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에 젖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

by 가을 바다

십 년쯤 전이었다. 겨우 한고비씩 넘기고 사는 일상이 나아질 기미가 없자 점점 지쳐갔다.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내 삶의 터는 척박 했다. 머리를 좀 식혀야 살 것 같아 길을 나섰다. 막상 나오니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지난 설에도 못 갔으니 고향 엄마에게 가기로 했다. 식구들 끼니도, 직장도 잊고 무작정 부산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마당 자목련이 지친 나처럼 간당간당하게 매달려있었다. 오빠 내외는 일하러 가고 없었다. 엄마는 '우째왔노. 무슨 일 있나? 네 시간이나 넘게 걸렸을 낀데 피곤하제 얼른 들어 온나.' 대략 이런 기대를 했는데, 마당으로 들어 선 나를 보자마자 앉으라는 말은커녕 오늘이 오일장이라며 다짜고짜 잡아끈다.

장마당 길가에는 옷걸이에 걸어두고 셔츠를 팔고 있었다. 당신 아들 남방이 없다며 파르스름한 색이 좋다고 사자고 했다. 아까 집에 들어갈 때, 엄마 좋아하는 커피 한 박스와 센베이를 사고 남은 돈이 그리 넉넉지 않았지만 샀다. 또 당신 아들이 속이 안 좋다며 소화가 잘되는 영양제도 사고 싶어 해서 샀다. '너거 오빠가 요새 봄 타는지 기력이 딸려보이더라' 그래서 인삼과 닭도 사고, 우리 먹을 것은 달랑 부침개 하나만 샀다. 하룻밤 쉬어 가려고 왔는데 생색 없이 주머니만 털렸다. 엄마 나이 대 어른들이 다 그러니 영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자랄 때는 살기 힘들고 바빠서 그랬거니 했지만, 지금은 여유도 있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보는데 여전히 눈길을 안 주는 게 야속했다.
퇴근한 오빠가 '장에 가서 맛있는 거나 사 드시지 이런 걸 뭐 하러 샀냐'며 옷을 사 줬는데도 좋아하지는 않고 지청구다. 그쪽은 넘치게 받아서 불편하고 이쪽은 못 받아서 목마르다. 자꾸 투덜대니 무안해진 엄마가 부엌에서 툭툭거린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져 이쪽저쪽 눈치가 보였다.
마음 누일 곳 없어 쉬러 왔건만 더 머리가 아팠다. 당장 시내 여관으로 가려다 도리가 아닐 것 같아 하룻밤을 잤다. '평소에도 사는 건 어떠노. 힘들제' 이런 말 한번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차별받았던 것이 굽이굽이 올라와 서러움이 더한 밤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속풀이라도 하려고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며 살아계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줄 알라고 했다. 힘들어 기대고 싶을 때 곁을 준 적이 없다고 섭섭해하면서도 매번 엄마를 찾는 나. 어릴 때는 사랑받으려고 심부름도 군말 없이 하고, 공부도 잘하려고 애썼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살림 밑천인 큰언니와 외동아들 오빠가 자랄 때 덤으로 컸다고 투덜댄 적도 있었다.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 말라는 친구 충고에 "내 사전에 절대 후회할 일은 없다"라고 하며 헤어졌다.

엄마가 가신 후 처음 오는 봄이다. 찻잔을 들고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엄마 없는 고향집 마당 자목련은 폈을까. 그곳에도 봄비는 내리겠지. 무연히 엄마 모습이 아른거린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우리 집에 와서 산후조리를 해 주셨다. 서울 언니가 둘째를 출산해서 삼칠까지 못 해주고 가서 미안하다며 집을 나서던 뒷모습.
'딸 많이 낳은 죄로 시엄니한테 구박받고 살았는데 여태 죗값을 다 못했는갑다. 늘그막이 딸년들 산후조리에 허리가 휜다'라고 말했다. 그땐 건성으로 들었는데 내 딸 산후조리 해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갓난아기 보고 집 청소하고 반찬도 만들어서 끼니를 챙겨 줘야 했다. 그때는 엄마의 고단함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당연하다고 여겼다.

강변 벚꽃이 봄비에 떨어진다. 젊었을 적 엄마는 가끔 빈 단지에 들꽃을 한 아름씩 꽂아놓기도 했다. 안동으로 이사할 때였다. 오빠를 앞세워 공장에서 쓰는 트럭을 타고 왔다. 이사 선물이라고 예쁜 식탁까지 싣고 아침 먹는데 도착하셨다. 손을 덜어주려고 오자마자 짐을 옮기고 살림을 정리해 주었다. 공장일이 바쁘다고 저녁도 먹지 않고 해거름에 부산으로 내려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엄마 나이는 예순다섯이었다. 왕복 여섯 시간이 넘는 거리를 승용차도 아니고 트럭 조수석에 앉아서 이동했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진작 마음을 열어 그날 일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웃으며 잘해드렸을 텐데 떠난 뒤에야 후회하는지 안타깝다. 걸핏하면 차별한다고 섭섭해했지 엄마 사정에 무지했었다. 돌아가시고 후회할 일 없을 거라고 했던 말이 가슴에 맺힌다.

길가의 빗물은 눈물처럼 고여 있고 봄바람은 차디차다.


작가의 이전글군화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