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아니라, 내 삶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으니까
돈을 잘 못 모으겠어요.
재테크? 그냥 예적금 정도?
자산관리?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닌 것 같아서요...
그땐 몰랐다.
그 말들 뒤에는
막연함, 두려움, 부끄러움이 섞여 있었다는 걸.
돈 이야기는 어쩐지
부끄럽고 낯간지럽고,
무엇보다 '나는 잘 못하고 있다'는 걸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상담 같은 건
잘 아는 사람이 받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예약한 상담실로 들어가는 길,
병원 처음 가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고 긴장된 마음이었다.
소득은 불규칙한데,
카드값은 늘 빠듯하고,
예적금은 거의 없고,
투자라고 해봤자 소액의 ETF 몇 개뿐
내가 가진 걸 정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벅찬 숙제처럼 느껴졌다.
내 통장을 들키는 기분, 내 민낯을 보여주는 기분.
당장 해결하고 싶은 불안은 어떤 거예요?
언제 돈 때문에 제일 불편했어요?
앞으로 5년 안에 꼭 하고 싶은 건 뭐예요?
질문은 의외였다.
숫자를 늘어놓기보다
내 삶을 먼저 묻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나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어떤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몰랐다는 걸.
상담이 끝날 무렵
한 장의 자산 흐름표가 내 손에 쥐어졌다.
현재 가진 자산,
매달 고정 지출,
유동성 예비비,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의 비율,
가장 필요한 개선 순위
그건 마치
지금까지 아무 방향 없이 걸어온 길 위에
처음으로 생긴 지도 같았다.
더는 내 돈이 나를 몰래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재무상 담은
돈을 불리는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감정과 흐름을 정리하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시간이었다.
통장을 보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 시간을 들여다보는 일이었고,
결국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과정이었다.
이제는 돈이 조금 모자라도
그게 어디에서 빠져나가는지,
어디서 다시 채울 수 있는지
나만의 지도가 생겼기에 덜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