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프로메테우스의 성냥

프로젝트 네피

by 머니이룸

1. 백진우 (The First Nephilim)

[시점: 이룸홀딩스 지하 4층, '노아(Noah)' 연구동, 2051년 3월 20일 오후 2시 17분]

"크윽... 허억..."

폐가 타들어가고 있었다.

병원에서 탈출해 이곳까지 오는 32분 동안, 내 몸은 마치 폭주하는 원자로 같았다. 서울대병원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직선거리 325킬로미터. 고속도로를 따라 전력 질주했다.

차들이 비켜섰다.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는 2미터 거구가 갓길을 질주하자, 운전자들은 괴물이라도 본 듯 핸들을 꺾었다.

체온은 이미 41.7도를 넘겼다.

티타늄으로 강화된 뼈와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마찰열을 뿜어냈다. 대퇴골 관절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용접 토치 수준이었다. 혈액이 끓는 것처럼 느껴졌다. 심장은 분당 205회. 더 이상 뛰면 심근이 찢어질 것 같았다.

이룸홀딩스 본사 지하 주차장 B4층 구석.

일반 직원들은 B2까지만 출입할 수 있다. B3는 서버룸. B4는...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계도에도 나오지 않는다. 건축 허가도 받지 않았다.

나 혼자 판 땅굴.

정확히는 내가 개발한 '초음파 굴착기'로 3년에 걸쳐 파낸 지하 공간. 이룸홀딩스 재무제표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1,200평 규모의 벙커.

화물용 승강기 옆 벽면.

겉보기엔 그냥 콘크리트 벽이다. 하지만 특정 위치를 손바닥으로 누르면—

삐-

초음파 센서가 내 손바닥 정맥 패턴을 읽었다.

징-

[생체 인증 완료. 백진우 대표님, 귀환을 환영합니다.]

육중한 강화 콘크리트 벽이 옆으로 슬라이드되며 열렸다. 두께 80센티미터. 내부에 텅스텐 메쉬가 박혀 있어서 방사능도, 전자기파도 차단한다.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아니라 후끈한 열기가 확 끼쳐왔다.

온도 28도. 습도 70%.

온실?

아니, 농장이었다.

"어서 와. 꼴이 말이 아니네."

익숙한 목소리.

연구실 중앙, 6개의 모니터가 반원형으로 배치된 메인 콘솔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의자를 180도 돌렸다.

서선호. 41세.

이룸홀딩스 감사이자, 회계법인 출신 공인회계사. 내 서울대 경영학과 동기. 그리고 이 지하 벙커의 유일한 관리자.

검은테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이 나를 훑었다. 내가 피투성이가 되어—정확히는 유리 파편에 베인 상처에서 피가 흘러—들어왔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감정 기복이 없다.

10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그가 놀라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회사 장부에 100억 원 횡령이 발견됐을 때도, 제7발전소 냉각수 파이프가 터졌을 때도, 그는 그저 "예상 범위 내"라고 말했다.

"선호야... 물..."

"물보다 급한 게 있잖아."

그가 턱짓으로 벽면을 가리켰다.

열화상 카메라 모니터에 비친 내 모습은 시뻘건 불덩어리였다. 인체 형상을 한 용광로. 특히 관절 부위—목, 어깨, 골반, 무릎—가 하얗게 빛났다. 섭씨 60도가 넘는다는 뜻이다.

[현재 체온: 42.3℃][심박수: 198 bpm][혈압: 187/134 mmHg][위험: 심근경색 위험 85%]

일반인이라면 이미 뇌가 익어서 죽었을 온도다. 단백질 변성은 42도부터 시작된다. 뇌세포가 죽는다. 하지만 나는... 살아 있다.

"온도계 말고, 네 뒤 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연구실 한쪽 벽면 전체를 가득 채운 유리 온실이 있었다.

아니, 온실이라기엔 너무 컸다.

폭 20미터, 높이 4미터. LED 조명이 태양광 스펙트럼을 재현하며 식물들을 비추고 있었다.

'스마트팜 구역 A-1'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그 안에는...

"...토마토?"

탐스럽게 익은 빨간 토마토. 주먹만 한 크기.

벼. 황금빛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감자. 땅 위로 삐죽 나온 줄기 아래, 흙 속에 주먹만 한 감자들이 보였다.

상추, 고추, 오이, 가지...

밖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2051년 3월.

전국의 농장들이 초토화됐다. 식물들이 키만 미친 듯이 자라고 열매를 맺지 않았다. 언론은 '신종 식물 바이러스'라고 했다. 농림부는 '기후 이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달랐다.

이산화탄소 부족.

"들어가. '인큐베이터' 준비해뒀어."

선호가 손가락으로 스마트팜 옆을 가리켰다.

거기 투명한 캡슐 같은 것이 서 있었다.

폭 2미터, 높이 2.5미터. 내 몸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 투명 아크릴로 만들어진 원통형 챔버. 바닥에서 파이프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액체 냉각 챔버 (Liquid Cooling Pod)'

나는 비틀거리며 챔버로 향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혈당이 바닥났다. 32분간 80km/h로 달리면서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다 태워버렸다.

챔버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왔다.

내부 온도 15도.

나는 안으로 들어가 지퍼를 내리고 옷을 벗어 던졌다.

340kg, 195cm의 거구가 챔버를 가득 채웠다.

가슴팍에 티타늄 복합 결정이 자라난 흔적이 보였다. 피부 아래로 하얗게 빛나는 뼈가 비쳤다. 골밀도가 너무 높아서 빛을 반사하는 것이다.

"연결해."

선호가 콘솔 키보드를 두드렸다.

쉬이익-

챔버 바닥에서 투명한 액체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불소계 냉각액 (Fluorinert FC-77).

전기 전도성이 없고, 비활성이라 피부에 닿아도 안전하다. 비등점 97도. 열을 흡수하는 능력이 물보다 20배 높다.

액체가 발목을 적셨다.

치이익-

내 피부에 닿은 순간, 냉각액이 순식간에 기화하며 하얀 거품을 일으켰다.

내 체온 42.3도.냉각액 온도 15도.온도 차 27.3도.

열전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액체가 무릎까지, 허리까지, 가슴까지 차올랐다. 목까지 잠겼다.

푸슈슈슈슈-

챔버 전체가 거품으로 가득 찼다. 냉각액이 기화하면서 내 몸에서 열을 빼앗고 있었다.

동시에.

천장에 달린 거대한 기계가 웅웅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히트펌프 (Heat Pump).

에어컨의 역순 사이클.

차가운 쪽에서 열을 빼앗아, 뜨거운 쪽으로 보내는 기계.

웅웅웅웅-

챔버에서 빼앗은 내 체열이 압축기를 거쳐 온도가 더 올라갔다. 42도 → 압축 → 55도. 그리고 그 뜨거운 열기가 파이프를 타고...

스마트팜으로 흘러 들어갔다.

[시스템: 열교환 순환 모드 가동][백진우 체온: 42.3℃ → 38.1℃ (냉각 중)][스마트팜 내부 온도: 24.2℃ → 27.8℃ (난방 중)][CO₂ 농도: 1,187ppm → 1,203ppm (증가 중)]

"후우..."

체온이 38도로 떨어지자 비로소 살 것 같았다.

뇌에 산소가 돌기 시작했다. 시야가 선명해졌다. 심박수가 떨어졌다. 198회 → 165회 → 142회.

나는 유리벽 너머의 스마트팜을 바라봤다.

LED 조명 아래서 토마토가 빛났다.

벼 이삭이 바람도 없는데 살랑거렸다. 공기 순환 팬이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기는...

내가 뱉은 숨이었다.

[원리: 역(Reverse) 온실효과 + 탄소 순환]

1단계 - 냉각: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42도 고열을 냉각수가 빼앗는다.

2단계 - 압축:

히트펌프가 열을 압축해서 온도를 55도까지 올린다.

3단계 - 이송:

압축된 열을 스마트팜 바닥 난방 파이프로 보낸다.

4단계 - 난방:

스마트팜 내부 온도를 식물이 좋아하는 28도로 유지한다.

5단계 - 호흡:

내가 숨 쉴 때 뱉는 이산화탄소(CO₂)를 스마트팜으로 송풍한다.

6단계 - 광합성:

식물이 CO₂ + 물 + 빛 → 포도당 + 산소.

7단계 - 순환:

식물이 만든 산소를 다시 내가 들이마신다.

완벽한 폐쇄 순환.

"밖은 지옥이야."

선호가 캔 커피를 홀짝이며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그의 책상 위에는 6개 모니터가 있었다. 각각 다른 정보를 띄우고 있었다.

[모니터 1: 전국 대기 성분 실시간 측정]

산소(O₂): 25.3%

질소(N₂): 73.1%

아르곤(Ar): 0.93%

이산화탄소(CO₂): 0.015% (150ppm)

"CO₂가 150ppm까지 떨어졌어."

선호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드렸다.

"공룡 시대가 2,000ppm이었고, 산업혁명 전이 280ppm이었고, 2020년이 415ppm이었어. 지금은 150ppm. 식물이 광합성하려면 최소 200ppm은 돼야 하는데."

"핵융합 때문이지."

"맞아. 핵융합로가 매일 수백만 톤씩 물을 분해해. H₂O → H₂ + O. 수소는 날아가고 산소만 대기로 방출되니까, 산소 농도는 올라가고 상대적으로 CO₂ 비율은 떨어지는 거지."

선호가 다음 모니터를 가리켰다.

[모니터 2: 전국 농작물 생산량 추이]

그래프가 추락하고 있었다.

2050년: 100% (기준)

2051년 1월: 87%

2월: 64%

3월: 41%

4월 예측: 22%

"쌀 생산량이 반 토막났어. 밀은 더 심해. 70% 감소."

"식물들이 굶어 죽는 거야?"

"정확해. 탄소가 없어서 광합성을 못 해. 6CO₂ + 6H₂O + 빛 → C₆H₁₂O₆ + 6O₂ 이 공식 기억나지? CO₂가 없으면 포도당(C₆H₁₂O₆)을 못 만들어. 포도당이 없으면 전분도, 셀룰로오스도, 열매도 못 만들어."

선호가 세 번째 모니터를 켰다.

[모니터 3: 경상남도 김해 농업기술센터 - 현장 카메라]

화면에 논이 보였다.

하지만 정상적인 논이 아니었다.

벼가... 너무 컸다.

줄기 높이가 3미터를 넘었다. 보통 벼는 1미터 정도인데, 세 배나 자란 것이다. 대나무처럼 가늘고 길게 뻗어 있었다. 바람에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삭이 없었다.

줄기만 무성하고, 알곡이 달리지 않았다.

"산소가 많아지니까 식물이 미친 듯이 커. 세포 분열이 빨라지거든. 하지만 탄소가 없어서 열매는 못 맺어. 키만 자라고 영양실조 걸린 거지."

선호가 커피 캔을 구겼다.

"정부에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 '웃자람 현상'. 농민들한테 질소 비료 줄이라고 지시했대. 멍청한 놈들. 질소 문제가 아니라 탄소 문제인데."

"그럼 밖의 나무들도..."

"봐."

네 번째 모니터.

[모니터 4: 부산 해운대 달맞이길 - CCTV]

내가 아는 달맞이길이 아니었다.

소나무들이... 하늘을 찔렀다.

높이 20미터, 25미터.

줄기는 엿가락처럼 가늘고 길었다. 나뭇가지가 듬성듬성 달려 있었다. 솔잎은 무성했지만, 솔방울이 보이지 않았다.

"저 나무들, 작년엔 10미터였어. 1년 만에 두 배로 컸지. 그런데 열매가 안 열려. 탄소가 없으니까. 잎사귀만 무성한 '불임의 숲'이 된 거야."

선호가 의자를 돌려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진우야, 지금 전 세계가 굶어 죽고 있어."

"..."

"식량 자급률이 20%대인 우리나라는 더 심각하지. 수입하려고 해도 다른 나라들도 똑같은 상황이야. 밀 수출국인 미국, 캐나다, 호주 전부 생산량 폭락. 국제 곡물 가격이 작년 대비 400% 폭등했어."

선호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쌀 한 가마니(20kg)가 작년엔 5만 원이었어. 지금은 22만 원. 4배야. 그리고 다음 달엔 40만 원 넘을 거야."

"정부는 뭐 해?"

"배급제 준비 중이래. 1인당 하루 쌀 300g. 밥 두 공기 분량."

선호가 스마트팜을 가리켰다.

"근데 여긴 달라."

그가 제어판을 조작했다.

[스마트팜 A-1 구역 현황]

내부 온도: 27.8℃ (최적)

내부 습도: 68% (최적)

CO₂ 농도: 1,203ppm (광합성 최적 농도)

조도: 40,000 lux (한낮 태양광 수준)

"CO₂ 농도 1,200ppm. 밖의 8배야. 네가 숨 쉴 때 뱉는 이산화탄소를 하나도 안 버리고 여기다 모아주고 있거든."

그는 히트펌프를 가리켰다.

"그리고 네 몸에서 나오는 열기로 난방도 하고. 너는 하루에 약 10,000kcal를 태우지? 그 열량이 전부 여기로 온다. 전기 히터 필요 없어. 네가 보일러야."

선호가 씩 웃었다.

"너는 쟤들(식물)한테 탄소와 열을 주는 '살아있는 발전소'고, 쟤들은 너한테 먹을 걸 주는 거지. 완벽한 공생이야."

그가 모니터를 전환했다.

[예상 수확량 - 90일 후]

쌀: 360kg

토마토: 520kg

감자: 890kg

기타 채소: 430kg

총계: 2,200kg

"밖의 인간들이 굶어 죽을 때, 우리는 여기서 삼겹살에 상추쌈 먹을 수 있다는 소리다."

나는 챔버 안에서 스마트팜을 바라봤다.

투명한 냉각액 속에 잠긴 내 몸.

유리벽 너머, 무성하게 자라는 초록 잎들.

LED 조명이 인공 태양처럼 빛났다.

나는... 이 지하 세계의 태양이었다.

열을 내고, 탄소를 뱉고, 식물을 키우는.


2. 기록자 (The Observer)

[시점: 이룸홀딩스 지하 벙커 데이터 센터]

서선호는 단순한 감사가 아니었다.

삼일회계법인에서 15년간 일하며 대기업 분식회계를 적발해온 전문가. 숫자로 거짓말을 간파하는 사람. 재무제표를 보면 그 회사의 미래가 보이는 사람.

그리고 백진우가 '하드웨어'를 설계할 때, 이 벙커의 모든 '소프트웨어'와 '생존 알고리즘'을 짠 설계자.

"진우야."

선호가 의자를 돌렸다.

"네가 가져온 병원 데이터. 암호화 뚫었어."

메인 스크린에 김한석 교수가 줬던 파일이 떴다.

[대외비 - 질병관리청 역학조사 중간보고서]

하지만 화면에 뜬 건 그 파일이 아니었다.

[최고기밀 - 국가안전보장회의 의결 사항][코드명: 기간테스(GIGANTES) 프로젝트]

"이건..."

"원본 파일 안에 숨겨진 거야.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이미지 파일처럼 보이는 문서 안에 다른 데이터를 숨기는 기법. 김한석 교수가 일부러 넣어놨겠지."

선호가 파일을 열었다.

[기간테스 프로젝트 - 3단계 실행 계획]

[Phase 1: 정보 수집]

전국 병원 신고 케이스 DB 구축 완료 (524명)

미신고 추정 인원: 2,000~3,000명

위치 추적 시스템 가동 중

[Phase 2: 사회 통제]

언론 보도 금지령 발동

SNS 모니터링 강화

'거인' 관련 게시물 자동 삭제

목격담 유포자 추적

[Phase 3: 물리적 격리]

국가지정 격리시설 3곳 선정

경북 울진 폐광 (수용 인원: 500명)

강원 철원 구 군사 시설 (수용 인원: 800명)

전남 신안 무인도 (수용 인원: 1,200명)

법적 근거: 감염병예방법 제42조 (강제 격리)

격리 기간: 무기한

"정부는 이미 알고 있었어."

선호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산소 농도와 거대화의 상관관계. 그리고..."

그가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부록: 2055년 식량 수급 예측]

시뮬레이션 그래프가 떴다.

시나리오 1 (현재 추세 유지):

- 2052년: 쌀 생산량 -60%

- 2053년: 쌀 생산량 -80%

- 2054년: 쌀 생산량 -95%

- 2055년: 식량 자급률 5% 미만

예상 인구 손실: 2,800만 명 (전 인구의 54%)

"5,000만 명 중 2,800만 명이 굶어 죽는다는 계산이야."

나는 숨이 막혔다.

"그래서 놈들이 '거인'을 모으는 거야."

선호가 지휘봉으로 화면의 한 구절을 가리켰다.

[거인족 활용 방안]1. 국방 활용 (Military Application)

신체 능력: 일반인 대비 근력 3배, 지구력 2배

방탄 능력: 티타늄 골격으로 소총탄 관통 불가

활용: 특수 부대 편성, 폭동 진압, 국경 경비

2. 노동 활용 (Labor Application)

중량물 운반: 500kg 이상 단독 운반 가능

건설 작업: 크레인 대체

활용: 방벽 건설, 지하 시설 굴착, 자원 채굴

3. 생체 에너지 활용 (Bio-Reactor Application)

대사량: 일반인 대비 5~7배

체열: 지속적으로 40도 이상 유지

활용: ???

"3번이 뭐야?"

내가 물었다.

선호가 암호화된 주석을 풀었다.

[3번 활용 방안 - 기밀 등급 最高]

문서가 떴다.

[바이오 리액터 (Bio-Reactor) 프로젝트]

개념:

거인의 높은 대사량과 체열을 이용

생체를 '살아있는 발전기' 또는 '유기물 처리장'으로 활용

구체적 방안:

A안: 열병합 발전

거인을 챔버에 수용

고강도 노동 강제 (러닝머신, 크랭크)

발생 체열로 터빈 가동

예상 출력: 1인당 500W (24시간 기준)

1,000명 수용 시: 500kW (소규모 마을 전력 공급)

B안: 유기물 분해

거인에게 음식물 쓰레기 강제 섭취

고효율 소화 시스템으로 빠른 분해

배설물을 바이오가스 원료로 활용

예상 효율: 일반인 대비 7배

C안: CO₂ 생산

거인을 밀폐 공간에 수용

호흡으로 발생하는 CO₂ 포집

농업용 온실에 공급

1인당 일일 CO₂ 배출량: 약 2.5kg

1,000명 수용 시: 일일 2.5톤 (소규모 온실 3개 운영 가능)

"미친... 새끼들..."

내 주먹이 꽉 쥐어졌다.

챔버 안의 냉각수가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체온 급상승. 38.1도 → 39.7도 → 41.2도.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 냉각 용량 초과][체온 상승률: 분당 1.8도]

"진정해. 열 오르면 토마토 익어버린다."

선호가 쿨하게 농담을 던지며 냉각 출력을 올렸다.

우우우우웅-

히트펌프가 과부하 모드로 돌아갔다.

"정부는 우리를 인간이 아니라, 에너지를 소비하고 열을 내는 '건전지'나 '소각로' 쯤으로 보고 있어. 살아있는 보일러. 걷어다니는 쓰레기 처리장."

선호가 화면을 끄고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어."

"...더?"

"어. 내가 며칠 전부터 우리 옥상에 있는 천체 망원경으로 달을 보고 있었거든."

선호가 여섯 번째 모니터를 켰다.

[천체 관측 데이터 - 이룸홀딩스 천문대]

"달?"

"어. 요즘 달이 좀... 뚱뚱해진 것 같지 않아?"

화면에 달의 고해상도 사진이 떴다.

크레이터가 선명한 달의 표면. 티코, 코페르니쿠스, 바다... 익숙한 지형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달의 가장자리.

정확히는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뒷면(Far Side) 경계선 부근이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우주 먼지야."

선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지구는 대기가 있어서 먼지가 타버리잖아? 근데 달은 대기가 없어. 먼지가 그대로 표면에 쌓여."

그가 NASA 데이터를 불러왔다.

[우주 먼지 유입량 비교]

지구: 연간 40,000톤 (대부분 대기권에서 소각)

달: 연간 3,000톤 (100% 표면 축적)

"지구가 13배 더 많이 먹지만, 대부분 타서 없어져. 달은 적게 먹지만 전부 쌓여."

"그게 문제야?"

"문제가 크지."

선호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3D 모델 달이 화면에 떴다.

회색 구체. 그런데 한쪽 면—지구를 향하지 않은 뒷면—에 갈색 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점들이 점점 커졌다. 층층이 쌓였다.

[50년 후 예측]

달 뒷면 우주먼지 축적량: 150,000톤

평균 두께: 2~5mm

질량 증가: 0.0000002%

"0.0000002%면 미미한 거 아냐?"

"숫자만 보면 그래. 근데 문제는 '위치'야."

선호가 달을 확대했다.

먼지가 뒷면에만 쌓여 있었다.

앞면—지구를 향한 면—은 깨끗했다.

"달은 조석 고정(Tidal Locking)이 돼 있어. 항상 한쪽 면만 지구를 향하지. 그 말은 뒷면이 공전 방향 앞쪽이라는 뜻이야."

그가 애니메이션을 재생했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돈다.

우주 먼지가 날아온다.

달의 뒷면이 먼지 구름을 정면으로 맞는다.

"야구공 던질 때 앞쪽에 먼지가 더 많이 묻잖아. 달도 마찬가지야. 뒷면에 먼지가 집중적으로 박혀."

"그럼?"

"무게 중심이 바뀌어."

선호가 계산 결과를 보여줬다.

현재 달 질량 중심: 지구 방향으로 2km 치우침

50년 후: 지구 반대 방향으로 0.3km 이동

결과:

- 달 공전 궤도 이심률 증가

- 지구-달 평균 거리 감소

"먼지가 뒷면에 쌓이면서 무게 중심이 뒤로 넘어가. 그럼 달이 지구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가까워져."

선호가 그래프를 띄웠다.

[지구-달 거리 변화 추이]

2020년: 384,400 km

2030년: 384,402 km (+2km, 정상 추세)

2040년: 384,398 km (-4km, 역전 시작)

2050년: 384,385 km (-15km)

2051년 현재: 384,367 km (-33km)

"지금까지 달은 매년 3.8cm씩 멀어졌어. 조석 마찰 때문에. 근데 2040년부터 반대로 가까워지기 시작했어."

"우주 먼지 때문에?"

"맞아. 달이 무거워져서 지구 중력에 더 끌리는 거야. 그리고 가까워지면..."

선호가 조석력 공식을 띄웠다.

F_tidal ∝ M_moon / r³

M_moon ↑ (질량 증가)

r ↓ (거리 감소)

∴ F_tidal ↑↑ (조석력 급증)

"조수간만의 차가 미친 듯이 커져."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핵융합 발전소에서 냉각수를 끌어올릴 때 쓰던 공식. 인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게 아니라, 세제곱에 반비례한다.

거리가 절반이 되면, 인력은 8배가 된다.

"달이 33km 가까워졌으면..."

"조석력이 약 0.03% 증가했어. 별거 아닌 것 같지? 근데 문제는 '바다 질량'이야."

선호가 핵융합 발전소 데이터를 불러왔다.

[전 세계 핵융합 발전소 물 소비량]

2050년 이전 해양 총량: 1.386 × 10²¹ kg

2051년 3월 현재: 1.359 × 10²¹ kg

감소량: 2.7 × 10¹⁹ kg (약 2%)

"2%면..."

"바다 평균 깊이가 3,700m에서 3,626m로 줄었어. 74미터 낮아진 거야. 하지만 문제는 양이 아니라..."

선호가 공식을 수정했다.

F_tidal ∝ M_moon / (M_ocean × r³)

M_moon: 1.0002배 증가

M_ocean: 0.98배 감소

r: 0.9999배 감소

F_tidal = 1.0002 / (0.98 × 0.9999³)

≈ 1.021배

→ 조석력 2.1% 증가

"실효 조석력이 2% 넘게 올랐어."

선호가 해안 지도를 띄웠다.

부산, 인천, 여수, 목포... 한국 주요 항구들.

도쿄, 오사카, 상하이, 뉴욕, 런던...

모든 해안 도시에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

"핵융합으로 바닷물을 다 퍼 써서 해수면이 낮아졌다고 좋아했지? 천만에."

선호가 시뮬레이션 영상을 재생했다.

평소 만조 때.

파도가 밀려온다.

방파제까지.

정상.

2주 후, 슈퍼문 만조 때.

파도가 밀려온다.

방파제를 넘는다.

도로를 덮는다.

건물 1층을 침수시킨다.

2층까지 차오른다.

3층...

"달이 끌어당기는 힘이 세지면, 남은 바닷물이 거대한 벽이 되어서 육지를 덮칠 거야."

"대해일 (Mega Tsunami)."

"정확해. 그리고 그게 언제냐면..."

선호가 달력을 가리켰다.

2051년 4월 3일 (토)슈퍼문 (Supermoon)지구-달 최근접: 356,500km

"2주 후."

나는 주먹으로 챔버 벽을 쳤다.

쾅!

강화 아크릴에 금이 갔다.

"정부는 이걸 모르나?"

"알겠지."

선호가 문서 하나를 더 열었다.

[국가 재난 대응 계획 - 코드명: 포세이돈]

Phase 1: 정보 통제

언론 보도 금지

해안가 CCTV 비공개 전환

기상청 조석 예보 축소 발표

Phase 2: 선별적 대피

고위 공직자 및 가족 내륙 이동

주요 기업인 사전 통보

일반 국민: 비통보

Phase 3: 사후 수습

피해 규모 축소 발표

자연 재해로 발표

핵융합과의 연관성 부인

"정부는 알고 있어. 하지만 숨길 거야."

선호가 화면을 껐다.

"식량 위기에 해일 공포까지 겹치면 폭동이 일어날 테니까. 놈들은 그 전에 너 같은 '거인'들을 확보해서..."

그가 시선을 벙커 천장으로 올렸다.

"아마 해안 방벽 쌓는 노가다라도 시킬 생각일 거야. 3미터 거인이 500kg 시멘트 자루 나르면 딱이잖아."

나는 챔버 밖으로 걸어 나왔다.

촤아아아-

냉각액이 몸에서 흘러내렸다.

몸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체온 38도, 실내 온도 28도. 온도 차 10도. 수증기가 발생했다.

열이 식자 머리가 차갑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선호야."

"어."

"여기 스마트팜에 있는 식량, 얼마나 버틸 수 있어?"

선호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너 일일 섭취 칼로리: 15,000kcal나 일일 섭취 칼로리: 2,200kcal합계: 17,200kcal/day

스마트팜 생산량: 일일 약 18,000kcal

결론: 무한정. 자급자족 가능."

"단, 조건이 있어."

선호가 나를 가리켰다.

"네가 매일 여기서 열 내주고 CO₂ 뿜어줘야 해. 네가 없으면 난방비 전기료로 한 달에 500만 원 나가. 그럼 6개월 버티고 파산."

"그럼 충분해."

나는 연구실 한구석에 놓인 거대한 금속 상자를 바라봤다.

폭 3미터, 높이 2.5미터.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표면에 경고 표지.

[시험 장비 - 무단 개봉 금지]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시험 장비가 아니었다.

내가 이 벙커를 만들 때, 혹시나 해서 설계해둔 것.

'프로토타입 파워 슈트 (Prototype Power Suit)'

티타늄 합금 외골격. 유압 구동 시스템. 출력 증폭 3배.

거인을 위한 갑옷.

"준비해."

내가 말했다.

"2주 뒤 슈퍼문이 뜨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인다."

"어디로?"

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 두꺼운 콘크리트 위.

35%가 아니라 27%지만, 그래도 충분히 달콤한 산소가 지배하는 세상.

해운대 해안가.

푸른 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건물.

"제7 발전소."

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들의 심장을 끄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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