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네피림
1. 기록자 (The Observer)
[시점: 우주적 먼지, 성간 공간 ~ 지구 대기권]
우주는 청소부가 없다.
별이 죽고 남긴 시체, 즉 '먼지(Dust)'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떠돌 뿐이다. 철, 니켈, 마그네슘, 규소. 초신성 폭발의 찰나에 만들어진 무거운 원소들은 성간 공간을 수백만 년, 수억 년 동안 표류한다.
태양계가 은하 중심을 공전하는 속도는 시속 80만 킬로미터.
태양은 거대한 중력 자석처럼 우주 공간의 먼지 구름을 헤치며 나아간다. 그 앞에서 먼지들이 소용돌이치고, 일부는 태양풍에 밀려나가지만, 일부는 중력에 이끌려 태양계 안쪽으로 빨려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를 지구가 따른다.
지구는 매년 약 4만 톤의 우주 먼지를 빨아들인다.
하루로 환산하면 약 100톤. 시간당 4톤. 분당 70킬로그램. 당신이 이 문장을 읽는 1초 동안에도 지구 대기권으로 1킬로그램 이상의 우주 먼지가 떨어지고 있다.
대부분은 대기권 진입 시 마찰열에 타버려 '별똥별'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리며 사라진다. 초속 20킬로미터로 대기와 충돌하는 순간, 먼지 표면 온도는 3,000도를 넘는다. 그 열기 속에서 철은 붉게 타오르고, 마그네슘은 하얀 섬광을 내며 증발한다.
하지만 타지 않고 남은 미세한 금속 입자들이 있다.
직경 1마이크로미터 이하의 먼지. 너무 작아서 대기 마찰로 타지 않고, 너무 가벼워서 중력만으로는 빨리 떨어지지 않는 입자들.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 되어 성층권을 떠돌다가, 몇 달,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지표면으로, 바다로, 그리고... 인간의 폐 속으로 내려앉는다.
마그네슘. 규소. 철. 니켈. 티타늄. 희토류.
별의 시체가 인간의 혈관 속으로 스며든다.
2051년.
핵융합 발전소들이 뿜어내는 강력한 자기장(Magnetic Field)이 지구의 대기 성분을 미세하게 뒤틀어 놓았다.
토카막 원자로를 감싸는 초전도 자석은 50테슬라급. 지구 자기장의 100만 배에 달하는 인공 자기장이 24시간 내내 가동되면서, 대기 중 금속 먼지의 분포가 변했다. 자기력에 이끌린 철 입자들이 발전소 주변 20킬로미터 반경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산소였다.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산화 반응이 가속화되었고, 우주에서 내려온 금속 먼지들은 산소와 결합해 더 무겁고, 더 반응성이 높은 산화물이 되었다. 산화철(Fe₂O₃), 산화마그네슘(MgO), 이산화티타늄(TiO₂). 이 화합물들은 단순한 먼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체 이용 가능한(Bioavailable) 광물질이었다.
인간들은 몰랐다.
자신들이 숨 쉴 때마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단순한 산소가 아니라, '별의 시체 가루'가 섞인 고농축 영양제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폐포. 인간의 폐 속에는 약 3억 개의 미세한 주머니가 있다. 각 폐포의 벽 두께는 0.2마이크로미터. 적혈구 하나가 간신히 통과할 정도로 얇다. 산소는 이 얇은 벽을 통과해 혈액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2051년부터, 산소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1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산화철 입자. 0.5마이크로미터 크기의 티타늄 나노입자. 그것들이 폐포를 뚫고 혈관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면역 체계는 처음엔 저항했다. 백혈구들이 달려들어 이물질을 포식하려 했다. 하지만 금속 입자는 소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백혈구가 터지면서 입자들은 혈류를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뼈. 근육. 간. 신장.
그 먼지들은 칼슘이 축적되는 뼈 조직에 특히 잘 달라붙었다.
마치 콘크리트에 철근을 박아넣듯, 인간의 뼈를 내부에서부터 단단하게 재건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의 DNA는... 놀랍게도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영했다.
3억 년 전, 산소 농도 35%의 석탄기를 살아남은 생명체들의 기억이 유전자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고농도 산소 환경에서 거대화하지 못한 종들은 멸종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거인이었다.
인간의 유전자는 기억한다.
산소가 많으면 커져야 산다는 것을.
그리고 커지려면 뼈가 단단해야 한다는 것을.
우주 먼지는 그 재료를 제공했다.
진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2. 백진우 (The First Nephilim)
[시점: 서울대학교병원 특수검진센터 지하 3층, 2051년 3월 20일 오전 10시]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담당 교수가 모니터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김한석 교수. 59세. 서울대 의대 내분비내과 교수이자 대한골다공증학회 이사. 이룸홀딩스의 의료 자문위원으로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동안 수백 건의 특허 관련 의학 자문을 함께 진행했고, 내가 개발한 수소 저장 합금의 생체 적합성 테스트도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우스를 쥔 오른손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의사로서 35년 경력의 손이 떨린다는 건, 그만큼 충격적인 결과라는 뜻이다.
"뭐가 문제입니까? 암이라도 발견됐습니까?"
내가 덤덤하게 물었다. 사실 덤덤한 척이었다. 가슴속에서는 심장이 드럼을 두드리듯 요란하게 뛰고 있었다. 분당 140회. 정상인의 두 배. 하지만 나에게는 이미 일상이었다.
김 교수는 대답 대신 MRI 사진 한 장을 띄웠다.
내 전신 스캔 사진이었다.
뼈 부분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아니, 그냥 하얀 게 아니라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았다. 모니터 밝기를 최대로 올린 것처럼 강렬했다. 보통 뼈는 엑스레이나 MRI에서 회색빛이 도는 흰색으로 나와야 정상이다. 근육과 장기는 어둡고, 뼈는 조금 밝고, 그 정도 대비면 충분하다.
그런데 내 뼈는 마치... 형광등을 켜놓은 것처럼 발광하고 있었다.
아니, 형광등이 아니라 용접 토치에 가까웠다. 척추, 늑골, 대퇴골, 모든 뼈가 청백색으로 빛났다. 특히 대퇴골 머리 부분은 너무 밝아서 주변 조직이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암이면 차라리 설명이라도 되죠."
김 교수가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충혈된 눈이었다. 밤샘한 흔적이 역력했다.
"진우 자네, 최근에 뭘 먹었나? 아니면 무슨 특수 금속 가공 공장에서 일했나? 방사성 물질 취급했거나?"
"아뇨. 식단은 3개월 전부터 닭가슴살이랑 야채뿐이에요. 탄수화물 끊었고, 유제품도 안 먹습니다. 칼슘 보충제도 중단했어요."
"일터는?"
"늘 그렇듯 발전소 사무실이랑 현장이죠. 냉각수 파이프 점검하러 1차 격납 건물 안 들어가는 거 빼고는 특별한 거 없어요. 방사능 수치는 항상 정상이고, 저는 방호복 입고 선량계 차고 다닙니다."
김 교수는 한숨을 내쉬며 차트를 넘겼다. 서류 뭉치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혈액 검사, 소변 검사, 호르몬 검사, 유전자 검사... 내가 지난 5일간 받은 모든 검사 결과가 거기 있었다.
"골밀도 수치가 측정 불가야."
"...예?"
"DEXA 스캐너로 세 번 측정했어. 기계가 오류를 일으킬 정도라고. 일반 성인 남성의 골밀도 T-score가 -1.0 이상이면 정상이지? +1.0이면 매우 건강한 편이고. -2.5 이하면 골다공증으로 진단해."
그가 숫자를 가리켰다.
"자네 수치는 지금 +15.3이 나왔어."
"...+15요?"
"그래. 처음엔 기계 고장인 줄 알았지. 그래서 다른 병원 장비로도 돌렸어. 삼성서울병원, 아산병원, 세브란스. 다 똑같아. +14에서 +16 사이."
김 교수가 모니터를 전환했다. 비교 차트가 떴다.
"이게 뭔지 아나?"
그래프에 여러 막대가 표시되어 있었다.
일반 성인 남성: 1.0
운동선수 (역도): 1.8
침팬지: 2.1
코끼리 대퇴골: 3.2
소 대퇴골: 2.9
백진우: 15.3
"자네 뼈는 코끼리보다 5배 단단해. 이건 인간의 뼈가 아니야. 콘크리트보다 단단하고, 웬만한 강철이랑 비슷한 강도라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게다가 더 기가 막힌 건 혈액 검사 결과야."
그가 세 번째 모니터를 켰다. 현미경으로 확대한 내 혈액 샘플 영상이 떠 있었다.
적혈구들이 혈장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정상이라면 붉은 원반 모양의 세포들만 보여야 한다. 하지만 내 혈액은 달랐다.
적혈구들 사이로 반짝거리는 미세한 입자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마치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아니, 금가루보다 더 밝게 빛났다. 형광 현미경 조명에 반사되어 청백색으로 반짝이는 수백, 수천 개의 점들.
"저게 뭡니까?"
"우리도 처음엔 검사 장비 오염인 줄 알았어. 현미경 슬라이드가 더러웠나, 시약이 오염됐나. 그래서 세 번이나 다시 채혈했지. 멸균 주사기, 새 바늘, 새 시험관. 결과는 똑같아."
김 교수가 확대 배율을 올렸다. 입자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전자현미경으로 성분 분석했어. 자네 혈액 속에 다량의 '티타늄(Ti)', '바나듐(V)', 그리고 '희토류 원소'들이 섞여 있어. 네오디뮴, 디스프로슘, 테르븀... 자석 만들 때나 쓰는 것들이지."
티타늄? 희토류?
나는 특허 사업을 하면서 그 물질들을 다뤄봤다. 티타늄 합금은 항공기 동체에 쓰이고, 희토류는 초전도 자석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게 왜 내 피 속에?
"음식으로 섭취할 수 있는 양이 아니야. 티타늄은 인체 흡수율이 거의 0%에 가까워. 먹어도 그냥 배출돼. 그런데 자네 혈중 농도는... 리터당 340밀리그램이야."
"그게 많은 겁니까?"
"정상인은 0이야. 0. 검출 안 돼야 정상이지."
김 교수가 다른 자료를 꺼냈다.
"희토류는 더 가관이야. 네오디뮴이 리터당 180밀리그램. 이건 산업 폐수 속 농도야. 사람 몸에서 나올 수 있는 수치가 아니라고."
"그럼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그게 문제야. 소화기로는 불가능해. 피부 흡수도 아니야. 남은 건..."
김 교수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호흡기야. 자네가 숨 쉴 때마다 이 금속 먼지들이 폐로 들어가서, 폐포를 뚫고 혈관으로 직접 흡수되고 있어."
"공기 중에 그런 게 있습니까?"
"있어. 우주 먼지. 매년 4만 톤씩 지구로 떨어지지. 대부분은 타서 없어지지만, 일부는 대기 중에 떠돌아. 평소엔 농도가 낮아서 문제가 안 되는데..."
그가 또 다른 그래프를 띄웠다. 부산, 울산, 영광, 고리... 핵융합 발전소가 있는 도시들의 대기 성분 분석 결과였다.
"발전소 주변 20킬로미터 반경에서 대기 중 금속 미세먼지 농도가 급증했어. 특히 철과 티타늄. 발전소 자기장이 금속 먼지를 끌어모으는 것 같아."
나는 숨이 막혔다.
제7 발전소. 내가 설계한 냉각 시스템. 50테슬라급 초전도 자석.
"그리고 산소 농도도 문제야."
김 교수가 마지막 차트를 보여줬다.
"전국 평균 산소 농도: 23.1%발전소 반경 10km: 25.8%발전소 반경 5km: 27.3%"
"핵융합로가 물을 분해하면서 산소를 토해내고 있어. 그 고농도 산소가 금속 먼지를 산화시켜서 생체 흡수율을 높이는 거야."
김 교수가 의자를 당겨 내 앞에 앉았다. 목소리를 낮췄다.
"진우야, 솔직히 말해봐. 발전소에서 무슨 실험 했어? 아니면... 누출 사고라도 있었냐?"
"없었어요. 냉각수 유출도 없었고, 방사능 수치도 정상입니다. 제가 직접 매일 체크해요. 플라즈마 격납 상태도 완벽하고요."
"그럼 설명이 안 돼."
김 교수가 한숨을 쉬었다.
"자네 몸은 지금... 공기 중에서 광물질을 직접 흡수하고 있어. 마치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듯, 자네 폐가 공기 중의 미세 금속 먼지를 포획해서 혈액으로 보내고 있다고. 그리고 그 금속들이 뼈에 가서 달라붙어."
그가 MRI 사진을 다시 가리켰다.
"자네 대퇴골 단면을 봐. 이게 정상 뼈야."
비교 사진이 떴다. 일반인의 대퇴골 단면. 하얀 뼈 조직이 스펀지처럼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골수가 들어가는 공간이었다.
"이게 자네 뼈야."
내 대퇴골 단면.
구멍이 없었다.
완전히 꽉 차 있었다. 마치 쇠막대기처럼 하얗고 단단한 조직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뼈 내부에 금속 결정이 자라고 있어. 칼슘-티타늄-바나듐 복합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구조야. 자네 몸이 스스로 만들어낸 거야."
공기 중의 먼지.
순간, 며칠 전 밤에 봤던 제7 발전소의 푸른 불빛이 떠올랐다. 냉각탑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 그리고 뉴스에서 봤던 '원인 불명 골밀도 이상 환자 급증' 기사도.
"교수님."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 같은 환자가... 또 있습니까?"
김 교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진료실 문을 잠갔다. 그리고 서랍에서 두꺼운 파일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던졌다.
쿵.
무거운 소리가 났다. 파일 겉면에는 [대외비 - 질병관리청 역학조사 중간보고서]라는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 옆에 손으로 쓴 메모: "열람 후 즉시 폐기할 것".
"어제 밤 11시에 받은 거야. 자네만 그런 게 아니야."
김 교수가 파일을 펼쳤다. 표가 나왔다.
[신고 케이스 집계 - 2051년 3월 19일 기준]
부산 (제7발전소): 127명
울산 (제3발전소): 98명
고리 (제1발전소): 143명
영광 (제5발전소): 89명
기타 지역: 67명
총계: 524명
"지금 전국적으로 신고된 케이스만 500명이 넘어. 그리고 이건 병원 찾아온 사람만 센 거야. 증상 있는데 안 온 사람까지 치면 수천 명일 수도 있어."
김 교수가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환자 공통 특성]
연령: 18~39세 (평균 27.3세)
성별: 남성 96.2%, 여성 3.8%
체격: 신장 185cm 이상
거주지: 핵융합 발전소 반경 30km 이내
직업: 발전소 근무자 34%, 건설업 28%, 일반 직장인 38%
"전부 20~30대 건장한 남성들. 공통점은 하나같이 핵융합 발전소가 있는 해안 도시 거주자들이야. 그리고..."
그가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었다.
[평균 골밀도 T-score: +6.8]
"평균이 +6.8이야. 근데 자네는..."
"제가 가장 심각하군요."
"+15.3. 자네가 전국 1등이야. 2등이 부산 해운대 사는 23세 남성인데, +11.2야. 자네가 압도적이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그 사람들도 뼈가 저처럼...?"
"비슷해. 다들 MRI 찍으면 뼈가 발광해. 혈액 검사하면 금속 성분 검출되고. 그리고... 그 환자들 모두 공통적인 증상을 호소하고 있어."
김 교수가 증상 리스트를 보여줬다.
[주요 호소 증상 (중복 응답)]
야간 골격통 (98.1%)
급격한 신장 증가 (94.3%)
체중 증가 (91.2%)
식욕 항진 (87.6%)
체온 상승 (83.4%)
수면 장애 (79.8%)
근력 증가 (72.1%)
"성장통. 뼈가 자라는 고통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잔다고 해. 그리고 식욕이 폭발적으로 늘고, 체온이 37.8도에서 안 떨어져. 일부는 39도까지 올라가는데도 멀쩡해."
딱 내 증상이었다.
"의학계에서는 지금 난리가 났어. 대한의사협회에서 긴급 심포지엄 열고, 질병청에서 특별 TF팀 꾸렸어. 신종 바이러스냐, 방사능 피폭이냐, 중금속 중독이냐, 아니면 집단 히스테리냐..."
김 교수가 안경을 벗으며 눈을 비볐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달라."
"...뭡니까?"
그가 안경을 다시 쓰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진우야. 이건 병이 아니야."
"...그럼 뭡니까?"
그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진화(Evolution)야."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 심장 소리만 요란했다. 쿵. 쿵. 쿵.
"진화라뇨?"
"산소 농도가 35%였던 고생대 석탄기 알지? 그때 잠자리 날개가 70cm였어. 날개 길이가. 지금 잠자리는 10cm도 안 되는데. 왜 그럴까?"
"...산소가 많아서?"
"정확해. 산소가 많아지면 생물은 효율적인 산소 공급을 위해 덩치를 키워. 몸이 커지면 세포 하나하나까지 산소를 보내기 쉬우니까. 그리고 그 거대한 몸을 지탱하기 위해 뼈를 단단하게 만들지."
김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로 갔다. 마커를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석탄기 대기: 산소 35% → 거대 절지동물페름기 말: 산소 15% → 대멸종중생대: 산소 26~30% → 공룡 시대현대: 산소 21% → 인간 최적화2051년: 산소 25%+ → ???"
그가 물음표를 동그라미쳤다.
"지금 대기 중 산소 농도가 25%를 넘었어. 그리고 발전소 근처는 27%, 28%까지 올라가고 있어. 인간의 몸이 거기에 반응하기 시작한 거야."
"하지만 인간은 잠자리가 아니잖습니까?"
"맞아. 인간은 더 복잡해. 그냥 커지면 뼈가 무게를 못 버텨서 부러져. 체중이 두 배가 되면 뼈에 가해지는 하중은 네 배가 돼. 그래서 자네 몸은 살기 위해 해법을 찾은 거야."
그가 내 MRI 사진을 다시 가리켰다.
"공기 중의 금속을 빨아들여 뼈를 보강하는 거야. 칼슘만으론 부족해. 그래서 티타늄을 쓰는 거지. 티타늄은 강철보다 가볍고 두 배 강해. 항공기 동체에 쓰이는 이유야."
"그럼 제 뼈가... 티타늄 합금이 되어가고 있다는 겁니까?"
"정확하게는 칼슘-티타늄-바나듐 복합 결정체. 자네 몸이 자체 개발한 신소재야. 특허 낼 수 있으면 노벨상감이지."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저는... 계속 커지는 겁니까? 얼마나요?"
김 교수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산소 27% 환경에 최적화된다고 가정하면... 체중 대비 뼈 강도, 근육량, 심폐 기능을 고려할 때... 이론상으로는..."
그가 숫자를 보여줬다.
"신장: 2.42.7m체중: 220280kg"
"...거의 3미터잖아요."
"그래. 그리고 그건 산소 농도가 27%에서 멈춘다는 가정이야. 만약 30%까지 올라가면... 3미터 넘을 수도 있어."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럼 저는...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 되는 거군요."
"아니."
김 교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괴물이 아니야."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신인류(Homo Novus)'라고 불러야겠지. 핵융합 시대에 최적화된 인간. 고산소 환경에 적응한 새로운 종. 자네는... 진화의 최전선에 서 있어."
"하지만 사회가 우릴 받아들일까요? 3미터짜리 사람을..."
김 교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게 문제야."
그가 목소리를 더 낮췄다.
"벌써 정부에서 움직이고 있어. 이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려는 계획이 진행 중이야."
"격리요?"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논의됐대. '신체 변이자 통제 및 관리 방안'. 표면적으로는 '환자 보호 및 치료'지만, 실제로는..."
김 교수가 파일 맨 뒤에서 문서 한 장을 꺼냈다. 유출 금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코드명: 기간테스(GIGANTES) 프로젝트]목적: 신체 변이자(일명 '거인') 격리 및 생체 연구주관: 국방부 + 과학기술정보통신부협조: 질병관리청, 경찰청
"거인(Gigante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 이름이야. 정부가 자네들한테 붙인 코드명이지."
나는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1단계: 추적]
전국 병원 신고 케이스 DB 구축
거주지, 직장, 이동 경로 파악
24시간 위치 추적 시스템 가동
[2단계: 격리]
국가지정 격리시설 수용
법적 근거: 감염병예방법 제42조 (강제 격리)
기간: 무기한
[3단계: 연구]
생체 조직 샘플 채취
유전자 분석
군사 목적 응용 가능성 검토
"군사 목적?"
내가 중얼거렸다.
"3미터 거인이 전투에 투입되면 어떻게 될까? 200kg 장비를 들고 뛸 수 있고, 총알을 맞아도 티타늄 뼈 때문에 안 죽고..."
김 교수가 씁쓸하게 웃었다.
"자네들은 정부한테 병자가 아니야. '전략 자산'이지."
그때였다.
진료실 밖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군화 발소리. 여러 명. 빠르게 다가온다.
"통제 구역입니다! 비키십시오!"
"김한석 교수 연구실이 어디야!"
"3층 끝에서 두 번째!"
김 교수가 화들짝 놀라며 파일을 낚아챘다. 내 가방을 잡아당겨 그 안에 파일을 쑤셔 넣었다.
"진우야, 뒷문으로 나가. 당장."
"형, 이거..."
"이 데이터, 질병청 놈들이 가져가면 폐기할 거야. 아니, 더 나쁜 곳으로 갈 수도 있어. 국방부 연구소. 자네가 가져가. 사본 만들어서 언론에 뿌려. 사람들이 알아야 해."
"잡히면 어떻게 되는데요?"
김 교수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실험실 쥐 꼴 난다. 조직 샘플이라고 살을 도려내고, 골수 검사라고 뼈에 구멍 뚫고... 자네 특허 17개 가진 CEO가 표본 번호 GIG-001로 불리게 될 거야."
복도 끝에서 고함 소리.
"김한석 교수! 질병관리청입니다! 문 여세요!"
쾅! 쾅!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김 교수가 뒷문을 가리켰다. 비상구 쪽이었다.
"가! 절대 잡히지 마!"
나는 가방을 움켜쥐고 뒷문으로 달렸다.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삐익!
카드키 인식음. 앞문이 열렸다.
"거기 서!"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다섯 명. 정장 안쪽으로 어깨 홀스터가 보였다.
나는 주저 없이 창문으로 달려들었다.
"이 미친!"
유리창이 눈앞에 있었다. 3층 높이. 지상까지 약 12미터.
일반인이라면 뛰어내릴 수 없는 높이.
하지만 나는 일반인이 아니다.
가방을 가슴에 껴안고 몸을 던졌다.
콰드득!
창문 프레임이 부서졌다.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파편들이 내 얼굴을 스쳤지만 피부가 찢어지지 않았다.
공중.
낙하.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지면이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무릎을 굽혔다.
쾅!
아스팔트 바닥에 양발이 박혔다.
충격이 발목을 타고 무릎으로, 무릎에서 골반으로, 척추를 따라 머리까지 전달되었다. 뼈가 삐걱거렸다. 하지만 부러지지 않았다. 금이 가지도 않았다.
티타늄 골격.
대퇴골이 충격을 완벽하게 흡수했다.
나는 아스팔트 위에 선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내 발 밑으로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착지 충격으로 바닥이 깨진 것이다.
통증은 없었다.
오히려 짜릿했다.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분당 180회.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적셨다.
"저기다! 3층 창문!"
위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병원 주차장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땅을 울렸다. 340kg 체중이 아스팔트를 두드렸다. 하지만 속도는 빨랐다. 근력이 세 배 강해졌다. 보폭이 넓었다. 한 걸음에 3미터씩 나갔다.
시속 40킬로미터.
일반인이 전력 질주해야 낼 수 있는 속도를 나는 조깅하듯 달렸다.
폐가 공기를 빨아들였다.
달콤했다.
산소 농도 25%의 서울 공기가 내 폐포를 가득 채웠다. 폐포 3억 개가 동시에 산소를 흡수했다. 혈액이 산소로 포화됐다. 근육 세포들이 환호했다.
더 빨리. 더 강하게.
나는 병원 정문을 빠져나와 도로로 뛰어들었다. 차들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경적이 울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내 심장은 1억 도의 태양처럼 뜨겁게 뛰고 있었고,
내 뼈는 별의 시체로 만들어진 강철이었고,
내 폐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달콤한 진화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