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4
고등학교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디에선가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자신의 유토피아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확하게 어디에서 읽은 것이었는지는 지금으로선 잘 기억해 낼 수 없다. 그것이 정말 하루키가 이야기했던 것인지, 아니면 하루키 소설 가운데 등장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실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 이미지만큼은 무척이나 분명하게 내게 남아 있다.
하루키의 유토피아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도시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어딘가의 조용한 오두막이다. 어쩌면 깊고 깊은 숲 속에 위치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모양새의 오두막에서는 물기를 머금은 싱그러운 나무 냄새가 나고 오두막 안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과 의자,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과 그리고 침대만이 단출하게 놓여 있다. 그 밖의 다른 어떤 물건도 그저 과잉일 뿐 필요치 않다는 느낌의 공기가 오두막을 둘러싸고 있다.
그와 같은 오두막 안에서 하루키는 하루 온종일 무언가를 읽고 또 쓰는 것이다. 누구로부터도, 무엇으로부터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으며 한없이 읽고 또 쓰는 것만으로 시간을 보낸다. 숲 속의 작은 개울물처럼 오두막에서의 시간은 잔잔하게 흐른다. 식사 시간이 되어 배고픔을 느낀 하루키는 오두막의 현관문을 가만히 열어 본다. 그럼 현관문 앞에는 어김없이 따듯한 김이 나는 식사가 쟁반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음식의 맛은 훌륭하다. 더할 나위 없이 입에 딱 맞는 맛이다. 하루 세 번의 식사 시간이면 그처럼 식사가 담긴 쟁반이 어김없이 오두막의 현관문 앞에 놓여진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나서, 하루키는 다시금 책상에 앉아 읽던 책을 마저 읽거나 쓰던 문장을 이어 나간다. 잠시 웅덩이에 머물러 있던 시간은 다시금 천천히 흘러 가기 시작한다.
햇살이 좋은 날에는 종종 현관 포치의 덱 체어에 누워 일광욕을 하며 오수를 즐기기도 하고 또 때로 시원스레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면 읽던 책을 책상 위에 엎어 두고 손으로 턱을 괸 채 창 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한동안 바라보기도 한다.
차츰 어둠이 찾아들고, 새들도 모두들 자신의 둥지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면 하루키도 하루를 정리하고 침대의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이불은 따듯하고 잠을 설치는 일이란 매우 드물다. 밤이 지나 아침이 다가오면 남쪽을 향해 있는 오두막의 창으로부터 산새의 아침 울음소리와 함께 포근한 햇살이 오두막 안으로 비쳐 들어온다. 그리고 하루키는 잠에서 깨어 자기 앞에 주어진 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오늘을 다시 살아 가는 것이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 이상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자신의 유토피아였다.
그러고 보면 하루키의 작품 속에서는 그의 유토피아를 연상시키는 장소가 자주 등장한다.
쥐가 보내어 온 양을 찍은 사진을 근거로 찾아 간 <양을 쫓는 모험> 속의 쥐 아버지의 별장이 그렇고, 카프카 소년이 아침이면 찾아가 책을 읽고 점심 식사 시간이 되면 뜰로 나와 샌드위치를 먹곤 하던 <해변의 카프카>의 도서관이 그렇고, 역시 카프카 소년이 오시마 상과 함께 그의 로드스터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깊은 숲 속 오시마 상의 별장이 그런 장소이다. 그 장소들에는 언제나 책으로 가득한 책장이 존재하고 불필요한 것이라고는 물론 단 한 가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하루키의 작품을 읽던 가운데 주인공이 그런 장소를 마주할 때면 언제고 하루키의 유토피아를 떠올리곤 했다. 아니,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는 하루키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럴 때면 언제나 왜인지 모를 묘한 행복감에 젖어 들곤 했다.
하루키의 유토피아가 가진 정말 매력적인 부분이란, 무엇보다 그 세계에서는 하루키 자신이 의도하지 않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제 일어나지 않은 일은 오늘도 일어나지 않고 오늘 일어나지 않은 일은 내일 역시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차곡차곡 질서 정연히 쌓여 가는 하루하루가 있을 뿐이다. 그 세계 안에서, 어제는 자연스레 흘러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 역시 유유한 맥락을 타고 내일로 연결된다. 특별히 기억해 두어야 할 과거가 존재하지도 않고 염려해야만 하는 미래의 일이랄 것도 없다. 요컨대, 충실히 현재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기만 한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그와 같은 이상향을 떠나고야 만다. 예전의 나는 그게 너무나도 안타깝고 아쉬워 자꾸만 책장을 앞으로 넘기곤 했다. 그곳에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고만 싶은 마음에서.
하지만 지금에 와선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째서 그들은 유토피아를 떠나야 했는지를, 그리고 어째서 작품의 마지막에서도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