렇듯 립스틱은 여자의 마음을 다져주는 힘이 있는 게 아닐까.  
"언제부턴가 그대를 그대를 처음 만난 날 남모르게 그려본 분홍 립스틱 떨리는 마음같이 사랑스럽던 그 빛깔" 또 분홍 립스틱이란 노래에는 사랑받으려고 립스틱을  바른다고 했다.

여자들은 립스틱으로 사랑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 내 생애 가장 젊고 예쁜 오늘, 나는 사랑을 열었다. 눅눅한 나를 보송하게 만들어 주는 립스틱에 사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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