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먹다

by 가을 바다

겨울인데도 햇볕이 따스하고 바람도 없다. 이런 날씨에 집에 있기가 무료해서 장 구경 갔다. 갈무리를 잘해둔 배추 무, 양지바른 곳에서 캐온 냉이도 있었지만, 고향 냄새가 나는 물미역, 윤기가 반짝반짝 나는 곤피(다시마)에 눈길이 잡혔다. 우툴두툴한 곰보미역도 반가웠다.

어디선가 ‘뻥’ 소리에 깜짝 놀라서 보니, 고소한 냄새와 뽀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보니 쌀이랑 콩, 보리, 옥수수 등 여러 가지 곡식이 들어간 깡통이 줄지어 있고, 뻥 사장님이 콧등에 검정을 묻힌 채 새까만 가마에서 튀겨져 나온 하얀 강냉이를 쓸어 담고 있었다. 내 고향에서는 강냉이를 박상이라고 불렀다.

“뻥이 요 오, 모두 귀 막으시세이” 소란스럽던 아낙들이 긴장을 하고 귀를 막으며 기다리는 데 ‘피이익’ 하고 끝났다. 모두 ‘에이’하면서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내렸다. 보리차 용도로 튀기는 보리쌀은 소리가 크지 않다고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귀띔해 주었다. 뻥 사장은 놀려먹은 것이 재미있는지 껄껄거린다.

그 분잡 한 시장통에서 눈치 없이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오십 년쯤 전으로 줄달음친다. 설이 가까운 어느 날인 것 같았다.

"너네 언니가 공터에 뻥튀기는 데로 오란다." 동네 아이의 말을 듣고 뻥튀기하는 곳으로 갔다. 한 되들 이 깡통이 줄지어있는 옆으로, 사람도 줄지어 있었다. 잠깐 한눈이라도 팔면 내 것의 순서가 밀리거나, 잃어버릴까 봐 사람들은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쌀, 보리, 옥수수가 들어있는 깡통이 빠지는 순서대로 바짝 붙여 놓는다. 화장실에 간 큰언니 자리에 내가 대신 들어가서 차례를 기다리면 되었다. 한 참을 서 있으니 춥고 발도 시렸지만, 큰언니가 올 때까지 깡통순서가 바뀔까 봐 눈을 깡통에서 떼지 않았다. 드디어 내 깡통에 담겨 있던 옥수수가 가마에 들어가고 얼마가 지나자 뻥 소리가 났다. 묵은 때가 까맣게 묻은 가마니 위로 박상들이 연기와 같이 쏟아졌다. 마치 흥부네 박이 터지는 순간처럼 행복했다.

뻥 사장이 갓 튀긴 쌀 튀밥 한 바가지를 들고서 둘러 서있는 아낙들에게 한 줌씩 나누어주었다. 나도 한 줌 받아서 입으로 넣었다. 옥수수로 만든 강냉이보다 부드러워서 스르르 녹아버린다. 내 고향에서는 쌀 튀밥을 쌀 박상이라고 불렀다.

나른한 오후, 한길에서 엿장수 가위 소리가 나면 마루 밑의 헌 고무신이나 뒷간에서 찌그러진 대야, 헌책을 가지고 막내는 뛰어 나갔다. 엿장수는 가위를 철컥거리며 다른 것도 있으면 더 가져오라고 하면서, 막내에게 엿 한 조각을 맛 보여 준다. 막내는 얼마 전에도 달콤한 엿의 유혹에 빠져서 언니가 보는 책을 엿 바꿔 먹었다. 언니는 속상해서 울고, 막내는 야단맞아서 울었다. 난 대신할 책을 구하기 위해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헤맨 적이 있었다. 엿의 달달한 맛을 느끼며 달뜬 표정이 되는 막내에게 더 가져올 것이 없다는 뜻으로 강한 눈길을 보냈다.

리어카 위에 큰 판에는 짙은 황색 울릉도 호박엿이 먹음직스럽게 펼쳐져 있고, 리어카 속에는 박상이 가득 실려 있었다. 호박엿이 먹고 싶어서 입안에 침이 고였다. 하지만 찌그러진 대야와 고무신, 헌책 두 권 가지고는 호박엿은 겨우 두 동강밖에 못 준다고 했다. 호박엿 두 동강과 박상 한 소쿠리 중 난 박상 한 소쿠리를 택했다. 입이 많은 우리 집에는 질보다 양이 우선이었다. 동그랗고 깊은 소쿠리에 박상을 수북하게 받아서 마루에 올려놨다. 밖에서 놀던 동생들이 따라 들어오고 언니랑 할머니도 고소한 냄새를 맡고 마루로 나왔다. 여러 손이 소쿠리에서 입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먹어도 달고 고소한 맛이 끝없어서 손이 자꾸 갔다. 곧 수북하던 강냉이들이 점점 없어져 가고 무료하던 한낮도 사라져 갔다.

달달한 호박엿 대신 고소한 강냉이처럼, 부드러운 쌀 박상 대신 추억이 담긴 강냉이를 한 봉지 사고 장 구경은 끝났다.

한 움큼 집어서 입에 넣었다. 어이 할꺼나, 고향의 그리움이 한입 가득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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