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 오래된 동거인, 인생의 조언자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1

by 이대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에 대해 많은 것을 데릭 하트필드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내 문장이란 전부 무라카미 하루키로부터 배운 것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쉼표에서 마침표까지 전부. 하지만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서 그의 글은 배우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리고 또 누군가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나의 경험들이란 일천하기만 한 것이니까. 글이란 그처럼 누군가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일 테니까.

그에게서 글은 배우지 못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동안 신경쓰지 않고 떠나 있다가도 돌아가면 자연스레 맞이해 주는 오래된 동거인처럼 내 인생의 순간 순간마다 내게 힘이 되어주곤 한다. 실존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에게서 글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는 하루키에 비한다면 나는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내가 처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그 때 나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의 주말에 찾아 간 친구의 방에서, 친구는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라며 한 번 읽어 보라고 <상실의 시대>를 건네 주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의 <상실의 시대>가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첫 만남이었던 셈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고등학교 생활이었고 그래서인지 별로 많은 기억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 날의 기억만큼은 아직도 나에게 생생하게 남아 있다. 오후의 금빛 햇살이 비추어 들어오는 창문을 배경으로 친구는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걸쳐져 있는 2층 침대의 1층 매트리스 위에 걸터 앉아 나에게 책을 내밀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즈음은 아마 우리 나라에서 <상실의 시대>의 열풍이 아직 가시지 않고 남아 있던 때였던 듯 싶다.

친구로부터 건네어 받은 <상실의 시대>를 들고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그 날 오후와 저녁에 걸쳐 <상실의 시대>를 두 번 읽었다. 그 얇지도 않은 두께의 책을.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니, 간신히 상상만 할 수 있는 속도이지만 그 때의 나는 아직 책을 꽤 빠른 속도로 읽고 있었다.

그 날 내가 <상실의 시대>를 두 번 읽은 이유는 한 번 읽고 나서 책에 푹 빠져 버렸다거나 또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게서 운명적인 이끌림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잘 모르겠어서’였다. 잘 모르겠어서.


그 날, 고등학교 2학년 생인 내가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그때까지 읽어 온 그 어떤 책과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달랐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이 책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맨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다시 첫 페이지를 펼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나는 다음 날 친구에게 책을 돌려주며 겨우 “재미있긴 한데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첫 만남은 내가 ‘문학’이라는 것을 제대로, 그리고 진지하게 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선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일이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게서 ‘운명적인 불꽃’같은 것은 느낌은 받지 못한, 딱히 특별할 것이라곤 없었던 첫 만남이었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푹 빠져버리고 만 것은 그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부터다.

꽤나 평범하고 싱거웠던 첫 만남과는 달리 두 번째 만남은 그 시작에서부터 운명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어쩐지 좀 더 만나다 보면 관심이 생길 것 같은 구석이 있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잘 모르겠는 상대와의 소개팅과도 같았던(비유가 길어서 미안하다) 그 첫 만남이 있었던 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금요일 새벽의 일이다. 그래, 금요일 새벽. 이것에 대해서 만큼은 내 기억이란 확실하다. 그 다음 날이 집에 가서 하루 자고 오는 토요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그 금요일 새벽, 정확히 말하자면 새벽 두 시였을 것이다. 이 시간에 대해서도 나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그 즈음(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즈음)의 나는 매일 정확히 새벽 두 시까지 기숙사 건물의 4층 자율학습실에 앉아, 여름방학 전까지 공통과학을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세 권의 공통과학 참고서와 수업시간의 필기 내용을 연습장에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만남의 시점에 대한 서술이 길어지긴 했지만 한 번 더 힘을 내어 말해 보자면, 그 금요일 새벽 두 시에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두 번째로 만났다.

멀리에 걸려 있는 동그란 벽시계의 바늘들이 두 시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나는 책상을 정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고서와 연습장을 들고 자율학습실의 유리문 쪽으로 걸어가던 나는, 유리문을 2미터 정도 남겨 두고 왠지 모를 기분에 통로 왼편의 책상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왼편이었다. 어째서 이런 것마저도 기억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것 역시 확실하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 곳의 바닥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3년의 핀볼>이 놓여져 있었다. 책상 위도 아닌 마룻바닥에.

물론 그 때 나는 그 책이 하루키의 책이었는지도 몰랐다. 바닥에 놓여져 있던 책을 집어들고 표지를 바라보며 굉장히 촌스러운 표지군,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던 내 눈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이 들어왔다. 그 때 나는, 아마도 상당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참고서와 연습장과 함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3년의 핀볼>을 가지고 자율학습실의 유리문을 빠져나왔다.

그 때 내가 만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3년의 핀볼>은 문학사상사 판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두 권의 책이 아닌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는 판본이었다. 나는 그 판본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3년의 핀볼>도 꽤 좋아한다. 처음 보았을 때는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양을 쫓는 모험>으로 이어지는 그 기묘한 표지 그림까지도.

나는 다음 날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 위에 엎드린 채로 밤 늦게까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3년의 핀볼>을 읽었다. 그리고 그 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게 매혹되어 버렸다.

첫 만남에는 어쩐지 잘 모르겠는 소개팅 상대와도 같았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3년의 핀볼>로 나에게 먼저 ‘우리 한 번 만나 보지 않겠어?’하고 연락을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얼마나 밋밋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소름이 돋을 만큼 끔찍한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지고 있는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을 알게 된 두 번째 만남의 밤이 지나고 곧이어 <양을 쫓는 모험>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내 삶의 깊숙한 곳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 밤으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란,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란 익숙하고 편안하지만 만날 때마다 새로운 매력에 감탄하게 만드는 오래된 동거인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혹여나 하는 생각에 말해 두지만, 자율학습실에서 집어들었던 그 책은 다음날 기숙사로 돌아가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놓아 두었다. 지금 나에게는 한 권씩 나뉘어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이 있다.


작가 김연수는 언젠가 자신의 이글루에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글을 한 개 남긴 적이 있다. 하루키의 책에서는 그것이 어떤 책이 되었든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자신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루키의 글을 좋아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하루키의 세계는 절대로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나는 김연수의 그 말에 온몸을 들어 동의한다.


하루키의 글에서는 그것이 장편이 되었든 단편이 되었든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하루키만의 느낌이 난다. 그리고 하루키의 그 느낌, 분위기는 그의 초기 3부작에서 가장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자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부터 시작하여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으로 이어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3부작이란, 절대로 바뀌지 말아야 할 하루키 세계의 근원과도 같은 작품들인 셈이다.

바로 그 초기 3부작으로부터 발원하여 계속해 이어지는 하루키 작품들의 일관된 분위기란, 내게는 그야말로 이데아와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어냐는 질문에 대답하곤 하는 ‘<양을 쫓는 모험>’ 이라는 대답은 사실 부적절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3부작’이라는 대답이 훨씬 더 적절하고도 정확한 대답일 것이다.


그러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란,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해 주는 그 일관된 분위기란 말하자면 나에게는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것이다. 만약 내가 놓쳐 버린 삶이 영영 되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이 멀리 흘러가 버리더라도, 놓쳐 버린 나 자신이 나로부터 멀어져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 버린다 하더라도 나는,

찾아가면 언제고 자연스럽게 맞이해 주는 오래된 동거인과도 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관되고 익숙한 분위기를 다시금 느낄 수만 있다면,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오래 된 동거의 기억을 적어 보았다.

단편들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은 하고 싶었고, 그래서 제목도 ‘오래된 동거인, 인생의 조언자’ 라고 정했는데 결국 조언자는 겨우 발뒤꿈치만 살짝 내비치곤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단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만 하겠다.


왠지 또다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계절이 돌아온 것 같다.

한동안 신경쓰지 않고 있던 그의 장편에 다시금 노크해야 할 시기가 찾아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