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망할 때 독주하는 기업들의 비밀, 자본배치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의 진짜 의미

by 머니맥락

들어가는 글: 난공불락의 성벽은 언제 지어졌는가


가치투자를 공부하다 보면 워런 버핏이 강조한 경제적 해자라는 개념에 매료되곤 합니다. 높은 브랜드 가치, 전환 비용, 네트워크 효과 등으로 무장한 기업들을 분석할 때면 저는 종종 경외감을 느낍니다. 과연 후발 주자들이 이 견고한 성벽을 넘을 수 있을까? 경쟁사들이 아무리 가격을 낮추거나 마케팅을 퍼부어도 끄떡없는 1등 기업들을 보며, 그들의 독점적 지위는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차트를 과거로 돌려보면 여기서 한 가지 근원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기업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해자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그들도 한때는 치열한 경쟁자들 틈바구니에 있던 평범한 기업이었고, 거센 풍랑 앞에 위태로운 조각배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결정적인 순간이, 그들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을까요?

저는 그 비밀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기치 않은 행운의 파도, 즉 호재가 밀려왔을 때 단순히 그 파도를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어 성벽을 쌓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공장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평범했던 기업이 어떻게 운 좋게 얻은 현금을 영구적인 실력으로 치환해 냈는지, 그 결정적인 노 젓기의 순간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1. 아마존: 닷컴 버블의 파도를 물류 제국으로 바꾸다


이러한 전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기업이 바로 아마존입니다.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시기, 인터넷 기업들은 이름 뒤에 닷컴만 붙여도 주가가 수십 배씩 폭등하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습니다. 당시 많은 기업이 주가 부양을 위한 마케팅에만 돈을 쓸 때, 제프 베조스는 겟 빅 패스트(Get Big Fast) 전략을 고수하며 들어오는 돈을 모조리 재투자했습니다. 그는 당장의 순이익을 포기하고, 고객 중심의 서비스와 막대한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사활을 걸었습니다.

버블이 붕괴되고 아마존의 주가가 100달러에서 6달러로 90% 이상 폭락했을 때, 시장은 아마존도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거품이 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허상이 아니었습니다. 호황기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놓은 거대한 물류 센터와 데이터 기술, 그리고 충성도 높은 고객 기반이라는 실체가 남아 있었습니다. 경쟁자들이 자금난으로 파산할 때, 아마존은 이미 구축해 놓은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전자상거래 시장을 독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존에게 닷컴 버블은 단순한 투기판이 아니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해자를 구축할 자금을 조달해 준 물 들어온 시기였던 것입니다.


2. 삼성전자: 패스트 팔로워의 초격차 전략


대한민국의 삼성전자 또한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전략의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2010년경 시작된 글로벌 스마트폰 붐은 전 세계 IT 기업들에게 거대한 기회이자 위기였습니다. 삼성전자는 애플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안드로이드 진영의 폭발적인 성장이라는 파도가 밀려오자 주저 없이 모든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갤럭시 S 시리즈의 성공으로 막대한 현금이 유입되자, 삼성은 이를 단순히 배당이나 유보금으로 쌓아두지 않았습니다.

삼성은 그 자금을 활용해 수직 계열화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스마트폰의 두뇌인 AP, 저장장치인 메모리 반도체, 그리고 눈인 디스플레이까지 직접 생산하는 설비에 투자한 것입니다. 이른바 빠른 2등 전략으로 시작했지만, 벌어들인 돈으로 제조 공정의 혁신을 이루어 냈습니다. 이후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가 시작되었을 때, 다른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이 수익성 악화로 무너져간 반면 삼성은 압도적인 부품 경쟁력과 규모의 경제를 통해 살아남았습니다. 일시적인 스마트폰 붐을 통해 확보한 자본을 초격차 기술이라는 실력으로 전환한 덕분에 10년 넘게 글로벌 1위 자리를 수성할 수 있었습니다.


3. 넷플릭스: 데이터와 콘텐츠로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성벽


앞서 언급한 아마존과 삼성이 눈에 보이는 유형 자산에 투자했다면, 소프트웨어 기업인 넷플릭스는 무형 자산에 올인하여 해자를 만든 사례입니다. 스트리밍 시장이 열리며 가입자가 폭증했을 때, 넷플릭스는 단순히 영화를 배급하는 플랫폼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벌어들인 돈을 주주에게 환원하는 대신, 매년 수조 원을 들여 오리지널 콘텐츠와 추천 알고리즘 개발에 쏟아부었습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넷플릭스는 돈을 버는 족족 콘텐츠 제작비로 날린다며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였습니다. 오징어 게임이나 기묘한 이야기 같은 독점 콘텐츠 라이브러리가 쌓이자, 이는 경쟁사가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진입장벽이 되었습니다. 또한 수억 명의 시청 데이터를 분석해 취향을 저격하는 알고리즘은 고객을 가두는 락인 효과를 만들었습니다. 공장을 짓지 않아도, 데이터와 지적 재산권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어떻게 물리적 해자만큼 강력한 독점력을 만들 수 있는지 넷플릭스는 증명해 냈습니다.


4. 블록버스터: 노를 젓지 않고 파도에 휩쓸린 거인


반면, 물이 들어왔음에도 노를 젓지 않아 파산의 길을 걸은 대표적인 사례가 블록버스터입니다. 2000년대 초반, VHS에서 DVD로의 매체 전환은 블록버스터에게 엄청난 매출 증대를 가져다준 호재였습니다. 사람들은 더 선명한 화질을 즐기기 위해 비디오 대여점으로 몰려들었고, 블록버스터는 전체 수익의 약 16%에 달하는 막대한 연체료 수익을 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풍요로운 시기에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넷플릭스는 우편 대여 모델을 시작으로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블록버스터는 자신들의 성공 방식인 오프라인 매장 확대와 연체료 수익 모델에만 집착했습니다. 심지어 2000년, 넷플릭스를 단돈 5,000만 달러에 인수할 제안조차 거절했습니다. 그들에게 DVD 호황은 혁신을 위한 자금이 아니라, 그저 즐겨야 할 축제였습니다. 결국 인터넷 스트리밍이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왔을 때, 블록버스터는 아무런 방어막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호황기에 안주한 대가는 기업의 소멸이었습니다.


하워드 막스의 사이클과 투자의 본질


투자의 대가 하워드 막스는 그의 저서와 메모를 통해 시장은 시계추처럼 양극단을 오간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업의 이익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기업이 높은 마진을 남기면, 자본주의의 속성상 경쟁자들이 몰려들어 이익률은 결국 평균으로 회귀하게 됩니다. 이것이 평범한 기업들이 겪는 운명입니다. 그들은 업황이 좋을 때 잠깐 돈을 벌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다시 평범한 수익률로 돌아가거나 도태됩니다.

하지만 위대한 기업은 이 평균 회귀의 법칙을 거스릅니다. 그들은 사이클의 상단, 즉 이익률이 일시적으로 급증했을 때를 가장 중요한 시기로 판단합니다. 남들이 축배를 들 때, 그들은 벌어들인 현금을 쏟아부어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바리케이드를 칩니다. 그것은 삼성의 반도체 공장일 수도 있고, 넷플릭스의 독점 콘텐츠일 수도 있습니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투자는 사이클이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무기가 됩니다.


나가는 글: 투자자가 던져야 할 질문


결국 주식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승리하는 기업은 매일 치열하게 경쟁하는 평범한 기업이 아니라, 운이 좋았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비범한 기업으로 도약한 곳입니다. 평범한 기업들은 호황기가 끝나면 다시 생존을 걱정해야 하지만, 뛰어난 기업은 호황기의 과실로 불황기에도 무너지지 않는 성을 쌓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삼성전자나 아마존, 넷플릭스에서 배워야 할 점이며, 블록버스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이유입니다.

따라서 현명한 투자자라면, 기업의 매출이나 이익이 급증했을 때 단순히 환호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경영진의 자본배치 능력을 검증해야 합니다. 이 기업은 지금 벌어들인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경영진이 잉여 현금을 배당 잔치나 무리한 확장에 낭비하고 있는지, 아니면 경쟁사가 전율할 만큼 미래의 해자에 재투자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 투자의 형태가 삼성전자처럼 눈에 보이는 공장이든, 넷플릭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이든 본질은 같습니다. 핵심은 얼마나 벌었는가가 아니라, 번 돈을 어떻게 배치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기업, 그곳에 우리의 소중한 자산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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