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는 가장 강력한 마취제입니다. 그런데 마취가 풀리면...
경제의 흐름을 단편적인 뉴스가 아닌 거대한 역사의 줄기 속에서 이해하고 싶어 에드워드 챈슬러의 역작, 《금리의 역습(The Price of Time)》을 집어 들었습니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가격 변수인 ‘금리’가 어떻게 시대를 지배해 왔는지 탐구하는 이 책은, 단순한 경제 이론서를 넘어섭니다. 저자는 “이자는 시간의 가격이다(Interest is the price of time)”라는 핵심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저금리 정책이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에 어떤 왜곡을 가져왔는지 지난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치밀하게 파헤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인위적인 금리 조작이 어떻게 문명의 흥망성쇠와 연결되는지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경제가 어려우면 금리를 내려 돈을 풀고, 과열되면 금리를 올려 조여야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중앙은행의 정책을 ‘통화 마취(Monetary Anesthetization)’라고 명명하며 강하게 비판합니다. 마치 환자에게 진통제를 투여하면 당장의 고통은 사라지지만 병의 근본 원인은 치료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 책은 중앙은행이 시장의 자연스러운 조정 과정을 인위적으로 막음으로써, 경제 주체들이 위험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합니다. 금리를 억지로 낮추는 행위는 단순히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성장을 담보로 현재의 안정을 사는 위험한 도박임을 깨닫게 됩니다.
초저금리 정책의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은 생산성 저하입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인, 즉 돈을 벌어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기업을 ‘좀비 기업’으로 정의합니다. 저자는 저금리가 이러한 부실기업의 연명을 도와 건강한 기업으로 자원이 이동하는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았다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된 현상은 저금리로 인해 자본이 비효율적인 곳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책의 핵심 논지입니다. 중앙은행이 제공한 값싼 자금은 혁신을 촉진하기보다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들을 살려두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진통제 경제’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미국입니다. 저자는 연준(Fed)의 장기간 제로 금리 정책이 주식, 부동산, 채권 등 모든 자산 가격을 실물 경제와 괴리된 수준으로 끌어올린 ‘에브리싱 버블(Everything Bubble)’을 만들었다고 경고합니다. 이는 마치 18세기 존 로(John Law)가 일으켰던 미시시피 거품 사건을 연상케 하는데, 당시에도 화폐 발행을 통한 인위적 부양의 끝은 화폐 가치 폭락과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치사량에 가까운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그 결과 자산 격차에 따른 불평등 심화라는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음을 이 책은 날카롭게 꼬집습니다.
일본의 사례는 저금리가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보여주는 강력한 반면교사입니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경제 체급이 작음에도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진통제를 삼켰고 그 결과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단순히 버블 붕괴 때문만이 아니라, 이후 금리를 0%대로 너무 낮게 유지하여 필요한 구조조정을 지연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실제로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장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했음에도 연평균 성장률이 1%를 밑돌았습니다. 다른 나라였다면 진통제의 부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겠지만 일본은 어느 정도 체급이 있어서 다행히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금리를 낮춘다고 해서 반드시 투자가 살아나고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이 초래한 또 다른 비극은 중국에서 발견됩니다. 챈슬러는 중국 경제를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신용 거품”이라고 묘사합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이후 GDP 대비 부채 비율을 급격히 늘리는 강력한 경기 부양책으로 고성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헝다(Evergrande)나 비구이위안 사태 등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연쇄적인 디폴트 위기는 저자의 경고가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무리한 부채로 쌓아 올린 성장은 결국 한계에 부딪혔고, 현재 중국은 감추어 두었던 부작용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과정에 있습니다.
《금리의 역습》은 방대한 사료와 통계를 바탕으로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의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중앙은행의 ‘필요악’적인 개입은 단기적인 안도를 주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더 큰 청구서를 우리에게 내밀었고 그 결과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내용이 방대하고 복잡하여 한 번에 소화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곁에 두고 여러 번 나누어 읽으며 곱씹어 볼 때, 비로소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지난 정책들의 필연적 결과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저금리의 환상에서 깨어나 시간의 가치, 즉 금리의 본질을 직시하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