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매몰되지 않기
몇 년 전만 해도 TV만 틀면 게임 광고가 나왔다. 화려한 시네마틱 영상과 유명 배우가 등장하는 광고를 보며, 누군가는 "저 게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을 품었다. 그때의 마케팅에는 일종의 '낭만'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모든 것은 데이터로 치환된다. 효율과 성과 달성이라는 명목 아래, TV에서 보던 그 낭만적인 광고들은 데이터 성과 측정 기준이라는 단두대 위에서 사라졌다. 이제 마케터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배포가 아니라, 소수점 단위의 ROI 달성뿐이다.
숏폼 도파민 중독이 일상이 된 시대다. 마케터들의 창의적인 갈증은 '7일 이내에 우상향 숫자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변했다. 흔히 "조금 더 성과를 기다려봅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게으름이자, 용납되지 않는 죄악처럼 취급받는다.
문득 돌이켜본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떤 광고를 보았나. 수백 개의 소재가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의도된 목적에 따라 내가 어떤 액션을 취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숫자는 올라갔을지언정,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사라진 셈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여전히 구매력이 높은, 이른바 '고과금 유저'들은 여전히 분야별 잡지를 읽고 올드 매체를 소비한다고 한다. 0.1초의 스크롤로 결정되는 세상에서, 그들은 여전히 종이를 넘기며 시간을 들여 콘텐츠를 음미한다. 우리가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무시했던 그 구식 매체들이, 실은 가장 견고한 코어(Core)를 붙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자신감 있게 숫자를 거부하고, 조금은 게으르게 결과를 기다려줄 줄 아는 배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