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반드시 실패한다.

박찬욱, <복수는 나의 것>

by 박빈

편의점이나 대형 할인점의 1+1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마치 연금술처럼 보인다. 기존의 소매가를 지불했는데 같은 가격의 상품을 하나 더 얻는다는 감각은, 구리와 수은으로 금을 연성하는 일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물론 기업 역시 1+1 마케팅 전략을 취했음에도 남는 이득이 있기에, 소비자는 기업을 상대로 연금술에 성공했다는 착각을 할 뿐이다.


이때의 착각은 소통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기업은 소비자에게 이익 구조를 고지할 의무가 없고, 소비자 역시 기업의 계산 방식에 깊이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서로가 서로의 계산을 굳이 공유하지 않는 상태에서 1+1은 이득처럼 보인다. 다만 연금술이 참조하는 등가교환은 본래 상호 이해관계와 협의에 의해 작동하는 교환 시스템이다. 그 교환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검증될 때 거래는 성립한다. 1대 1이라는 최소한의 납득 가능한 원칙이 전제된다.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복수는 이 등가교환의 법칙에서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복수는 처음부터 합의와 협의가 불가능하다. 이해관계를 맞추기 위해 한쪽은 반드시 피해자가 되어야 하고, 다른 한쪽은 반드시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 한쪽은 강탈당했고, 다른 한쪽은 그것을 강탈했다(우발적이더라도). 이 둘 사이에는 교환을 조정할 공론의 장이 없다. 이 지점에서 복수는 등가교환이 아니라 연금술에 가까워진다. 소통이 불가능한 구조이기에, 류(신하균)가 농아로 설정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복수는 말로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계산으로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복수에는 불균형한 균형을 맞추기 위한 셈의 오류가 있다. 복수에서의 더하기는 없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강탈당한 것에 준한다고 ‘믿는’ 것을 갈취하거나 삭제하는, 뺄셈의 법칙만 존재하는 기이한 구조다. 인신매매 일당의 신장을 세 개나 적출했음에도 류가 자신의 신장을 되찾을 수 없는 것처럼, 무언가를 강탈하더라도 결과는 언제나 결핍 쪽으로 기운다. 복수는 회복이 아니라 소거의 연쇄다. 인신매매 일당 → 류, 류·영미 → 동진, 동진 → 영미 일당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이 뺄셈이 전염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삭제가 지속될 때 복수라는 개념은 존속 가능할까. 영화는 이 셈법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최초에 누나의 신장을 위해 류는 자신의 신장 한쪽과 1,000만 원을 걸었다. 유선의 목숨값은 영미의 계산을 통해 2,600만 원으로 책정된다. 유괴 사실과 누나의 목숨은 거래되고, 신장 한쪽과 1,000만 원을 강탈한 인신매매 집단은 세 명분의 목숨으로 값을 치르게 된다. 동진의 딸의 죽음 역시 세 명 분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 수치들은 객관적 가치판단이 아니라 상황과 인식에 따라 변덕스럽게 조정되는 주관적 셈법일 뿐이다.


특히 영미는 이러한 변덕적 계산의 기표처럼 보인다. 수술비가 1,000만 원만 필요했음에도 그녀의 판단을 거치면서 유선의 목숨값은 2,600만 원이 된다.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 자처하지만 유선과 함께 놀 때는 ‘멸공’을 외치는 장면은, 신념조차 계산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셈법은 불투명하다.


상호 이해관계가 차단된 상황에서 셈은 오로지 주관적 이해와 인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계산이 타당하다는 확신이 서는 순간, “그가 착한 사람인 줄 알지만 죽이겠다”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이때의 셈법을 통해 연금술에 성공했다는 환각이 발생한다. 환각은 균형을 만든다. 류와 동진은 그 균형을 믿을 수밖에 없다. 복수가 나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이 믿음을 깨부수는 장면이 등장한다. 동진은 정체불명의 무리(영미 일당)에게 습격당하지만, 왜 자신이 습격을 당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계산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세운 셈법 바깥에서 또 다른 폭력이 도착할 때, 복수의 연금술은 즉시 실패한다.


<복수는 나의 것>은 복수라는 이름의 연금술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등가교환처럼 보이기 위해 계산이 필요하고, 그 계산을 정당화하기 위해 환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환각은 외부의 개입 앞에서 너무도 쉽게 무너진다. 영화는 복수를 정의로 다루지 않는다. 균형이 어긋나는 뺄셈의 셈법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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