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표고버섯
오래된 냄새라는 말에 움찔했다. 어떤 고객님이 건표고버섯에서 오래된 냄새가 난다고 반품했다.
어느 날 인가 나에게서도 냄새가 났다 노모방에서 나는 것과 가깝다고 느꼈다 연식이 육십에 가까우니 몸을 구성하는 세포에도 주름이 생겨 신진대사가 젊을 때만큼 원활하지 못하니, 나겠지.
다른이에게는 어떤 냄새가 날까 아기에게는 생에 대한 욕구의 냄새가 난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웃는다 배가 고프면 만사 제치고 힘껏 울어젖힌다. 에너지가 가득하다 청년은 꿈을 꾼다 충분히 젊을뿐더러 늙음과는 거리가 한참 먼 까닭에 삶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생은 어떨까 하며 여유 있게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고 한다 어떤 일이든 정열적으로 다가가는 미래의 냄새가 난다. 중년은 항상 바쁘다. 자식들을 돌보랴 가정도 챙기랴 그러기 위해서는 돈벌이가 중요해서 열심히 일한다. 건강을 챙길 틈이 없어 삶이 점점 닳아간다. 알게 모르게 잃어버리는 시간의 냄새가 난다.
표고버섯은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삼 사 개월 정도 말려 둔 골목에 종균을 심어서 키운다고 한다. 그해에 따는 것도 있지만 주로 다음 해에 딴다고 한다. 이렇게 나온 생표고버섯을 다시 말리려면 또 얼마간의 맑은 날이 필요하다. 다른 채소에 비해서 재배기간이 길기 때문에 그 냄새가 당연할지도 모른다.
건표고버섯을 물에 담가두면 은은한 향이 나온다.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날의 결과물이다. 비록 쭈굴쭈굴한 피부지만 바람과 햇볕을 잘 견디고 눈물도 적당히 삼켰기 때문에, 맛이 더 쫄깃하다. 담가둔 물까지도 된장찌개나 육수로 쓰면 맛이 깊어진다. 장년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래되었지만 깊고 은은한 냄새가 난다.
오십의 끝자락에 서니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것, 내 식구만 보이다가 보도블록 사이에 핀 풀 한 포기도 기특해 보인다. 고객님이 한꺼번에 몰릴 시간대에 동작이 느린 동료를 보면, 바쁜데 게으름을 피우는 것 같아 미웠다. 지금은 천성이니 어쩔 수 없지, 바쁘게 허둥대지 않으니 본인 정신건강에 좋겠다며 누구라도 좋으면 되지라고 생각한다. 매장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떠들고 다니는 말 많은 동료를 보면 소문을 전해줘서 심심하지 않아 좋고, 본인 또한 속에 쌓이지 않으니 울화병은 안 나겠다 싶다. 사과가 맛이 없으면 당지수가 올라가지 않아서 좋고, 달콤하면 맛있어서 좋았다. 이처럼 사고가 넉넉해졌다.
생표고버섯을 바구니에 담아 진열하면 고객님께 잘 보이려고 방실거린다. 하지만 빨리 못 팔면 상해서 애를 태우게 한다. 건표고버섯은 울퉁불퉁 못 생겨서 바구니에 예쁘게 담아도 그냥 쭈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너네들 안 사가면 맛 내기가 힘들 텐데 잘 생각해 보라’ 라며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좀 늦게 팔려도 상품성이 떨어지지 않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리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되고 늙으면 좋은 게 하나도 없다며 노모는 푸념한다. 정말 그럴까. 예능프로에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라면? 하고 묻는 말에 육십 대 여성 세 분이 동시에 답했다 지금이 좋다고, 돌아가서 다시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데 싫다고 했다. 누군가가 그랬다. 늙으면 좋은 것이 많다며 열거했다. 공부 안 해도 되고 육아도 없고 돈도 안 벌어서 좋다고 했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이 하나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경험이 많다는 말일 것이다. 요새는 세상이 하도 급변해서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나의 경험치가 높아서 쓸모가 있기를 바란다.
오래된 냄새가 더 짙어지더라도 민감하거나 둔감할 필요는 없다. 세월은 모두를 공평하게 이 길로 안내할 것이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며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 오래된 냄새는 익은 냄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