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5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그의 작품들과 작품들에 등장하는 것들을 제외하고, 나 같은 경우에는 ‘마라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루키 자신도 자신이 하고 있는 마라톤에 대해 그 중요성을 여러 번 언급했고 나 역시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꾸준히 하고 있는 마라톤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 의미 부여란 다른 것이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처럼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는 데에 필요한 끈기와 집중력을 바로 마라톤으로부터 얻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건 체력적 즉, 신체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이 더 큰 것 같은데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글이 아니므로 넘어가자.
그리고 두 번째로 떠오르는 건 웬일인지 ‘두부’다. 하루키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평소 식사할 때는 야채와 생선을 주로 먹는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아마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두부인 듯싶다. 하루키의 수필 가운데는 두부가 등장하는 수필이 꽤 많다. 한 수필에는 무려 ‘가장 맛있는 두부는 정사 후에’ 라는 제목이 달려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수필에서는 자신을 인터뷰하고 간 인터뷰어가 기사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루에 먹는 두부의 양이 세 모라고 적었다고 심통을 부렸는데 그 뒤에 괄호치곤 (사실은 한 모다) 라고 적어 두었다. 아니 하루에 두부를 한 모씩 꼬박꼬박 먹으면 그것도 많이 먹는 것 아닌가요, 무라카미 하루키 씨.
그리고 또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면 그려지는 이미지 중엔, 왠지 누군가를 좋아하지도 혹은 싫어하지도 않을 성자聖者같은 이미지도 존재한다. 인터넷에 하루키를 검색하면 나오는 사진들이라든지 아니면 책날개에 실려 있는 사진들에서 보이는 모습과 표정들은 그런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그 무덤덤한 표정이랄까, 아니면 인생무상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는 표정이랄까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소설가들의 사진은 대부분 그렇지 않냐고? 무슨 말씀을, (내가 좋아하는 또 한 명의 소설가인) 김연수의 사진들을 보면 누굴 꼭하니 좋아하거나 직접 가서 표현은 못해도 마음속 깊이 꿍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이 생기지 않았는가. 그래서 싫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그런 성자 같은 이미지의 무라카미 하루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좋아하는 사람 한 명과 싫어하는(아마도 싫어할) 사람 한 명을 짐작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것이라 짐작되는 사람은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이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루키의 수필에 여러 번 등장하는 인물인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은 일본에서 한 잡지에 연재되었던 하루키의 수필에 일러스트를 삽입함으로써 아마 하루키와 친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밤의 거미원숭이>라는 하루키의 단편집에도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이 그린 표지와 일러스트가 실려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하루키의 수필에 종종 등장하는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의 모습을 보면 늘상 하루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꾸며 퍼뜨리거나(장난 삼아), 혹은 하루키가 좋아하지 않는 시끌벅적한 저녁 술자리에 하루키를 불러내어 세상에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술자리 문화를 가르치거나(짓궂게), 하는 모습이라는 거다. 아마도 하루키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은 미즈마루 화백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하루키는 투덜댈 뿐이지만, 그런 투덜댐을 읽으면서도 그 안에 미즈마루 화백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걸 보면 정말이지 신기할 따름이다.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의 그림을 보면 약간 유치하다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인데, 하루키의 수필을 읽다 보면 그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문장들 속에서 스며 나오는 진중한 맛이 미즈마루 화백의 그림과 닮은 것도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자, 이제 남은 건 무라카미 하루키가 싫어하는 것 같은 사람이다. 그는 바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라는 인물로 스페인의 유명한 가수란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그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인터넷에 한 번 검색해 보았는데 검색어 자동완성도 되는 걸 보면 유명하긴 유명한 가수인 모양이다. 그런데 검색해서 나오는 사진들을 보면 하나같이 왠지 모르게 ‘이 정도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싫어할만하네’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만 그런 건가?
어쨌든, 하루키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를 좋아하는 (주로) 여성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얼굴만 잘생겼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랄까? 그런 반감을 수필로까지 적은 걸 보면 대단한 일이다.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감정을, 아니 누군가에 대한 감정을 수필로 적은 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유일하니 말이다. 게다가 아마 하루키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음악도 역시 별로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한 단편 소설에서는 무려 바다거북의 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단으로 모기향과 함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음악이 동원되는데, 바다 거북이 싫어할 것 중의 하나로 그의 음악을 꼽는 것이다.
(…)
"원리적 사고를 하도록 노력하는 거야. 바다거북이 모기향을 싫어한다면, 그 밖에도 틀림없이 녀석이 싫어하는 것이 무언가 있을 거야. 이를테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예요?"
그녀가 물었다.
"모르겠어. 지금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어. 뭐 일종의 육감 같은 것이지."
나는 육감이 이끄는 대로 스테레오 턴테이블 위에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비긴 더 비긴'을 맞춰 놓고,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날이 저물면 틀림없이 바다거북은 습격하러 올 것이다. 그때 모든 일이 결정 난다. 우리가 먹히느냐, 바다거북이 우느냐, 이다.
한밤이 되기 조금 전에, 문 근처에서 철퍼덕 철퍼덕 하는 습습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을 때, 나는 잽싸게 레코드에 바늘을 올려놓았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설탕물 같은 목소리로 '비긴 더 비긴'을 노래하기 시작하자, 그 발걸음 소리는 딱 멈추었고, 대신에 괴로운 듯한 바다거북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우리가 바다거북한테 이긴 것이다.
그날 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비긴 더 비긴'을 126번이나 노래했다. 나도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싫어하는 편이지만, 다행히도 바다거북만큼은 아니다.
모기향과 비견될 정도라니, 하루키에게 그의 음악이란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된다.
하루키의 영향으로 나는 이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라는 이름만 들어도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소방서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 상병 무렵 가을쯤이었나? 소방서에서 화력발전소 쪽으로 합동 훈련을 나간 적이 있었다. 점심시간이어서 점심을 먹고 직원분과 소방차에 앉아 훈련 시작 신호를 기다리며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다음 곡을 소개했다.
“다음에 들으실 곡은, 매력적인 아티스트죠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나는 옆에 앉아계신 직원분은 신경 쓰지도 못한 채, 엎드려 한참이나 큭큭대고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