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관세 주장

달러 패권과 시뇨리지의 비밀

by 머니이룸

우리는 경제학 교과서의 시각을 통해 관세가 어떻게 사회 전체의 후생을 감소시키는 ‘자중손실’을 유발하는지 살펴보았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관세는 명백히 비효율적이며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포진한 미국이 이토록 명백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관세 전쟁의 깃발을 높이 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상품을 거래하는 ‘무역’의 영역이 아닌, 그 거래의 판을 움직이는 ‘화폐’의 영역에 있다. 미국의 진짜 속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차대조표에서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 항공기나 반도체가 아닌, 바로 ‘달러’ 그 자체라는 역설적인 진실을 먼저 마주해야 한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수출품, 달러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채 가시지 않은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즈. 전후 세계 경제 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44개 연합국 대표들은 역사적인 합의에 도달한다. 바로 미국 달러를 세계의 기축통화(Key Currency)로 삼는 것이었다. 각국 통화의 가치를 달러에 고정하고, 미국은 다시 달러의 가치를 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하는 **‘금환본위제(Gold Exchange Standard)’**가 탄생한 순간이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국에게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안겨주었다. 전 세계는 무역 대금을 결제하고 외환보유고를 쌓기 위해 달러를 필요로 했다. 미국은 이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전 세계에 달러를 공급해야만 했다. 달러를 공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즉, 미국이 전 세계로부터 수입하는 상품의 양이 수출하는 양보다 많아야, 그 차액만큼의 달러가 해외로 흘러 나가는 구조였다.


[미국의 연도별 무역수지 적자 추이 그래프]


미국의 연도별 무역수지 적자 추이 그래프.png

이 그래프가 보여주듯, 미국은 수십 년간 의도적으로 막대한 무역 적자를 유지해왔다. 이는 경제적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기축통화국으로서 세계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필요악’이자 의무였다. 다른 나라들이 피땀 흘려 만든 반도체, 자동차, TV를 미국은 종이(달러)를 찍어내 사들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화폐 발행을 통해 얻는 이익, 시뇨리지(Seigniorage) 효과의 극치였다.


페트로달러: 금의 시대가 가고 석유의 시대가 오다


하지만 이 황금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으로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은 미국 경제가 흔들리자, 각국은 달러의 가치를 의심하며 미국에 금 교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달러의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며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말을 고했다.


금이라는 든든한 닻을 잃어버린 달러는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난파선 신세가 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미국은 신의 한 수를 둔다. 바로 달러를 금 대신 ‘검은 황금’, 즉 석유와 연동시킨 것이다. 1973년, 미국은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비밀 협약을 통해 모든 석유 수출 대금 결제를 오직 달러로만 하도록 못 박았다. 다른 산유국들도 이를 따르면서 페트로달러(Petrodollar) 시스템이 탄생했다.


이제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산업의 혈액인 석유를 수입하기 위해 반드시 달러를 확보해야만 했다. 달러에 대한 수요는 금본위제 시절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항구적으로 재창조되었다. 이 페트로달러 시스템이야말로 지난 50년간 미국의 패권을 지탱해 온 가장 핵심적인 기둥이었다.


관세는 왜 필요한가: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과 응전


그렇다면 왜 지금 미국은 이토록 안정적인 시스템을 스스로 흔들면서까지 관세 장벽을 쌓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시스템의 근간을 위협하는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단순히 값싼 물건을 만드는 ‘세계의 공장’에 머무르지 않았다. ‘중국제조 2025’와 같은 야심 찬 계획을 통해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더 나아가, 중국은 달러 패권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위안화 국제화: 중국은 러시아, 이란 등 반미 국가들과의 무역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을 늘리고 있다. 상하이 국제에너지거래소(INE)에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을 상장시킨 것은 페트로달러 시스템에 대한 상징적인 도전이었다.


디지털 위안화(e-CNY):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에 가장 앞서 있는 중국은, 미래에 국경 간 결제에서 달러 중심의 SWIFT 망을 우회할 수 있는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꺼내 든 카드가 바로 관세다. 관세의 목표는 단순히 무역 적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진짜 목표는 다음과 같다.



중국의 기술 굴기 저지: 반도체, 전기차, 통신장비 등 핵심 첨단 산업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여 중국의 기술 발전을 늦추고, 자국 기술과의 격차를 벌리려는 의도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중국에 대한 높은 관세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탈중국’을 강요한다. 생산 기지를 미국 본토(리쇼어링)나 동맹국(프렌드쇼어링)으로 이전하도록 유도하여, 중국 중심의 공급망을 약화시키고 미국 중심의 경제 블록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달러 수요의 강제적 유지: 공급망이 미국과 동맹국 중심으로 재편되면, 그 경제 블록 안에서의 거래는 자연스럽게 달러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위안화의 부상을 억제하고 달러의 지위를 수호하는 효과적인 방어 전략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벌이는 관세 전쟁은 낡은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세적인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달러 패권이라는 ‘과도한 특권’을 지키고, 다가오는 기술 경쟁 시대에 대비하여 글로벌 경제의 판을 새로 짜려는 매우 공격적이고 선제적인 전략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 전쟁의 가장 치열한 전장, 즉 친환경 시대로의 전환이 어떻게 페트로달러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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