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 인생의 안전마진이다
부자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매일 마시는 커피값까지 아껴가며 생활비를 극한으로 줄여본 경험, 아마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월급은 통장을 스치듯 지나가고 남은 돈을 모두 저축 계좌에 넣으며 뿌듯함을 느끼려 애쓰지만,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회의감이 밀려옵니다. 남들은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현재를 즐기는 것 같은데, 나만 궁상맞게 사는 건 아닌지 억울한 마음마저 듭니다. 그렇다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수입을 전부 써버리기에는 미래가 너무나 불안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를 저축하고 얼마를 써야 하는 걸까요? 막연한 감정과 불안감 대신, 객관적인 데이터와 투자의 거장들이 말하는 원칙을 통해 '최적의 저축량'을 결정하는 기준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가치 투자의 창시자이자 워런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안전마진(Safety Margin)을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필요를 없애주는 기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투자의 세계에서 안전마진이 분석의 오류를 흡수하듯, 인생의 안전마진인 '저축'은 삶의 불행을 흡수합니다. 미국 연준(Fed)의 경제적 웰빙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위 경제 대국인 미국 성인의 약 30~40%가 비상금 400달러(약 50만 원)를 현금으로 마련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한국은행의 금융이해력 조사에서도 많은 성인이 갑작스러운 지출에 취약함을 보였습니다. 모건 하우절이 <돈의 심리학>에서 말했듯, 저축이 없으면 불행이 던지는 대로 다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저축의 1차 목표는 수익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충격으로부터 내 삶을 방어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전마진은 얼마나 필요할까요? 이는 통계가 말해주는 '삶의 리스크'에 따라 달라집니다. 통계청 조사 결과, 한국인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약 49.3세에 불과합니다. 반면 국민연금 수령은 63~65세에 시작되므로, 일반 사기업 직장인은 약 15년의 소득 공백기(데스밸리)를 견뎌야 하는 구조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또한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평생 의료비의 절반 이상이 65세 이후에 지출됩니다. 즉, 정년 보장이 없는 직장인이나 나이가 많을수록,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을수록 소득 중단과 지출 급증이라는 이중고를 겪을 확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공무원처럼 고용이 안정된 직군보다 일반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는 훨씬 더 보수적이고 두터운 현금 방어막을 구축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저축은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지만, 데이터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제레미 시겔 교수의 지난 200년간 자산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현금의 구매력은 우하향하여 거의 0에 수렴한 반면 주식과 부동산은 우상향 했습니다. 헤지펀드의 대부 레이 달리오가 "현금은 쓰레기(Cash is Trash)"라고 경고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금 금리가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마이너스 실질금리' 시대에 과도한 현금 보유는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가난해지는 길을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안전마진을 확보한 뒤 투자를 실행했듯, 우리도 삶을 지킬 최소한의 현금을 제외한 나머지 자금은 반드시 투자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고 자산을 증식시켜야 합니다.
재무 전문가들은 통상적으로 생활비의 3~6개월 치를 비상금으로 권장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포트폴리오를 제안합니다.
첫째, 공무원이나 20대 미혼 사회초년생은 소득 중단 리스크가 낮고 회복 탄력성이 높습니다. 생활비 1~2개월 치의 최소 현금만 보유하고, 자산의 90% 이상을 주식이나 부동산 등 성장 자산에 공격적으로 투자하십시오.
둘째, 3040 가장이나 대기업 직장인은 평균 퇴직 연령(49.3세)의 압박과 자녀 교육비 지출이 존재합니다. 전문가 권장치인 생활비 3~6개월 치를 현금으로 확보하고, 채권 비중을 20~30%로 두어 안정성을 꾀하며 투자는 50~70% 수준으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셋째, 사업가, 프리랜서, 은퇴 예정자는 소득 변동성이 매우 큽니다. 어떤 위기 상황에도 1년은 버틸 수 있도록 12개월 치 이상의 생활비를 현금으로 쥐고 있어야 하며, 공격적인 투자는 자산의 30% 이하로 제한해야 합니다.
우리가 저축을 하며 허무함을 느끼거나 돈을 쓰며 불안해하는 이유는, 나에게 필요한 '적정선'을 숫자로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명품을 산다고 해서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무작정 밥값을 아낀다고 해서 안심할 일도 아닙니다. 중요한 건 통계와 데이터가 가리키는 내 인생의 리스크를 냉정하게 직시하고, 그에 합당한 안전마진을 세팅했느냐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저축량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면, 나머지 돈은 과감하게 투자하거나 당신의 현재 행복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스스로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 비로소 돈에 휘둘리지 않고 진짜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