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남세균의 역습

프로젝트 네피

by 머니이룸

1. 기록자 (The Observer)

[시점: 2051년 4월 1일 오전 7시 23분. 부산 해운대 앞바다]

바다는 더 이상 푸르지 않다.

자주색(Purple)이다.

마치 누군가 바다에 거대한 포도 주스 통을 쏟아부은 것처럼, 혹은 거대한 멍이 든 것처럼. 끈적하고 걸쭉한 자주색 슬라임이 파도 대신 출렁거리고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

한때 여름이면 100만 명이 찾던 백사장. 하얀 모래와 푸른 파도. 그것은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지금 그곳은 죽음의 해변이다.

모래는 자주색으로 물들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끈적한 액체가 해안을 핥았다. 그리고 썰물이 빠지면, 모래 위에 죽은 물고기들이 수북이 쌓였다.

방어, 고등어, 전갱이, 오징어.

수만 마리. 수십만 마리.

모두 입을 벌린 채 죽어 있었다. 아가미가 자주색 점액으로 막혀 있었다. 질식사.

악취가 진동했다.

썩은 생선 냄새가 아니었다. 화학 약품 같은, 시큼하면서도 톡 쏘는 냄새. 암모니아와 황화수소가 섞인 듯한 악취가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해운대구청에서 급히 방역복 입은 인부들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10분도 못 버티고 구토를 하며 도망쳤다. 방독면을 써도 소용없었다. 독소가 피부를 통해 스며들었다.

원인은 열(Heat)과 빛(Light).

37개의 핵융합 발전소가 매일 쏟아내는 온배수(溫排水).

발전소는 플라즈마를 냉각시키기 위해 바닷물을 빨아들인다. 차가운 물이 들어가서, 뜨거운 물이 나온다.

냉각 전 온도: 15도냉각 후 온도: 35도온도 상승: +20도

하루 배출량: 500만 톤 (발전소 1곳 기준)전국 37개 발전소 총 배출량: 1억 8,500만 톤/일

연안 해수 온도는 서서히 올라갔다.

2050년 평균: 19도2051년 3월: 28도2051년 4월 현재: 32도

32도.

열대 바다 수준이다.

그리고 맑아진 대기를 통과한 강력한 자외선이 바다를 쪼았다. 구름이 없었다. 수증기가 핵융합로에서 분해돼 버렸으니까. 하늘은 언제나 청명했다. 자외선 지수: 위험 수준 15.

이 환경은 '그들'에게 천국이었다.

남세균(Cyanobacteria)과 자색황세균(Purple Sulfur Bacteria).

25억 년 전, 원시 지구의 바다를 지배했던 그 미생물들.

산소가 없던 시대.

아니, 정확히는 산소가 독(毒)이던 시대.

그때 남세균은 광합성을 발명했다. 햇빛 + 물 + CO₂ → 포도당 + 산소. 그들이 뿜어낸 산소가 대기를 채웠고, 산소를 못 견디는 생명체들은 대멸종했다.

대산화 사건(Great Oxidation Event).

하지만 2051년, 역설이 일어났다.

산소 농도가 너무 높아지자, 바다 속 산소 농도는 오히려 떨어졌다.

왜?

따뜻한 물은 산소를 덜 녹인다. 32도 바닷물의 산소 용해도는 15도 바닷물의 절반밖에 안 된다.

그리고 식물성 플랑크톤들이 죽었다. CO₂가 부족해서 광합성을 못 했다. 바다의 산소 공급원이 사라졌다.

결과: 바다가 무산소 상태(Anoxic Condition)로 변했다.

그러자 그들이 돌아왔다.

산소가 없어도, 아니 산소가 없어야 살 수 있는 고대 미생물들.

남세균은 폭발적으로 증식했다.

세포 분열 주기: 3시간.하루에 8배 증식.일주일이면 200만 배.

해운대 앞바다 1리터당 남세균 세포 수:

3월 1일: 10만 개

3월 15일: 100만 개

4월 1일: 1,000만 개

물이 끈적해졌다.

남세균이 뿜어내는 점액질 때문이다. 바다가 젤리처럼 변했다.

그리고 자색황세균.

이들은 햇빛을 이용하지만, 산소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황화수소(H₂S)를 먹고 황(S)을 배출한다. 세포 속 색소가 자주색이라 물을 보라빛으로 물들인다.

황화수소.

썩은 달걀 냄새.

독성 가스.

농도 100ppm 이상이면 인간은 즉사한다.

그리고 지금 해운대 해안가 대기 중 황화수소 농도: 250ppm.

죽은 물고기들이 해변으로 밀려왔지만, 갈매기조차 쪼아먹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안다. 저것은 먹이가 아니라 독이라는 것을.

남세균이 뿜어내는 신경독소 마이크로시스틴(Microcystin) 때문이다.

마이크로시스틴.

간과 신경계를 공격하는 맹독.

치사량: 체중 1kg당 50마이크로그램.

70kg 성인 기준: 3.5밀리그램이면 사망.

현재 해운대 해수 1리터당 마이크로시스틴 농도: 18밀리그램.

물 한 컵(200ml)만 마셔도 즉사한다.

그리고 파도가 칠 때마다, 이 독소는 미세한 물방울(에어로졸)이 되어 공기 중으로 퍼진다.

숨만 쉬어도 중독된다.

육지에서는 또 다른 비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부산 해운대구 센텀초등학교 급식실, 같은 날 오후 12시]

"아, 또 스테이크야?"

3학년 2반 박민준(9세)이 식판을 받으며 투덜거렸다.

식판에는 어른 손바닥만 한 두툼한 소고기 스테이크가 두 덩이 놓여 있었다.

미디엄 레어.

칼로 자르자 육즙이 흘렀다. 핏물이 섞인 붉은 즙. 철 냄새가 났다.

한 조각당 250그램. 두 덩이면 500그램.

성인 남성 하루 단백질 권장량의 10배.

하지만 밥은 없었다.

빵도 없었다.

감자도, 고구마도, 옥수수도 없었다.

탄수화물이 지구에서 사라졌다.

대신 식판 구석 작은 칸에 초록색 알약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정부 보급 필수 영양제: 비타민-G (Green)][성분: 농축 엽록소, 셀룰로오스 분해물, 합성 포도당][1일 1회 복용]

"야, 나 고기 질려. 토할 것 같아."

옆자리 친구 김서준이 스테이크를 째려봤다.

"나도. 어제도 스테이크, 오늘도 스테이크. 내일도 스테이크대. 엄마가 그랬어."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옛날에는 '쌀밥'이라는 게 있었대. 하얗고 보들보들하고 달콤하대. 그거 위에 계란 올려서 간장 부어 먹으면 진짜 맛있었대."

"거짓말. 쌀이 어디 있어. TV에서 봤는데, 쌀 한 가마니가 200만 원이래. 우리 아빠 월급이 300만 원인데."

"진짜래. 엄마가 옛날 사진 보여줬어. 밥그릇에 하얀 쌀밥이 수북이 담긴 거."

"부자들은 먹는대. 청와대 사람들. 국회의원들."

"부럽다..."

아이들은 포크로 스테이크를 찌르며 한숨 쉬었다.

고기는 질겼다. 거대화된 소들은 빨리 자랐지만, 근육이 억세고 지방이 없었다. 탄수화물을 못 먹어서 마블링이 형성되지 않았다.

씹고 또 씹어야 삼킬 수 있었다.

턱이 아팠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이 없었다.

짜고, 비리고, 피 냄새가 났다.

하지만 먹어야 했다.

다른 건 없으니까.

민준이는 억지로 고기를 삼키고, 물컵을 들었다.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고기를 밀어 넣듯 삼켰다.

그리고 마지막.

초록색 알약.

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우드득.

씹는 순간.

"으억!"

지독한 쓴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쓰레기통에서 건져낸 풀을 씹는 것 같았다. 아니, 흙을 씹는 것 같았다. 쓰고, 떫고, 텁텁하고, 목이 막혔다.

급히 물을 들이켰다. 하지만 쓴맛은 사라지지 않았다. 혀와 목구멍에 달라붙었다.

"으으... 이거 진짜 못 먹겠어."

"참아. 안 먹으면 영양실조 걸린대. 우리 반 수진이 알약 안 먹었다가 병원 갔어. 뇌가 이상해졌대."

"왜?"

"선생님이 그랬어. 탄수화물이 없으면 뇌가 굶는대. 뇌는 포도당만 먹거든. 고기만 먹으면 뇌가 에너지를 못 받아서... 멍청해진대."

아이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억지로 알약을 씹어 삼켰다.

쓰다.

지독하게 쓰다.

거대화된 식물의 억센 줄기와 잎에서 추출한 엽록소 덩어리.

셀룰로오스를 효소 분해해서 만든 인공 포도당.

맛은 끔찍하지만, 이것이 없으면 뇌가 죽는다.

탄수화물이 사라진 세상.

인류는 고기에 파묻혀 영양실조에 걸리고 있었다.

배는 부른데, 뇌는 늘 배고픈 '탄수화물 기근(Carbohydrate Famine)'의 시대.

급식실 창밖으로 해운대 바다가 보였다.

자주색.

끈적한 슬라임처럼 출렁이는 바다.

민준이는 알약의 쓴맛에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바다가... 왜 저래?"


2. 백진우 (The First Nephilim)

[시점: 이룸홀딩스 지하 4층, 기계 테스트 룸. 2051년 4월 1일 오후 3시. D-2 (슈퍼문 2일 전)]

위이이잉-

유압 실린더가 비명을 질렀다.

"출력 70%... 80%... 진우야, 밸런스 잡아!"

선호의 외침이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 몸을 감싼 티타늄 외골격이 삐걱거렸다. 관절마다 달린 서보모터가 열을 뿜었다. 등 뒤의 유압 펌프가 쿵쿵쿵 고동쳤다.

[Prototype Power Suit: MARK-1 "거인의 갑옷(Titan Armor)"]

기본 사양:

총중량: 850kg (수트 자체 중량)

착용자 포함 총중량: 1,190kg (백진우 340kg + 수트 850kg)

높이: 2.7m (착용 시)

폭: 1.3m (어깨 너비)

구동 방식:

주 동력: 유압 시스템 (작동유: 합성 에스테르, 압력 350 bar)

보조 동력: 인공근육 섬유 (형상기억합금 + 탄소나노튜브)

하이브리드 제어: 사용자 근력 × 3배 증폭

동력원:

초소형 수소 연료전지 (이룸홀딩스 특허 KR-2048-001234)

출력: 15kW

연속 가동 시간: 30분 (냉각 한계)

무장:

없음 (프로토타입 단계)

특이사항:

냉각 시스템 미완성

과열 시 강제 셧다운

전투용이 아닌 산업용으로 설계됨

내 눈앞에 놓인 것은 폐차장에서 가져온 2톤짜리 콘크리트 방호벽이었다.

폭 2미터, 높이 1.5미터, 두께 50센티미터.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 쓰이는 그것.

"들어 올린다."

쿠웅!

발바닥의 텅스텐 카바이드 스파이크가 콘크리트 바닥을 파고들었다.

6개의 스파이크. 각 10센티미터 깊이로 박혔다.

무게 중심을 잡았다.

무릎을 굽혔다.

허벅지의 서보모터가 휘익 팽창했다.

내 근육이 힘을 쓰자, 수트에 박힌 압력 센서가 그것을 감지했다. 0.001초 만에 유압 밸브가 열렸다.

350 bar 압력의 작동유가 실린더로 쏟아져 들어갔다.

푸슈슈슈-

유압 실린더 6개가 동시에 팽창했다.

내 근력: 500kg (일반인의 3배)수트 증폭: × 3배총 출력: 1,500kg

콰드득!

2톤짜리 콘크리트가 바닥에서 떨어졌다.

공중으로 떠올랐다.

깃털처럼 가볍진 않았다.

하지만 쌀 한 가마니(20kg) 두 개를 드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HUD(Head-Up Display) 헬멧 안쪽 화면에 정보가 떴다.

[중량 감지: 2,100kg]

[사용자 부담: 700kg]

[수트 보조: 1,400kg]

[관절 부하: 67%]

[출력: 정상]

"좋아!"

선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출력 안정적. 관절 부하 정상. 유압 누출 없음. 서보모터 RPM 정상."

나는 콘크리트를 든 채로 세 걸음 걸었다.

쿵. 쿵. 쿵.

바닥이 울렸다.

1.2톤 거인의 발걸음.

"회전 테스트."

나는 몸을 90도 돌렸다.

허리의 볼 조인트가 삐걱거렸지만 버텼다.

"안정적이야. 밸런스 유지 가능."

"좋아. 이제 내려놔."

나는 천천히 콘크리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쿵!

바닥이 울렸다.

성공.

하지만 그 순간.

삐빅- 삐빅- 삐빅-

경고음이 울렸다.

HUD에 빨간 글씨가 떴다.

[경고: 냉각수 온도 임계점 도달]

[냉각수 온도: 97°C]

[비등점 근접]

[시스템 과열 위험]

[180초 후 강제 종료]

"열이야!"

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수트 전체에서 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관절 틈새로, 배기구로, 냉각 라디에이터로.

쉬이이익-

마치 압력솥 뚜껑을 연 것처럼.

"냉각 시스템 용량 초과. 온도 상승 중."

선호의 목소리가 긴장했다.

"지금 당장 수트 벗어!"

나는 급히 헬멧을 벗었다.

촤아-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수트 내부 온도: 55도.

내 체온 40도 + 수트 구동열 = 55도.

사우나였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옷이 흠뻑 젖었다.

급히 수트 전면 해치를 열고 빠져나왔다.

밖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실제론 28도인데도.

선호가 수건과... 빨간 방울토마토 5개를 건넸다.

"먹어. 당 보충해. 혈당 떨어졌어."

나는 토마토를 입에 넣었다.

톡.

껍질이 터졌다.

새콤달콤한 과즙이 입안을 채웠다.

설탕물 같았다. 포도당 농도 8%.

뇌가 환호했다. 에너지가 즉시 흡수됐다.

이 작은 열매 하나.

무게 20그램.

칼로리 4kcal.

하지만 지금 밖에서는 다이아몬드보다 귀하다.

토마토 1kg 시장 가격: 150만 원.

방울토마토 5개(100g) 가격: 15만 원.

내가 지금 입에 넣은 것은 15만 원짜리 사치였다.

밖의 사람들은 이 맛을 잊었다.

단맛.

과일의 당도.

과당과 포도당이 혀를 자극하는 그 달콤함.

오직 피 냄새 나는 고기와 쓴 녹색 알약뿐이지.

"15분..."

내가 토마토를 씹으며 중얼거렸다.

"가동 시간 15분. 발전소 침투해서, 중앙 제어실까지 가서, 냉각 시스템을 셧다운시키는 데... 15분으로 가능할까?"

"불가능해."

선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홀로그램 지도를 띄웠다.

제7 핵융합 발전소 3D 모델.

"정문에서 중앙 제어실까지 직선거리 600미터. 하지만 직선으로 갈 수 없어."

빨간 선이 그려졌다. 실제 경로.

"1차 보안 게이트 → 외곽 순찰로 → 2차 보안 게이트 → 터빈 건물 우회 → 3차 보안 게이트 → 본관 진입 → 중앙 제어실."

"총 거리: 1.2km."

"장애물: 강화 콘크리트 방벽 3개, 강철 셔터 5개, 보안 병력 예상 50명."

선호가 나를 쳐다봤다.

"돌파하려면 최소 30분 필요해. 근데 너는 15분 후에 멈춰. 그럼?"

"..."

"너는 그냥 600미터 지점에서 멈춘 1톤짜리 고철 덩어리에 갇힌 찐 통조림 되는 거야. 내부 온도 70도. 너는 10분 안에 열사병으로 죽어."

나는 주먹을 쥐었다.

"방법이 없을까? 액체 질소 탱크라도 등에 짊어지고 갈까? 아니면 냉각 용량을 두 배로..."

"이미 최대야. 더 올리면 펌프가 터져."

선호가 한숨을 쉬었다.

"아니. 다른 방법을 찾았어."

그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이거 봐. 해킹한 질병청 서버에서 찾은 거야."

화면에는 공문서가 떠 있었다.

[사망자 보고서]

일련번호: GIG-042성명: 박철수연령: 28세성별: 남신체 정보:

신장: 265cm

체중: 210kg

골밀도 T-score: +8.3

사망 일시: 2051년 3월 28일 오전 4시 17분사망 장소: 경북 울진 격리 수용소 제3동발견 당시 상황: 침상에서 사망한 채 발견. 입과 코에서 다량의 혈흔.

사인: 급성 산소 중독(Oxygen Toxicity)에 의한 다발성 장기 부전

부검 소견:

"첫 번째 사망자야."

선호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거인 중에서. 공식적으로는."

"부검 사진 봐."

나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으윽..."

폐 사진.

정상 폐는 분홍빛이고 스펀지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하지만 이 사진 속 폐는...

녹아 있었다.

마치 강한 산(Acid)을 들이마신 것처럼.

폐포가 터져서 조직이 붉게 문드러져 있었다.

폐 표면에 하얀 반점들. 섬유화. 폐포가 죽어서 딱딱해진 것.

그리고 내부 단면.

혈관이 터져서 피가 고여 있었다. 폐 속이 피로 가득 차 있었다.

익사한 것처럼.

하지만 익사가 아니다.

내부 출혈.

다음 사진. 뇌.

뇌 단면 MRI.

정상 뇌는 회백색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사진 속 뇌는 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특히 전두엽과 해마 부분.

마치 과산화수소에 담근 고기처럼.

산화.

뇌세포가 활성산소(Free Radical)에 공격당해 죽은 것.

"산소 농도 28%를 넘어가면..."

선호가 설명했다.

"우리 같은 '거인'들의 대사량이 못 버텨. 일반인은 괜찮아. 대사량이 낮으니까. 근데 우리는 대사량이 5배야. 산소를 5배로 빨아들여. 그럼 체내 산소 농도가 과포화 상태가 돼."

그가 화학식을 띄웠다.

정상 산소 대사:

O₂ → H₂O (물로 안전하게 배출)

과잉 산소:

O₂ → O₂⁻ (슈퍼옥사이드 라디칼)

O₂⁻ → H₂O₂ (과산화수소)

H₂O₂ → OH· (하이드록실 라디칼)

활성산소가 세포막, DNA, 단백질 공격

→ 세포 사멸

→ 장기 부전

"활성산소(Active Oxygen Species)가 몸을 공격해. 말 그대로 몸이 안에서부터 '녹스는(Rusting)' 거야. 철이 녹슬듯이."

"이 사람은... 왜 죽은 거지?"

"보고서 뒤에 있어."

선호가 페이지를 넘겼다.

[사망 경위 조사]

피격리자 박철수는 격리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에 투입됨.

작업 내용: 폐광산 갱도 내 희토류 채굴작업 시간: 1일 14시간 (06:00~20:00)작업 환경:

갱도 깊이: 지하 200m

환기 시설: 미비

갱도 내 산소 농도: 29.3% (고농도)

온도: 35도

습도: 90%

사망 전 증상:

D-7: 호흡곤란 호소

D-5: 각혈 시작

D-3: 의식 혼미

D-1: 보행 불가

D-Day: 사망

의학적 소견:고농도 산소 환경에서 장시간 고강도 노동으로 인한 과호흡.체내 산소 과다 축적.활성산소 생성 → 폐 및 뇌 조직 손상 → 사망.

"격리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을 시켰어."

선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환기도 안 되는 지하 갱도에서, 하루 14시간씩 곡괭이질. 숨을 헐떡일 때마다 고농도 산소가 폐로 쏟아져 들어가. 일주일이면 폐가 녹기 시작해. 2주면 뇌까지. 3주면..."

그가 사진을 가리켰다.

"이렇게 돼."

나는 주먹을 떨었다.

"정부가... 일부러 죽인 거야?"

"모르겠어. 일부러인지, 아니면 무지해서 그런 건지. 하지만 결과는 같아. 죽었어."

선호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진우야."

"..."

"네가 발전소를 끄지 않으면, 우리도 이렇게 돼."

"산소 농도가 계속 올라가잖아. 지금은 27%. 다음 달엔 28%. 내년엔 30%."

"30%가 넘으면, 우리는 그냥 숨만 쉬어도 폐가 녹기 시작해. 1년 안에 폐가 녹아서 죽어."

"이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 문제야."

그때였다.

우웅- 우웅- 우웅-

벙커의 지진 감지 센서가 울렸다.

"뭐야? 지진?"

"아니."

선호가 급히 메인 콘솔로 달려갔다.

키보드를 두드렸다.

외부 CCTV 화면이 떴다.

[카메라 #07: 해운대 해수욕장 전망]

화면 속.

자주색으로 변한 바다가 미친 듯이 출렁이고 있었다.

파도가 방파제를 때렸다.

콰아아앙!

보라색 물보라가 10미터 높이로 솟았다.

그리고 썰물.

바닷물이 쏴아아악 빠져나갔다.

모래가 드러났다.

아니, 모래가 아니었다.

자주색 슬라임으로 덮인, 죽은 물고기로 뒤덮인 해변.

"조수 간만의 차가 벌써 커지고 있어."

선호가 중얼거렸다.

"달이 가까워졌으니까. 슈퍼문까지 이틀. 조석력이 이미 평소의 1.3배야."

그리고 화면 구석.

해안가 산책로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저 사람들... 왜 저래?"

선호가 화면을 확대했다.

조깅하던 사람. 쓰러졌다. 목을 부여잡고 있다.

자전거 타던 사람. 넘어졌다. 피를 토하고 있다.

개 산책시키던 노인. 무릎 꿇었다. 얼굴이 파래졌다. 개도 쓰러졌다.

피부에 붉은 반점이 돋았다. 두드러기처럼.

"남세균 독소야."

선호가 다른 센서 데이터를 띄웠다.

[해운대구 대기질 실시간 측정]

황화수소(H₂S): 247ppm (치사량: 100ppm)

마이크로시스틴 에어로졸: 0.8μg/m³ (위험)

"파도가 칠 때마다 독소가 에어로졸(Aerosol) 형태로 공기 중에 퍼지고 있어. 미세한 물방울에 독소가 섞여서 공중에 떠다니는 거야."

"숨만 쉬어도 중독돼. '자주색 죽음(Purple Death)'이지."

선호가 화면을 끄고 시계를 봤다.

"D-2. 슈퍼문이 뜨면 저 독성 바닷물이 도시 전체를 덮칠 거야."

"조석 높이가 평소의 2배가 넘을 거야. 만조 때 해일 높이 예측: 15미터."

"해운대 평균 해발고도: 3미터."

"15미터 독성 해일이 해발 3미터 도시를 덮으면..."

나는 말을 끊었다.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몰살.

"그전에 막아야 해."

나는 다시 수트 쪽으로 걸어갔다.

"15분."

내가 말했다.

"그 안에 못 끝내면 죽는 거야.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죽어."

"하나 더 있어."

선호가 비장한 표정으로 다른 파일을 열었다.

"발전소 도면을 해킹하다가 이상한 구역을 발견했어."

홀로그램 발전소 구조도가 떴다.

지상 5층, 지하 5층 건물.

선호가 지하 5층 한 구역을 확대했다.

[B5F - 폐기물 처리 구역]

"폐기물 처리장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가 전력 사용량 그래프를 띄웠다.

발전소 총 발전량: 2.5GW

건물별 전력 소비:

- 플라즈마 제어 시스템: 35%

- 냉각 시스템: 25%

- 터빈 건물: 15%

- 관리동: 5%

- 기타: 10%

- B5F 폐기물 처리장: 30%

"폐기물 처리장이 전체 전력의 30%를 쓰고 있어. 플라즈마 제어 시스템 다음으로 많아."

"폐기물 소각로가 뭐 하나? 그렇게 전기를 먹어?"

"이상하지? 그래서 열화상 카메라 해킹했어."

선호가 적외선 이미지를 띄웠다.

발전소 건물 전체가 파란색(차가움)이었다.

냉각 시스템이 가동되니까.

하지만 한 곳만 빨간색(뜨거움)이었다.

B5F.

그것도 단순히 빨간색이 아니라, 밝은 주황색. 거의 하얀색에 가까운.

"온도 측정: 45~50도."

선호가 나를 쳐다봤다.

"네 체온이랑 똑같아."

나는 숨이 멎었다.

"...설마."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열 신호 패턴을 분석했어. 심박수처럼 규칙적으로 변동해. 분당 140~180회."

"생체 신호야."

"거기에 뭔가가 있어. 살아있는 뭔가. 아마 너 같은 거인이거나..."

선호가 말을 멈췄다.

"아니면 정부가 숨기고 있는 '무언가'."

나는 주먹을 쥐었다.

수트 밖이었는데도 관절이 삐걱거렸다. 티타늄 뼈가 근육의 힘을 못 버텨서 삐걱대는 소리.

"가서 확인해 보자고."

내가 말했다.

"그게 동료인지, 아니면 괴물인지."

"그리고..."

나는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봤다.

2051년 4월 3일 (토요일)슈퍼문

"이틀 후, 저 발전소를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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