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프릳츠를 찾았다.
마포역 근처에 오래 앉아 있는 카페다.
맞은편에는 큰딸이 앉아 연필로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종이에 스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작은 빗소리처럼 들렸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혼자 이곳을 종종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갓 구운 빵 냄새가 먼저 코끝을 잡아당기고,
에스프레소 머신의 짧은 숨소리가 그 뒤를 따라왔다.
버터 냄새와 커피 향이 따뜻한 공기처럼 피부에 닿았다.
그 안에 앉아 있으면
달콤한 냄새와 쌉쌀한 맛, 잔을 잡은 손의 온기까지
한꺼번에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의 자유는
따뜻한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을 때처럼
작지만 분명한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늘 블루베리 파이와 라떼를 주문했다.
바삭한 패스츄리 속에서
짙은 보라색 잼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새콤한 향이 코를 스치고
버터의 고소함이 혀에 남고
라떼의 부드러운 거품이 그 위를 덮었다.
마치 겨울 창문에 내려앉은 햇빛이
조용히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오늘도 라떼와 블루베리 파이를 주문했다.
딸아이는 카페인이 없는 허브차,
민트 멜란지를 골랐다.
평일 오후였지만 자리가 꽉 차
2층으로 올라가 겨우 빈자리를 찾았다.
아이는 스도쿠를 몇 개 풀더니
곧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필사를 하고 책을 읽었다.
우리는 마주 앉아 있었지만
각자의 작은 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연필 소리와 페이지 넘기는 소리만
잔잔한 물결처럼 테이블 위를 오갔다.
문득 생각했다.
아이가 많이 컸구나.
예전에는 이곳에 혼자 앉아
잠깐의 숨을 고르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와 마주 앉아
각자의 시간을 조용히 꺼내 쓰고 있다.
'고생'이라는 말은
쓴 고(苦)와 날 생(生)으로 이루어져 있다.
쓴 것을 삼키며 살아가는 일.
가끔은 설탕 없는 한약을 한 번에 삼키듯
목을 타고 내려가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쓴맛이 조금씩 몸을 데워
오늘 같은 오후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은
오래된 카페의 나무 테이블 같았다.
수없이 컵이 내려앉았던 자리,
작은 흠집과 얼룩이 남아 있지만
그래서 더 따뜻한.
나는 그 테이블에 앉아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잘 왔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천천히 와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