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하워드 막스, 모건 하우절
전설적인 가치투자자 하워드 막스(Howard Marks)는 "투자는 과학보다 예술에 가깝다"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투자란 정해진 공식에 대입하면 답이 나오는 기계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수익, 즉 '알파'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수치화된 데이터 너머를 꿰뚫어 보는 직관과 통찰력이라는 '재능'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다음 대목은 약간 절망적입니다. 막스는 이러한 타고난 투자 감각이 없는 사람이 아무리 과학적 분석 기법을 배우고 노력한다 해도, 최대로 달성할 수 있는 성과는 기껏해야 '시장 평균 수익률(인덱스)' 수준에 불과하다고 냉정하게 진단했습니다.
이 냉혹한 조언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평범한 두뇌를 가진 우리는 초과 수익을 낼 꿈을 접어야 하는가? 주식 투자도 결국 예체능처럼 타고난 DNA가 결정하는 재능의 영역인가?"라는 의문이 꼬리를 뭅니다. 노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에 포기하고 싶어 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하워드 막스가 남긴 그 절망의 빈칸을 '인문학'이라는 도구로 채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가 말한 '가르칠 수 없는 직관'은 어쩌면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는 인문학적 훈련을 통해 후천적으로 습득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투자가 왜 재능을 필요로 하는 예술의 영역인지 살펴보고, 타고난 감각이 부족한 우리가 어떻게 인문학(역사, 철학, 심리학)을 통해 그 재능의 격차를 극복하고 시장을 이기는 통찰력을 갖출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하워드 막스는 시장 평균을 넘어서는 초과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대다수 투자자와 다르게 생각하는 '2차적 사고(Second-level thinking)'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는 1차적 사고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이 기업의 실적이 좋다. 전망도 밝다. 그러니 주식을 사야 한다."라는 식의 단순한 인과관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며, 이러한 정보는 이미 주가에 반영되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반면 2차적 사고는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갑니다. "실적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장은 이 호재에 과도하게 반응하여 주가를 너무 높게 끌어올렸다. 사람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 있어 작은 실망 매물에도 주가는 폭락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은 오히려 팔아야 할 때다." 이것이 바로 2차적 사고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학교 교과과정이나 재무학 수업에서 가르치기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막스는 이것이 개인의 기질, 경험, 그리고 직관적인 판단력에서 나오는 '예술적' 영역이라고 보았습니다. 농구 코치가 선수에게 드리블 기술을 가르칠 수는 있어도 선수의 '큰 키'나 동물적인 '반사 신경'을 가르칠 수 없듯이, 투자에서의 통찰력 역시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 크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수많은 데이터를 보면서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거나, 모두가 공포에 떨 때 기회를 포착하는 투자자들을 보며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이러한 비정형적 능력은 수치화할 수 없기에 과학보다는 예술에 가깝습니다.
과거에는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먼저 아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수익의 원천이 되곤 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전문가들만이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고, 개인 투자자들은 그들이 흘려주는 정보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은 정보의 장벽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이제는 펀드 매니저나 방구석의 개인 투자자나 스마트폰 하나면 거의 동일한 재무 데이터, 뉴스, 공시 자료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정보가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공재'가 된 시대입니다.
모두가 같은 재료를 가지고 있다면, 요리의 맛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주어진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가공하느냐 하는 '해석 능력'에서 결정됩니다. 하워드 막스가 투자를 예술이라 칭한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거시 경제 환경, 대중의 심리, 경영진의 퀄리티와 같은 정성적인 정보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과학적 연산이라기보다 예술적 해석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PER(주가수익비율)이 낮으니 싸다"라는 정량적 판단은 1차원적입니다. 숫자가 보여주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의 지속 가능성, 경영진의 도덕성, 다가올 미래 산업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지금 수치상으로는 비싸 보이지만, 미래의 성장 폭을 감안하면 여전히 싸다"라고 판단하는 능력, 혹은 그 반대의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야말로 현대 투자에서 가장 요구되는 자질입니다.
하워드 막스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런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한 커리큘럼을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문학이 그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베스트셀러 <돈의 심리학>의 저자 모건 하우절(Morgan Housel)은 그의 책에서 인문학적 독서의 중요성을 이렇게 역설합니다.
금융위기에 관해 교과서에서 배울 수는 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의 공포를 교과서에서 느낄 수는 없다. 그 공포는 실제로 겪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공포와 탐욕, 절망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이 말은 인문학적 독서가 왜 투자의 재능(직관)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지 정확히 설명합니다. 경제학 교과서는 그래프로 위기를 설명하지만, 위기의 순간 시장 참여자들이 느낀 숨 막히는 공포와 비이성을 가르쳐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문학 작품이나 역사서를 통해 17세기 튤립 파동, 1929년 대공황, 2000년 닷컴 버블 당시 사람들의 광기와 절망을 깊이 있게 읽은 사람은, 활자 너머에 있는 인간의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적 데이터'가 쌓이면, 현재 시장이 과열되었을 때 본능적인 경보음을 울려주는 직관이 형성됩니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위기조차 몸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인문학이 주는 힘이며 하워드 막스가 말한 '경험'을 시뮬레이션하는 방법입니다.
투자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성패가 갈립니다. 모건 하우절은 이 점에 대해 매우 통찰력 있는 조언을 남겼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남들이 모두 미쳐가는 몇 안 되는 날에 당신이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는가 하는 점이다.
시장이 평온할 때는 누구나 이성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가가 하루에 20%씩 폭락하고 뉴스가 세상이 망할 것 같은 공포로 도배되는 날, 즉 '남들이 미쳐가는 날'에 매수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요? 이는 재무제표 분석이나 차트 기술이 아닌,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인 심리학과 철학에서 나옵니다.
첫째, 철학적 사고는 경영진의 질적 요소를 판단하고 투자의 원칙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줍니다. 경영진이 주주를 대하는 태도나 기업 문화를 만들어가는 철학은 재무제표에 나오지 않지만 기업의 장기적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입니다. 스스로 확고한 투자 철학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시장의 작은 흔들림에도 부화뇌동하게 됩니다.
둘째, 심리학은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중심을 잡는 멘탈을 길러줍니다. 하워드 막스는 시장을 이기기 위해 군중과 반대로 움직일 수 있는 타이밍 감각과 심리적 용기를 강조했습니다. 행동경제학이나 군중심리학을 통해 인간이 공포 상황에서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지, 그리고 탐욕에 빠졌을 때 확증 편향이 얼마나 강해지는지 이해하고 있다면, 시장이 과도하게 한쪽으로 쏠릴 때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들이 공포에 질려 투매할 때, 그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편향임을 인지하고 역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은 단순한 배짱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에서 나오는 지성적인 용기입니다. 모건 하우절이 "주식투자자는 인문학 책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라고 고백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워드 막스의 말처럼 투자는 분명 과학보다 예술에 가깝고, 평균 이상의 성과를 위해서는 남다른 재능과 직관이 필요합니다. 재무제표를 분석하는 기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장의 분위기를 읽고 대중의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재능이 없다"라며 좌절하고 투자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술가들이 붓과 물감을 다루는 법을 배우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듯, 우리에게는 '인문학'이라는 훌륭한 도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통해 시장의 사계절과 사이클을 배우고, 소설을 통해 인간의 탐욕과 절망을 대리 체험하며, 철학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운다면, 우리 안의 잠재된 투자 본능을 깨울 수 있습니다. 투자의 대가들이 인문학에 심취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찰리 멍거(Charlie Munger) 역시 심리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드는 '격자형 정신 모델(Latticework of mental models)'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차트 너머에 있는 인간의 욕망과 공포,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읽으려 노력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숫자와 차트의 늪에 빠져 투자의 길을 잃었다고 느낀다면, 잠시 HTS(홈트레이딩시스템)를 끄고 역사책이나 철학책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요? 남들이 모두 미쳐가는 그 결정적인 날, 당신을 구원해 줄 지혜는 바로 그 책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투자는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찰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