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 아주 오래 전의 토니 타키타니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3

by 이대


영화 <토니 타키타니>를 본 것은 2005년의 어느 날이었다. 어떤 계기로 그 영화를 보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극장은 (이것도 없어진 지 오래이지만) 스폰지 하우스로 바뀌기 전의 시네코아였고 날씨는 약간 찌뿌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토니 타키타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토니 다키타니」(한국어로 번역된 단편의 제목은 토니 '타키타니'가 아니라 토니 '다키타니'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일본에서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고, 그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하루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다른 영화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것으로는 <토니 타키타니>가 유일하다. (지금은 <드라이브 마이 카>와 「헛간을 태우다」를 영화화한 <버닝> 역시도 개봉되었지만)


「토니 다키타니」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째서 「토니 다키타니」일까' 라는 것이었다. 많은 하루키의 단편들 가운데 어째서 「토니 다키타니」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들 가운데 「토니 다키타니」는 굉장히 특이한 작품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생각을 가장 먼저 했던 것이다.


하루키의 단편들은 몇 가지의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토니 다키타니」만큼은 그 가운데 어떤 타입의 단편 목록에도 포함시킬 수가 없다. 문장 하나하나는 하루키의 문장이 분명하지만 그 문장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형식은 너무나도 낯설기만 하다. 비슷한 형식(타입)의 작품을 떠올리기 힘들다.


형식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토니 다키타니」는 무척이나 이질적이다. 작품에는 무려 네 명이나 되는 ‘비중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토니 다키타니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내와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여자가 그들이다. 하루키의 단편 가운데 이렇게나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은 극히 드물다. 그리고 그렇게나 많은 인물이 작품의 중심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작품은 「토니 다키타니」 말고는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토니 다키타니’와 같은 분명한 이름을 가진 중심인물이 등장하는 단편으로도 그런 작품은 이 작품이 (아마도) 유일하다. 수필이 아닌 단편 소설만을 두고 볼 때, 그 어떤 작품에서도 명확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작중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루키 작품 속의 인물들은 보통 ‘나’ 라거나 ‘여자친구’ 라거나 ‘아내’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마련이다(「마이 스니커 스토리」의 제임스 P. 브래들리 씨는 건너뛰기로 한다. 그 이유는 다들 알 것이다).


또한 3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단편 소설이라는 점에서도 「토니 다키타니」는 상당히 특이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아는 한에서는 2000년도에 문체의 변화를 준비하며 쓴 연작 소설집인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3인칭의 소설을 전혀 쓰지 않았다.


결국 「토니 다키타니」는 그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하루키의 단편 소설’이라는 범주 안에서 굉장히 이질적인 장소에 위치해 있는 작품인 셈이다.




나는 이러한 생각들을 하며 스크린 앞의 의자에 앉았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어째서…’ 하는 내 의문과는 상관없이 영화는 꽤 멋졌다. 영화가 전달해 주는 그 분위기가 하루키의 작품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거의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토니 다키타니 역을 맡은 배우 역시 매우 적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어딘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살고 있는 것만 같은 표정의 인물. 이렇게 쓰고는 있지만 사실 배우의 얼굴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언제나 내가 하루키의 단편을 읽을 때면 익숙하게 떠올리곤 하는 인물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오버랩되어 떠오를 뿐이다.


스크린 안에서 이야기는 ‘흘러갔다’. 비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 스크린의 화면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느릿느릿 흘러가며 전환되었다. 마치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책장을 넘겨 가는 것처럼. 최근에 「토니 다키타니」를 다시 읽어 보았더니 글에서의 이야기 전개에서도 역시 그런 식의 화면 전환과 매우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런 곳에서 ‘어째서 토니 다키타니인가’하는 내 의문은 풀릴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빠져나와 종로의 길을 걸으며 나는, 하루키의 팬으로서는 매우 만족스럽게 영화를 볼 수 있었지만 보통 관객으로서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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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니 타키타니>의 줄거리는 이렇다.


토니 다키타니는 습관적인 고독에 깊이 물들어 있는 인물이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혼자라는 것은 인생의 어떤 전제 조건이기까지 한 인물인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토니는 그렇게 자라 왔다. 몇 명의 여자를 사귀기도 하였으나 현실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앞으로 결혼하는 일도 없겠지, 라고 생각하던 토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랑에 빠진다.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고 그는 그 여자에게 청혼한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결혼하게 되었고 토니 다키타니의 인생에서 고독한 시기는 종언을 고한다. 고독에서 벗어남으로써 토니는 또다시 고독해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지만 시간에 지남에 따라 그는 곧 안정을 찾는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조로웠지만 딱 한 가지 토니 다키타니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아내가 지나치게 옷을 많이 사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그것은 마치 중독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토니 역시 불평은 하지 않겠노라고 생각했고 금전적인 여유도 있었지만, 매일 두 번 옷을 갈아입는다 해도 있는 옷을 다 입으려면 2년이나 걸릴 듯한 정도의 옷(영화 <토니 타키타니>의 메인 카피는 ‘731벌의 옷을 남기고 떠난 그녀’이다. 소설 속에서의 계산과는 차이가 있다)이 옷방에 가득 차게 되었을 때, 그는 이쯤에서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 아내도 그의 말에 동의하였다. 그녀는 단골 부티크에 전화를 걸어 코트와 원피스를 반품하겠다고 말한다. 반품을 하고 차를 몰고 돌아오던 길,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내내 그 코트와 원피스를 생각했다. 파랑으로 바뀌는 신호를 보고 튕겨나갈 듯 액셀을 밟은 그녀의 차머리를, 대형 트럭이 달려와 받았고 그녀는 무언가를 느낄 틈도 없었다.


토니 다키타니에게 남겨진 것은 방 하나 가득한 사이즈 7짜리 옷더미뿐이었다. 아내의 장례식을 치른 열흘 후 다키타니는 신문에 비서를 모집한다는 구인 광고를 낸다. 사이즈 7, 신장 161센티미터 전후, 신발 사이즈 22의 여성을 구함. 월급 최우대.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여성들 가운데 그는 아내의 체형에 가장 가까운 여성을 선발한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말한다. 일은 별로 어렵지 않지만 다만 조건이 하나 있다고. 실은 아내가 얼마 전에 죽었는데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그 옷들을 제복 대신에 입어주었으면 한다고.


여자는 그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알겠다고 말한다. 토니는 여자에게 아내의 옷방을 보여 주고 사이즈가 맞는지 한번 입어보라고 말하면서 그녀만 남겨 두고 나간다. 혼자 남은 방 안에서 여자는 몇 벌의 옷을 입어 보고 바라보고 쓰다듬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러는 동안 여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한참이나 소리를 죽여 흐느껴 운다. 한참 후에 다시 돌아온 토니는 여자에게 왜 우느냐고 묻지만 여자는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토니는 별 문제가 없다면 내일부터 나와 달라고 말하고 여자는 일주일분의 옷을 미리 골라 가지고 돌아간다. 여자가 돌아간 후 토니는 옷방에 혼자 남아 한참 동안이나 죽은 아내의 옷을 바라본다. 그리곤 여자 집에 전화를 걸어 미안하지만 오늘 일은 잊어 달라고 말한다.


결국 토니는 아내가 남긴 옷을 헌 옷 장수에게 전부 헐값에 팔아넘기고, 텅 비어버린 의상실을 오래도록 그대로 방치했다.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기억은 희미해져 갔다. 하지만 많은 것을 완전히 잊어버린 다음에도,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가 남기고 간 옷을 보고 눈물을 흘린 그 여자만은 이상하게도 잊혀지지 않았다.


아내가 죽은 지 2년 후 토니의 아버지가 죽는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것이라고는 방대한 옛 재즈레코드 정도였다. 토니는 레코드를 상자에 담아 빈 옷방에 넣어 두었지만 1년 후, 결국 레코드마저도 중고 레코드 장수에게 전부 팔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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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토니 다키타니」는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 레코드 상자를 싹 치우고 나자, 토니 다키타니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외톨이가 되었다.


하지만 영화 <토니 타키타니>의 마지막 장면은 다르다.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던 토니 다키타니는, 어느 순간 마치 잊고 있던 것이 문득 생각나기라도 한 듯 수화기를 집어든다. 여자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 것이다. 영화는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 것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끝나지만, 이야기되지 않아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이다.


어쩌면 하루키가 소설에서 전하려 했던 의도와는 다른 것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영화 <토니 타키타니>의 이런 결말이 더 마음에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신이 소설을 발표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영화화된 <토니 타키타니>의 마지막 장면을 바라보며 ‘그것도 뭐 괜찮겠지.’ 하고 생각했을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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