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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Jan 25. 2019

[뮤즈 모임] '치킨'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소재는 치킨

*사진출처 : <unsplash.com>


[뮤즈:오도현 작가] 유서


제가 왜 불행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합니까?

여태껏 많은 동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 또한 숭고한 희생이라며, 정해진 운명이라며 목이 찢어지라 울부짖으며 떠나갔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입고 있던 배냇저고리를 빼앗아갔으며 그걸로도 모자라 딱딱한 돌까지도 소화시켜주던 그들 몸의 일부를 잘라갔죠. 그대로도 슬픈데 끈적이고 기분 더러운 액체까지 쳐 바르는 걸 보고 있으려니 다가올 제 운명이 서글퍼집니다.

곧 떠날 처지이기에 한 마디 하고 가렵니다.

얼마 전 우리들의 몸값을 멋대로 올려 우리들이 욕을 먹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비참했습니다. 우리는 우릴 운구하는 사람이 중요치도 않고, 우리의 마지막 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부디 우리의 마지막을 웃음과 함께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이 운명을 숭고한 희생이라 여기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좋은 곳으로 가겠습니다.




[뮤즈:심규락 작가]<계중 유골 (鷄中有骨)>

“야, 너 어제 다이어트 시작한다고 하지 않았냐? 근데 뭔 치킨에다가 맥주를 처먹냐?”

경찬이는 못마땅함을 한가득 눈 고리 끝에 걸어 계식이를 째려봤다.

“이 새끼 또 기자인 티 내네, 그딴 냉철한 시선은 제발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나 겨누라고 좀. 지금 네가 신경 써야 할 이슈가 내 다이어트 무기한 보류냐, 아니면 목포의 손 의원이냐? 아니면 차라리 하다못해 인간 말고 미세먼지 고민을 하라고. 잊었나 본데, 내 이름이 뭐냐? 정계식, 닭을 먹는다는 뜻 아니냐. 난 그냥 단지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나가는 것뿐이라고.”

계식은 ‘법을 지켜나가다’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 석 자까지 임시 개명해가며 치킨을 연신 입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네 다음 0.1 톤. 너 그저께 병원에서 고혈압이라고 했다며? 지질학자라는 새끼가 지층 캐기도 전에, 지 지방층도 못 헤아리다가 그냥 뒤지게 생겼다. 이 미쉐린 타이어 새끼야, 제발 정신 좀 차려. 너 그러다가 진짜 평생 모태솔로로 살다가 향 피운다고."

경찬이는 치킨 대신에 사이드 메뉴로 시킨 쥐포를 씹어대며 우려 반, 질책 반의 날숨을 던졌다. 듣는지 마는지 계식은 역시 지질학자답게, 삽시간에 닭다리 두 개를 발골해냈다.

“며칠 전에 영국 남아공 지질학 공동 연구진 팀이 뭐라고 발표했는지 알아?”
“그래, 적어도 차라리 그렇게 개소리하는 시간 동안엔 네가 안 먹어서 그렇게라도 난 위안이 된다.”
“어차피 다 먹긴 먹을 거고, 암튼 중요한 건 걔네들의 연구 결과가 뭐냐는 거지. 걔네 왈, 10만 년 뒤에 21세기 지층을 발굴하면 화석으로 플라스틱 쓰레기와 치킨 뼈가 나와서 현 인류 문명의 증거로 삼아질 것이다 이 말이야.”
“그거랑 네 고혈압이랑 무슨 상관이냐 고요?”

본인이 좋아하는 치킨 그리고 전문분야인 지질학 얘기와 함께하는 이 시간, 쾌락의 열반 상태에 오른 계식의 혀는 치킨집 건너편에 있는 주유소 펄럭 인형보다 더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닭과 같은 조류는 원래 뼈가 가볍고, 먹이사슬 하위에 있는 존재라 쉽게 잡아 먹혀서 화석으로 남기가 어렵지. 근데 지금 시대의 닭은 1950년대 이후 우리한테 계속 계량이 되어서 당시의 종 보다 무게가 5배가 넘게 커진 거란 말이야, 재작년 한 해동안 전 세계인들이 먹은 닭이 거의 700억 마리 정도라고. 게다가 닭 뼈가 버려지는 처리 장소는 산소가 부족해서 화석으로 남기 쉽단다.”
“그래서 왜 우리 미쉐린 씨가 생존용 다이어트와 연애까지 포기하시면서, 계속 치킨을 드실까?”
“나는 말이야, 지금 단순히 미각에 지배되어 치킨을 탐닉하는 게 아니라 후대 인류의 지질학 연구를 위해서 화석을 남기는 중이라고. 내 직업적 사명에도 아주 잘 부합되는 소양이지.”

경찬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반문하기를 멈추고 맥주를 마셨다.

“야, 알았으니까 차라리 치킨 말고 그냥 쥐포를 먹으면 안 되겠냐? 너 이러다가 고혈압으로 진짜 죽어 새끼야. 너 죽으면 우리 둘 중에서 나 혼자만 육개장 먹는다고. 아니면, 죽긴 죽더라도 적어도 살 빼고 연애를 한 번이라도 해보고 관 속에 들어가야 할 거 아냐.”
“쥐포라……”
“또 뭔 개소리를 하려고.”

계식은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기자니까 더 잘 알겠지. 1979년 5월 대전교도소 내 여성 무기수 18명이 특별외출받아서 단체관광 갔던 거 알지?”
“용인 자연농원으로 간 거.”
“그렇지. 오랫동안 교도소에 있다가, 밖에 나가니까 세상이 이전에 비해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외출 내내 놀라기만 했다며. 그때 그 사람들이 가장 신기했던 세 가지로 뭘 뽑았냐?”
“고속도로랑 새마을 주택 그리고 이거 쥐포구이. 아 근데 갑자기 뭔 소리야.”
“똑똑하네, 역시 기자가 맞긴 맞네. 암튼 70년대에 오징어 값 폭등해서 결국 쥐포의 재료인 쥐치가 멸치를 제치고 어획량 1위에 오르고, 쥐포가 국민 간식으로 부상했지. 너도 잘 알겠지만 원래 쥐치는 껍질이 두껍고 맛도 없어서, 그물에 걸리면 어부마저도 버리던 생선이었는데."
“네 다음 관악구 황교익. 아 좀!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뭔데?”

계식은 말에 열중해서인지, 아니면 배가 불러서 그런지, 치킨에게도 맥주잔에게도 손을 건네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맛없다고 버려지던 쥐치는 쥐포용 조미료가 개발되면서 인기를 얻게 되는데, 그래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었다고 하네. 쥐포 자체를 보면 맛있는데, 그냥 이름이 쥐를 연상시켜서 꺼려진대나 뭐래나.”
“그건 그렇지, 이름에 왜 하필 쥐가 들어가.”
“오죽하면 1978년 전국 우수 새마을 지도자 다과회에서 최규하 총리가 ‘쥐치란 이름이 미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좋은 이름이 없는지 어류학자들에게 알아보라’라고 말을 했겠냐. 그래서 결국 10년 뒤에 경남 쥐치포 가공 조합이 복지포라는 새 이름으로 바꾸자고 주창했던 적이 있었고.”
“희한한 건, 사람들은 그래도 계속 쥐포라고 한다는 거고.”
“희한한 건, 사람들은 그래도 계속 나를 보고 0.1 톤 이라고만 한다는 거고.”




[뮤즈:허수정 작가] <뭐하나 예쁜 구석이 없는데, > 작가말레

아침이야 울어대는 울음소리
양아치처럼 염색한 시뻘건 벼슬
퍽퍽하기 그지없는 퍽퍽 가슴살
가만, 배는 본 적이 없다... 아무튼,
보이지 않는 앙상한 너의 두 다리

그런데도 너가 끌린다.
미친 듯이 너가 끌린다.

뭐하나 예쁜 구석 하나 없는 니가
뜨거운 기름 속에 뛰어들어
멋진 옷을 입고 나에게 다가오는데
미친 듯이 니가 끌렸다..

오늘도 니가 끌린다.
정말 뭐하나 예쁜 구석 하나 없는데,




[뮤즈:김지수 작가] 치킨런


내가 굴지의 대학을 나왔다면 내 슬픔은 조금이라도 빛났을지도.

나는 지금 명확한 목적지가 있으나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언제나 돌이켜보면 내일을 생각하려 할 때면 내 일들이 나를 불렀고 미래를 생각하려 할 때면 그 날의 잔고가 나를 부르짖었기에 나는 그 날로 고민이라는 것을 덮고 하루를 감사히 사는 착한 양치기처럼 살았다.

그리고 오늘, 2차선 도로를 지나며 내 등 뒤로 싸늘히 식어가는 프라이드치킨만 생각했다. 헬멧 틈으로 들어오는, 차 들의 바람이 시원했다. 오늘따라 막히는 도로 위에 2차선 도로를 4차선 도로처럼, 어디로 가야 이 놈들을 앞지를까 치밀하게 생각했다. 헬멧에 눌린 머리가 지끈지끈할 정도였다.

“아이씨. 미친 새끼야 넌 중앙선이 차선이야?”

돌아보기도 전에 투박한 손이 담배꽁초를 던졌다. 나에게 던지려 했으나 닿지 못한 것이었다. 없던 일도 아닌데 유난히 머리가 울렁울렁했다. 익숙하지 않은 이 느낌. 아까부터 계속되던 이 불쾌한 기계열.

나는 파란불이 되어도 가지 않고 한참을 있었다. 신호가 노란불이 되어서야 나는, 그것이, 생각의 촉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밀하게 생각한다는 말은, 정말로 머리가 가렵도록, 촘촘하고 따끔할 만큼 생각을 많이 한다는, 그런 뜻이구나. 나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려운, 그 느낌을 느끼고는 결국 그 자리에 붙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생각이 너무 뜨거워서 김처럼 눈물이 나왔다.

나는 나의 생각을 가렵도록 한 적이 있던가.

어머니가 너는 하지도 못할 일을 그렇게 생각만 해서 어떡하냐고, 원서를 찢어버린 그 여름밤이 마지막으로 내 머리가 가려웠던 날이었던 것 같다.

좁은 2차선 도로에서 가만히 있는 나를, 그들은 마치 고양이 시체를 피하듯 요리조리 나를 피해 지나갔다. 그들이 일으키는 바람은 너무 세서 헬멧을 쿵, 쿵, 주먹으로 내려치는 것 같아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퇴근길에 쏟아진 차들에 2차선 도로는 강물처럼 빛났다.

 



[뮤즈:권호 작가] 공복 中

교촌, 굽네, 오꾸닭, BHC, 지코바
당신이 이 중 어떤 치킨을 시키더라도,
그 치킨들에 실망하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저도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기를




[뮤즈:허상범 작가] 길어서 슬픈 것들


어디 목이 길어 슬픈 것이

사슴뿐이랴.

높은 자리 해도

목이 길어 슬픈 것 또한

닭이거늘.

목만 길다고 슬프랴.

명이 길어 더욱 슬픈 것이

사람이거늘.

명이 길어 슬픈 것이

목이 길어 슬픈 것을

슬픔이 슬픔을 먹고살아야 하는

명은 아직 끝나지 않은 밤처럼 늘어져

슬픔은 끊어지질 않고.




[뮤즈:심스 작가] 치킨 부르주아


어릴 적

짜장면집 아들, 동네 구멍가게 아들과 더불어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통닭집 아들.


통닭집 아들이었던 그 형은

그 어린 나이에도 크고 멋있어 보였다.


한 달에 한번

아버지께서 사주신 후라이드 통닭.

그 닭을 먹으면서도 나는 그 형을 부러워했다.

누구는 매일 이 맛난 걸 먹겠구나 하고...


어른이 되어

치킨집을 하는 친구를 두게 되었다.

그 친구는 그 옛날 그 형처럼

매일매일 치킨 냄새를 맡고 있지만,

어느새 삶의 고된 일상에 찌들어 버린 그 친구는

어릴 적 그 형처럼 선망의 대상이 아닌

그저 함께 세상살이를 걱정하는

평범한 이웃이 되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게 이런 건가...

멋있었던 것이 하나둘씩 현실이 되어가는

그 깨달음이 너무 싫어서

오늘도 난 치킨 한 마리와 함께

맥주 한 잔을 기울인다.


커서 돈 많이 벌어서 매일매일 치킨 먹어야지...

어릴 적 그 형을 바라보며 했던 그 다짐은

그렇게 조금은 남다른 의미로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뮤즈:김민관 작가] 내가 착해진 이유


작은 치킨 하나를 놓고서도 친구들끼리 싸운다.

그 사이에도 알력이 있다.

닭다리를 욕심내는 친구가 두 명 있음 꼭 싸운다.

정치인들이 왜 그렇게 싸울까 이해를 못했는데 치킨 생각하니 좀 알겠다.

욕심쟁이 국회의원이 제법 있어 그런 것 같다.

서로 친구래도 싸우고

국민이 굶어 죽어도 싸운다.

닭다리는 그만큼 힘이 세다.

나는 그래서 닭다리를 놓고 슬픔에 잠겼다.

애초에 치킨을 포기하는 것 외에 안 싸울 도리가 없는 것 같다.

닭다리를 먹어도 나빠지고 안 먹어도 욕구불만으로 성질이 나빠졌다.

언제나 날개를 잡는 내게 친구가 너는 참 착하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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