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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쇼츠 Mar 03. 2016

우리 아이가 왼손잡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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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왼손잡이입니다. 나를 표현하는 여러 특징 중 중요한 하나입니다. 오른손잡이의 세상에서 드문 왼손잡이이기에 어렸을 땐 자부심마저 있었습니다.


쌍둥이 아들이 노는 모습을 볼 때면 '얘네들은 오른손잡이일까? 왼손잡이일까?' 혼자 생각해봅니다. 과자를 주면 왼손으로 받는 한 아이를 보며 '왼손잡이인가?' 생각하다가도 금새 다른 손을 쓰는 모습에 다시 나만의 고민에 빠집니다.

확률적으로 어떻게 될까요? 


왼손잡이 아빠와 오른손잡이 엄마 사이에서 왼손잡이 아이가 태어날 확률은 17%입니다. 우리 쌍둥이 아들 중 적어도 한 명이 왼손잡이일 확률은 31% 정도 되겠군요. 낮지는 않은 확률이지만, 높지도 않군요.


왼손잡이 엄마와 오른손잡이 아빠의 경우 왼손잡이 아이가 태어날 확률은 22%입니다. 아무래도 여자가 손으로 더 섬세한 활동을 많이 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인가 봅니다.


둘 다 오른손잡이이면 10%, 둘 다 왼손잡이이면 25%의 확률로 아이는 왼손을 주로 쓰게 됩니다. 왼손잡이 부모의 자녀이더라도 오른손잡이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유전이 가장 중요한 왼손 혹은 오른손잡이의 원인일까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게 과학계의 시각입니다. 일례로 일란성 쌍둥이도 주로 사용하는 손이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왼손잡이로 쭉 살아온 제가 종종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이가 왼손을 많이 쓰는데, 고쳐야 할까요?"


이 질문엔 몇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아이가 소수파가 되는 것에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왼손을 쓰는 것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자! 이야기를 아주 먼 옛날로 돌려봅시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몇 십 만년 전부터 왼손잡이의 비중은 약 10%입니다. 사람의 화석 뼈와 고대 도구와 공예품을 연구한 결과입니다.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전체 중 10%는 왼손을 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죠. 


만약 왼손잡이가 안 좋은 것이라면 나쁜 것이라면, 왼손잡이는 진화의 과정 속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꾸준히 남아있죠. 그것도 항상 비슷한 비율로 말이죠. 


그렇다면 왜 10% 일까요? 이 10%라는 수치는 사람의 경쟁과 협력 관계 사이에서 진화론적으로 결정 됐습니다.  


경쟁적인 측면을 먼저 살펴볼까요? 왼손잡이는 상대와 겨루는 싸움이나 스포츠에서 유리합니다. 권투에선 왼손잡이의 승률은 오른손잡이를 압도하고, 야구에서도 최상위 타자 중 50%가 왼손잡이입니다. 인류의 10%인 왼손잡이가 두각을 보이는 거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왼손잡이는 상대가 오른손잡이일 경우를 가정하고 연습하죠. 그리고 실제 대부분의 경기에서 오른손잡이를 만납니다. 오른손잡이 역시 상대방이 같은 오른손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간히 만나는 왼손잡이에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겁니다. 소수 집단이 실력을 기르기 좋은 환경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 한 가지 측면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만약 왼손잡이가 여러 경쟁 상황에서 유리하다면, 왼손잡이의 생존율이 높았을 것이고, 궁극적으로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비율이 50대50이 되어야 하니까요.

이제 협력 측면에서 볼까요? 사람들은 경쟁만 하지 않습니다. 협력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도구를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오른손잡이가 다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물건이 오른손잡이를 위해 만들어져 있습니다. 


왼손잡이인 저는 이런 환경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칼, 가위, 자판기, 지하철 출입구, 글씨 쓰는 방향, 전화기 등등 예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이런 환경은 왼손잡이에게 불리하고, 왼손잡이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았을 겁니다. 생존하기 불편하니까 말이죠.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아이가 왼손을 많이 쓰는데, 고쳐야 할까요?"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은 다수와 달리 소수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존에 유리하다는 겁니다. 오른손잡이는 좌뇌가 왼손잡이는 우뇌가 더 발달한다고 하죠. 그렇다면 무한경쟁시대에 누가 더 유리할까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만, 개성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특별한 소수가 큰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는 시대죠.


반면 과거와 달리 도구를 잘 사용하지 못해 생존에 불리한 상황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수렵시대에 활 같은 사냥도구를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이지만, 요즘 가위질을 잘 못한다고 해서 크게 불리할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왼손잡이 용품을 구하는 것은 아주 쉽죠.


지배적인 손을 바꾼다는 것은 스트레스입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까요? 당신이 하루 동안 '다른 손'을 쓴다고 합시다. 생각만 해도 불편하군요. 어른에게도 힘든 일을 아이에게 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 좋지 않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초등학교 때였죠.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있는데 선생님이 오셔서 자로 제 손을 치면서 "옳은 손을 써"라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생님의 행동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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