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2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종종 해 왔지만 그래도 또 한 번.
또 하루키 이야기야? 지겹다 지겨워. 하는 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만난 것은 예전에도 한 번 이야기 했듯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지만 그의 단편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이다.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이야기할 때마다 염두에 두는 ‘하루키 소설’이란 장편소설이면서도 사실 난 하루키의 장편 소설을 그리 많이, 그리고 자주 읽지는 않았다. 다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일곱 번쯤, <1973년의 핀볼>을 여섯 번, <양을 쫓는 모험>역시 여섯 번, <상실의 시대>를 다섯 번, <해변의 카프카>역시 네 번쯤 읽었을 뿐이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가지고 읽은 것임을 생각한다면 결코 많이 읽은 것이 아니다. 이건 사족이지만 그의 어떤 책이든 두 번째 읽을 때부터가 역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한다’라고 말하곤 했던 그의 장편소설들은 정작 띄엄띄엄 읽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느즈막히 읽기 시작한 하루키의 단편소설과 수필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읽어 왔다. 하지만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하루키의 책 가운데 단편소설집과 수필집은 단 한 권도 없다. 위에서 말한 장편 소설들이 전부다. 최근에 여행기를 한 권 사긴 했지만 그것 역시 수필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았느냐 하면 그것 역시 아니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본 적이라곤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나는 212개의 MS 워드 문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대학 1학년 여름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모음’이라는 이름의 압축 파일을 다운로드 받았을 때,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사실 212개의 텍스트 문서였다. 하지만 텍스트 문서란 다들 잘 알다시피 줄 간격도 없고 좌우 여백도 0인지라 읽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나는 하루 날을 잡아 큰맘을 먹고 컨트롤 A – 컨트롤 C – 컨트롤 V를 이용해 212개의 텍스트 문서를 하나 하나 MS 워드 문서로 옮겨 내었다. 뼈와 살을 깎아내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작업, 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나름대로 힘든 일이었다. 그 작업 끝에 나는 지금의 212개 MS 워드 문서를 가지게 되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MS 워드 문서로 된 하루키의 단편 소설과 수필을 그야말로 꾸준히 읽어 온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 말이다.
이 쯤에서 ‘꾸준히 읽는 것’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겠다.
꾸준히 읽기 위해서는 먼저 하루키의 단편 소설 문서들이 들어 있는 폴더를 열어야 한다(당연하겠지). 그 다음 첫 번째 MS 워드 문서를 열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는 커서를 마지막 문장의 맨 끝으로 옮겨 스페이스바를 한 번 치고 창을 닫는다. 그러면 파일의 변경 사항(스페이스바에 의해 생긴 한 칸의 공간을 말하는 것이다)을 저장하시겠습니까? 하는 물음창이 뜰 테고 '예(Y)'를 클릭해 창을 닫는다. 두 번째 문서도 마찬가지다. 끝까지 읽고 스페이스바를 한 번 치고 예를 클릭해 창을 닫는다. 그런 후에 폴더의 아이콘 정렬 순서를 ‘수정한 날짜’로 설정해 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읽은 문서들이 읽힌 순서대로 차례차례 폴더의 맨 마지막으로 가게 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분명 읽은 파일과 아직 읽지 않은 파일이 뒤죽박죽 되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름대로 정해 둔 규칙이다. 어떤 문서가 여러 번 읽히는 동안 다른 문서는 한 번도 읽히지 않고, 또 몇 개의 문서를 차례대로 읽어 오다가 어떤 문서들은 실수로 그냥 건너 뛰고 하는 건 성격상 참기 힘든 노릇이다. 게다가 하루키의 단편소설이나 수필 가운데 재미나 흥미가 다른 것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한 개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규칙은 상당히 유용하다.
그렇게 정해진 규칙 안에서 첫 번째 단편 소설은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이고 마지막으로 읽히는 단편 소설은 ‘사치스런 연인들’로 정해져 있다. 물론 처음엔 그런 세세한 것까지는 정하지 않았었다. 다만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그렇게 굳어져 버린 것 같다.
그렇게 단편 소설 폴더 안의 MS 워드 문서들을 마무리 짓고 나면 그 다음으로는 수필 폴더를 열어 역시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수필 폴더 안에서의 첫 번째 수필은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 같은 연필’ 이고 마지막 수필은 ‘한없이 밝은 복음 제산 공장’ 이다. 이것 역시 내가 정한 것은 아니고 자연스레 그렇게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런 식으로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부터 ‘사치스런 연인들’ 까지,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 같은 연필’ 부터 ‘한없이 밝은 복음 제산 공장’ 까지 읽는 것이, 말하자면 <꾸준히 읽는 하루키 단편 소설과 수필>의 한 사이클이 된다.
한 사이클을 마무리 짓는 데에는 (정확하게 따져 본 것은 아니지만)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하루키의 단편소설이든 수필이든 거의 대부분이 두 페이지 남짓 되는 짧은 분량이라서(물론 개중에는 열 페이지가 넘는 것도 몇 개가 있긴 하다) 한 편을 읽는 데에는 넉넉잡아 10분 정도의 시간밖에는 걸리지 않지만, 정해둔 읽기 규칙 가운데 ‘하루에 두 세 편씩만 읽는다’하는 것도 있는 바람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하는 것이다. 굳이 그런 규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제나 두 편 혹은 세 편을 읽고 나면 ‘아, 이만 하면 충분하다’하는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한참 읽는 시기에는 매일매일 빠짐없이 두어 개씩 읽지만 또 안 읽는 시기에는 몇 달간 통 쳐다보지 않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읽기 시작하고 하기 때문에 한 사이클을 읽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들게 되어 버렸다.
그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사이클의 단편 소설과 수필을 읽는 덕분에 매 번 읽을 때마다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감탄할 수 있다는 것이 ‘오랜 시간이 드는 한 사이클’의 미덕이라 하겠다.
언젠가는 하루키의 장편 소설들과 함께 그의 단편 소설집·수필집도 한 권씩 차근차근 읽어 모을 것이라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오직 모니터를 통해서만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접해 온지라 과연 내가 종이책으로 된 그의 단편 소설에 적응할 수 있을는지 어째 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컴퓨터 모니터 혹은 전자책으로 책을 읽는 것은 꽤나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하루키의 단편 소설과 수필만큼은 어쩐지 모니터로 읽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는가 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래서야 언젠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과 수필이란 역시 모니터로 봐야 제맛이지’ 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학교에 다닐 때엔 보통 하루의 생활을 준비하는 시간인 아침에 읽었다. 그렇게 하루키의 단편 소설과 수필을 읽는 행위란 내게 있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익히는 것이며, 또 경험한 세상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렇다 할 스승을 가지지 못했던 대학 시절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과 수필들을 통해 나는 조금씩이나마 자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루키의 단편 소설과 수필을 처음 읽기 시작한 2004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이클을 그런 식으로 읽어 왔다.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읽는 하루키 단편 소설과 수필>은 그야말로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그 꾸준함은 영원히 지속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