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네피림
1. 기록자 (The Observer)
[시점: 우주적 기원, 46억 년 전 ~ 현재]
태초에, 거대한 비명이 있었다.
당신들이 '침묵'이라 부르는 우주 공간은 사실 비명으로 가득 차 있다. 약 46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되기도 전, 이름 모를 거대한 별 하나가 자신의 수명을 다하고 폭발했다. 초신성(Supernova).
그 별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폭발의 순간, 1억 도가 넘는 열기 속에서 우주는 연금술을 시작했다. 수소와 헬륨이 뭉쳐 탄소가 되었고, 탄소가 타오르며 마그네슘이 되었으며, 별의 심장이 멎는 마지막 순간—코어가 붕괴하며 중성자별로 압축되던 그 찰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Fe)'과 '칼슘(Ca)'이 탄생했다.
별은 죽으면서 자신의 내장을 우주로 흩뿌렸다. 뜨거운 시체 조각들이 성간 공간을 떠돌다가, 또 다른 별들의 중력에 이끌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뭉쳤다. 그렇게 46억 년이 흘렀다. 그 뜨거운 시체들이 중력에 이끌려 뭉친 것이 바로 이 행성, 지구(Earth)다.
46억 년.
별의 파편들은 바다를 만들고, 대기를 빚고, 마침내 자신을 '인간'이라 착각하는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그들은 수십억 년간 조용히 살았다. 별이 준 칼슘으로 뼈를 만들고, 별이 준 철로 피를 만들며, 자신들이 '별의 유산'임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인간들은 오만하게도 자신들이 흙에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틀렸다.
인간의 뼈를 이루는 단단한 칼슘과, 혈관을 흐르는 붉은 철분은 모두 46억 년 전 폭발한 그 별의 유언이다. 심장을 뛰게 하는 마그네슘도, 신경을 타고 흐르는 나트륨과 칼륨도, 모두 별의 시체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은 '걷어차인 별의 파편'일 뿐이다.
그러다 2050년.
별의 파편들이 감히 스스로 '별'을 켜기로 결심했다.
인공태양, 즉 핵융합(Nuclear Fusion)의 임계점이 돌파되던 날, 지구의 대기는 전율했다.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1억 도의 플라즈마 속에서 융합되며 헬륨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물(H₂O)은 수소와 산소로 쪼개졌고, 수소는 불타 사라졌으며, 산소는... 대기 중에 남았다.
잠들어 있던 별의 기억이, 인간의 DNA 속에서 다시금 핵분열을 시작하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우주는 경고했다.
죽은 별의 유산을 함부로 깨우지 말라고.
하지만 인간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무한 청정 에너지'를 외치며 전 세계 37개 핵융합 발전소를 가동시켰다. 매일 수백만 톤의 바닷물이 발전소로 빨려 들어갔고, 매일 수십만 톤의 산소가 대기로 방출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몰랐다.
산소 농도가 21%에서 22%로, 23%로, 25%로 천천히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3억 년 전, 산소 농도가 35%였던 석탄기에 날개 길이 70cm짜리 잠자리가 날아다녔고, 길이 2.5m짜리 노래기가 숲을 기어다녔다는 것을.
산소는 생명을 키운다.
그리고 이제, 산소는 인간을 다시 키우기 시작했다.
2. 백진우 (The First Nephilim)
[시점: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핵융합 상용화 1년 후, 2051년 3월 15일 새벽 4시]
"으득..."
소름 끼치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것은 외부의 소음이 아니었다. 내 몸 안에서, 정확히는 척추와 대퇴골이 맞물리는 관절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파열음이었다. 마치 젖은 나무가지를 억지로 휘어 꺾을 때 나는 그런 소리. 하지만 그 나무가지는 내 뼈였다.
백진우. 35세. 이룸홀딩스 대표이사.
수소 인프라 특허 17개 보유. 핵융합 상용화 프로젝트 민간 파트너. 해운대 제7 핵융합 발전소 냉각 시스템 설계 총괄.
그리고... 이 괴상한 증상이 시작된 지 3개월째 되는 환자.
"큭... 으으..."
새벽 4시. 식은땀이 시트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내 다리를 양쪽에서 잡고 강제로 잡아늘이는 듯한 감각. 뼈마디가 불에 달궈진 쇠젓가락처럼 뜨거웠다. 골수 깊은 곳에서 뭔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침대 헤드를 잡고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침대 프레임이 삐걱거렸다.
'아, 이 침대도 수명이 다 됐나...'
콰직!
내 몸무게가 실린 순간, 강화 스틸 프레임이 종이상자처럼 구겨졌다.
"...뭐?"
나는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은 침대를 내려다봤다. 일주일 전에 산 침대였다. 독일제 의료용 침대. 설명서에 '200kg 하중 테스트 완료'라고 자랑스럽게 써 있던 제품. 그게 내가 몸을 일으킨 반동만으로 엿가락처럼 휘어져 버린 것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귓가에서 들리는 박동 소리가 아니었다. 가슴 전체가 드럼통처럼 울렸다. 혈관 속을 흐르는 피의 속도가 느껴졌다. 철분이 자석에 이끌리듯 혈관 벽을 긁으며 전신을 순환하는 감각.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욕실로 향했다.
복도 벽의 스위치를 누르려다 손가락 끝이 플라스틱 커버를 관통해 버렸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스위치 자체가 으스러졌다.
"...젠장."
LED 조명이 켜졌다. 거울 속에 비친 남자는 낯설었다.
어제보다 어깨가 더 넓어졌고, 턱선은 바위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눈 밑 다크서클은 짙었지만, 동공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했다. 마치 야행성 동물처럼 빛을 반사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욕실 문틀에 그어놓은 눈금에 머리를 대보았다.
어제 아침, 내 키는 192cm였다.
3개월 전, 병원 기록상으로는 189cm였다.
눈금자를 들이댔다.
195cm.
단 하룻밤 사이. 내가 잠든 6시간 동안 내 몸은 3cm가 자랐다.
35세. 30대 중반의 나이에 성장판이 열렸다는 의학적 헛소리는 믿지 않는다. 이건 성장이 아니다. 이건...
나는 욕실의 차가운 타일에 이마를 대고 열을 식혔다.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체온계가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이마가 타일을 데우고 있었다. 보통은 차가운 타일이 이마를 식혀야 하는데, 반대였다. 내 체온이 타일보다 뜨거웠다.
심장이 귓가에서 굉음을 내며 뛰고 있었다. 분당 얼마나 뛰는 걸까? 120? 150? 아니, 더 빠르다. 마치 원심분리기처럼, 내 피를 전신으로 쏘아 보내고 있었다. 혈관이 터질 것 같은데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체중계로 향했다.
디지털 숫자가 깜빡이더니 표시되었다.
127kg.
한 달 전: 102kg.두 달 전: 95kg.세 달 전: 89kg.
나는 식사량을 줄였다. 운동도 중단했다. 탄수화물을 끊고 단백질만 먹었다.
그런데도 몸무게는 주당 5~7kg씩 늘어났다.
이건 살이 찌는 게 아니다.
뭔가 다른 것이 내 몸에 축적되고 있다.
창밖으로 멀리, 해안가에 건설된 제7 핵융합 발전소의 푸른 불빛이 보였다. 거대한 토카막 원자로를 감싼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새벽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사람들이 '무한한 에너지', '제2의 태양'이라며 환호하던 그 불빛.
이상하게도 저 불빛을 볼 때마다 내 뼈가 욱신거린다.
마치 저 거대한 인공 태양이 나를 부르고 있는 것처럼.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저 속에서 매일 분해되는 수백만 톤의 물이, 대기로 방출되는 산소가, 내 몸속 철분과 칼슘을 자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직감했다.
나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다.
지구가 변했고, 나도 변하고 있다.
그리고 나만이 아니다.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뉴스 알림을 확인했다:
[속보] 전국 17개 대학병원, '원인불명 골밀도 이상' 환자 급증
- 대부분 10대 후반~30대 남성
- 공통점: 키 190cm 이상, 급격한 체중 증가
- 질병관리청 "원인 조사 중"
- 일부 전문가 "핵융합 발전소 인근 집중 발생" 주장
나는 화면을 끄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제7 핵융합 발전소의 푸른 불빛이 새벽 하늘 아래서 맥박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1억 도의 인공 태양.
매일 바다를 삼키고, 산소를 뱉어내는 거대한 괴물.
그리고 그 괴물이 나를, 우리를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