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화소리

라인댄스

by 가을 바다

군화 소리 같다. 오십여 명의 발소리가 군인들이 행진하는 소리 같지만 여기는 주민센터에서 하는 댄스교실이다. 발맞춰 추다 보면 서서히 몸도 더워지고 흥도 오른다. 잘 추고 싶어서 눈은 선생님의 발동작을 쫓아다닌다.

처음에는 댄스라고 해서 등록을 망설였다. 춤에 빠져서 집안일도, 자식도 나 몰라라 하다가 급기야는 가출했다는 소문을 주위에서 가끔 들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목석이 그럴 리 없겠지만 은근히 고민되었다. 살아오면서 결정해야 할 어떤 문제에 부닥치면 해보지도 않고 혼자 상상해서 부정적으로 추리하고 지레 포기했던 적이 많았다. 이제는 확실히 해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애들 키우며 살림하고 직장 다니느라 시간과 치열하게 싸웠다. 퇴직 후에 널브러진 많은 시간이 감당이 안 되었다.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몰라 사 년째 방치해 두었다. 어느 날 문득 "헉"하고 해일 같은 울음이 목울대로 밀고 올라왔다. 꺽꺽 눌러 삼키느라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울 일이 없는데 당황스러웠다. 원래가 우는 성격도 아니었다. 분노해서 싸우던지 지레 포기하는 성향인데, 마음속에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하긴 몇 년 사이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겁도 많아진 건 사실이다.

집에만 있다 보니 여려졌나 싶어 무언가를 해야만 될 것 같아 접수했다. 댄스화도 사고 설레임도 덤으로 얻었다.

노래방 가면 음치인데 게다가 박자까지 못 맞추면서 무슨 댄스를 한다고, 괜히 망신당하지 말고 포기하라고 겁을 주는 사람도 있다. 그는 사십 년 가까이 같이 살지만, 나의 절박함을 모른다.

막상 와보니 칠십 대 연배들이 많았다. 아무리 박치래도 나름 육십 대니까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착각이었다. 칠십 대로 보이는 사람이 맵시 있게 턴 하는 모습과 콕콕 집는 발동작에 감동해서 조금 젊다고 내세운 꽁지를 바로 내렸다. 다들 일이 년에서 십 년 넘게 배웠다고 한다. 집안에만 있었던 시간이 아까웠다.

나에게 운동이라고 하면, 학교 다닐 때 체력장 시험 볼 때가 마지막이다. 모의시험에서 대부분이 특급을 받는데 나 혼자만 최하위 등급이 나와서 반 평균 점수를 까먹는다고 선생님이 걱정했다. 특히 수류탄 던지기가 턱없이 딸려 아침 일찍 등교해서 수류탄을 던지는 연습만 했다. 힘껏 던져도 발밑에 떨어졌던 기억에 혼자 웃는다. 선생님은 전쟁통이라면 넌 자폭이라고 했다. 여름내 땀 흘리고 연습해서 특급을 받았듯이 라인댄스도 꾸준히 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동작을 배우고 나면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오랜만에 젊은 시절에 듣던 '뷰티풀 선데이'라는 노래가 나오니 반가웠다. 노래를 듣고 흥을 내면 박자가 안 맞았다.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했다. 순서를 자꾸 잊고 헤매다가, '에구, 돌머리' 하며 자책도 하다가, 혹시 치매는 아닐까 슬며시 불안하기도 했다.

몇 달이 지나자 나름의 동작이 제법 되고 흥도 올라서 댄스 수업 하는 날이 기다려졌다. 앞사람의 춤 동작이 내 것인 양 착각하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무심코 거울을 보면 내 춤은 춤이 아니고 안타까운 몸짓이었다. 차라리 거울을 안 보고 앞사람을 보며 착각하는 것이 더 좋았다.

댄스에 자꾸 빠져들었다. 동작 순서를 외워야 하니 머리도 써야 되어 좋고 또 전신 운동도 되고, 신나는 노래를 들으니 울적함도 덜어졌다. 여러모로 나에게 적절하다고 생각되었다. 민망한 엉덩이를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하다 보면 세상살이는 뒷전이었다.

오늘은 조용필의 모나리자라는 노래에 맞춰 춤을 배운다. 익숙한 곡에 맞춰 추니 마치 몸도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신났다. “오른발 꼭 꼭 집고” 선생님의 목소리에 불이 붙는다. “돌고 또 돌고 제자리 오라니깐” 불은 하늘까지 훨훨 타오른다.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다 보니 또 춤동작을 잊어버렸다. 갈 곳 잃은 엉덩이가 놀라서 이리 주춤 저리 주춤 어쩔 줄을 모른다. 분명 둘 다 내 발인데도 오른발 왼발이 서로 부딪쳐서 넘어졌다. 모두 와르르 웃는다. 부끄럼도 정신없어서 몰랐다. 날아다니는 박자 맞추려 애쓰지 말고 그냥 시간이 가면 다 되니까 결석만 하지 마라고 선생님이 위로해 준다.

여고 시절 교련 시간이었다. 군인 출신 사십 대 여자 교련 선생님은 지독했다. 운동장을 돌며 열병 분열식을 하다가, 발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어디선가에서 날아와서 막대기를 휘두르고 갔다. 그때는 왼발, 왼발 하는 박자를 못 맞추어 무서웠지만 지금은 틀려도 웃고 격려까지 해주니 얼마나 좋은지. 지나간 추억도 같이 춤을 춘다

코스모스같이 허리가 가녀린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나처럼 배가 나오고 옆구리도 두둑하다. 옷맵시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움츠릴 수 없다. 빨강 샤치마를 입고 쑥스러워 엉거주춤 서 있던 사람도, 배를 한쪽 손으로 가린 사람도 노래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 있게 춤을 춘다. 나온 배는 어쩌고 나도 일단 빨강으로 옷을 주문했다. 반짝이 춤복이 입고 싶을 걸 어쩌랴.

각선미 없어도 좋고 오형 다리도 괜찮다고, 흥만 있으면 된다고 선생님은 말한다. 남의 시선은 꺼두고 나의 즐거움만 켜두라고 덧 붙인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남 의식하고 주저했는지. 바쁜 삶에서 더러 이런 여가생활을 해도 되는데 무엇이 발목을 잡았는지 시간을 지혜롭게 쓰지 못한 나를 탓하며 춤을 춘다. 오늘도 주민센터 강당에는 군화소리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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