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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희비극 Jun 08. 2020

#12

  나와 동생을 키우느라 엄마는 늘 바빴다. 당연히 엄마는 대부분의 학교 행사에 오지 못했다. 졸업식날도 아침 일찍 사진만 찍고 서둘러 갔으니 학부모 참관수업이라든지 운동회 같은 행사에 엄마가 오는 건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신경 써줄 여력이 없다고 다시는 반장을 하지 말라 했을 정도니까. 


  그런 엄마가 느닷없이 학교에 오는 날도 있었다. 몇 년에 한 번 꼴로, 아주 드물고 불규칙적인 방문이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그냥 오지 않고 반 아이들이 모두 먹을 수 있을 만큼 햄버거나 피자 같은 걸 사 오곤 했다. 먹는 걸 좋아하면서도 나는 거의 먹지 않고, 복도로 나가 선생님과 이야기 중인 엄마를 이렇게 만지고 저렇게 만졌다. 팔짱을 끼고 매달렸다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만져보다가 뒤에서 끌어안아보기도 했다. 나중에야 첫사랑의 실연으로 성적이 뚝 떨어져 담임선생님이 연락해서 왔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정을 몰랐던 그때에는 그저 좋기만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엄마 손을 잡고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다른 반 친구들에게도, 선배들에게도,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에게도, 교장선생님과 외국인 선생님, 사서 선생님, 경비 아저씨와 학교 옆 문구점 사장님에게도 엄마를 소개하고 싶었다. 우리 엄마예요, 하고 자랑하고 싶었다. 나도 엄마가 있어요, 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어른이 된 나는 그 기분을 거의 잊고 살았다. 그런데 복이랑 외출을 할 때면 엄마가 학교에 왔던 날과 비슷한 마음이 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 개가 우리 개에요, 하고 자랑하고 싶었다. 다리가 정말 길고, 털이 곱실거리고, 기분이 좋으면 귀를 뒤로 한껏 젖힌 채로 총총 걸어가는 강아지. 안으면 액체처럼 빈 공간에 꼼꼼히 스며들고 허술하게 꾀를 부려 그 수가 다 보이는 강아지. 이렇게 사랑스러운 개가 우리 개라고, 우리 집에 사는 개라고 지나가는 사람을 하나하나 붙잡고 자랑하고 싶었다.   


  요즘에는 유난히 개와 다니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띈다. 개도 사람도 하나같이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지나간다. 그 모습을 보면 나도 개 있는데, 나를 제일 좋아해 주는 개가 있는데, 있었는데, 하게 된다. 겁이 많아 내가 없는 곳에서는 한없이 순해졌다가도, 내가 얼굴을 비추면 바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카랑카랑 짖는 개. 잔뜩 말았던 꼬리를 순식간에 쳐드는, 어이없을 정도로 귀여운 개. 복이랑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자주 내가 대단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래전 동생은 한동안 유행했던 ‘나만 고양이 없어’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달고 살았다. 사람 아닌 동물이 한 공간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복이 때문에 우리는 고양이와의 동거를 기약 없는 먼 훗날로 미뤘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정말로 ‘나만 개가 없는’ 기분이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어릴 적 학교에서 몰래 울었던 것처럼 자꾸만 눈물이 새어 나온다. 나는 엄마의 사정도 잘 알았고, 그래서 엄마가 학교에 오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학교에 찾아온 친구들의 엄마를 볼 때면 아무도 찾지 않는 구석에서 얼마간 울곤 했다. 다 아는데.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학교에 오고 싶다는 것도 알고, 그래서 속상해한다는 것도 아는데. 그러니까 의젓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상하게 서러워지는 기분으로 어찌할 줄 몰라 결국 엉엉 울어버렸다. 


  나는 이제 복이가 없다는 것도 안다. 잘 알고 있다. 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언젠가 떠나보내는 일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소식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종종 접했으니까. 그러므로 이 일이 나만의 슬픔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비록 ‘사고’라는 예측하지 못했던 원인이 끼어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수한 불행이 내게만 닥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와 복이만 애틋한 건 아니니까. 강아지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언젠가 헤어짐을 준비해야 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제는 의젓하게 받아들일 때도 됐는데. 그렇게 생각할수록 어째서인지 나는 어릴 때 숨어 들어갔던 ‘아무도 찾지 않는 구석’이 간절해진다. 느리지만 다시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갈수록.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앞에서 꾸미지 않은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될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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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선

그림: 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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