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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현 May 05. 2024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만 총량은 같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이 싫었다. 우선 밖에서 놀지 못했고 비가 오는 날은 온 집안이 습했다. 층수가 낮고 옆집과의 간격이 좁아서 집은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다 보니 장판의 습기로 방바닥은 끈적했는데 나는 그 느낌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무렵에 우리 부모님은 ‘전세’라는 타이틀을 떼고 ‘자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무려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IMF를 맞은 대한민국의 처지처럼 우리도 쫄딱 망했다. 정말 쫄딱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게 이사 갈 집을 구할 돈이 없어 엄마의 친구집에 얹혀살게 되었는데 단칸방과 다락이 당시 우리 가족을 위한 최대의 배려였다. 사춘기를 맞이할 즈음 우리 집에 벌어진 일은 돈이 얼마나 사람을 작게 만들 수 있는지 나에게 알려주었고 난 돈에게 혐오와 천박하다는 타이들을 주었다.


우리는 행복을 이루기 위해 일을 한다. 일을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인생의 불편을 해소하며 살아간다. 집이 없는 불편,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불편,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가지 못하는 불편 등.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불편, 다른 말로 부러움이라고 말하며 다른 말로는 욕심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 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돈을 번다. 하지만 나는 돈에 대한 너무 심한 집착보다는 덤덤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행히도 어린 시절 주변에 자본에 큰 욕심을 내지 않고 사는 분들이 많아서 쉽게 덤덤해질 수 있었지만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아직 자본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라 자본에 대한 덤덤함이 경제관념을 키우지 않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 돈 관리가 허술해졌고 공과금의 미납과 통신료 연체 등으로 신용도 하락만 가지고 왔다. 이후 나 스스로 자본에 대한 덤덤함 을 깨닫고 난 뒤는 다행히도 경제관념이나 돈관리에 수월해질 수 있었다.


앞서 말했지만 돈이 혐오스럽고 천박하다는 생각은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없으면 불편하고 너무 많으면 불편을 만들어 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본에 대한 경계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자본에 대한 경계를 가지지 못한다면 자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잃을 수 있다. ‘자본보다 소중한 게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일을 하며 느끼는 행복, 보람, 성취감 등 감정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우리가 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에서 오는 감정은 우리가 시간을 들여 얻을 수 있으며 자본에 대한 몰두는 이런 시간을 빼앗아 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본을 위한 시간과 우리의 행복을 위한 시간을 적당히 배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자본이 우리의 인생에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자본을 포기하고 다른 것에만 몰두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도,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자본은 우리가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므로 그 도구를 적절하게 사용해야 우리의 삶이 더 많고 다양한 경험으로 가득 찰 수 있다.) 이제부터가 어려운 지점인데 어떻게 그 시간을 배분할 수 있을까? 나는 ‘욕심의 경계’를 가지는 것을 추천한다. 마음속의 경계가 없다면 자본과 행복을 위한 시간을 배분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심의 경계’는 성장하는 것도 실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욕심‘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며 가진 것에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욕심의 경계‘의 실천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다.  행복을 위한 시간을 배분하는 일은 쉬운 일 자본과 행복을 위한 시간의 배분이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욕심’, 그리고 ’ 비교‘, ‘초조함‘ 등 타인과 비교에 따른 감정이 앞서기 때문인데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선 내면의  행복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에 행복해질 것인가 ‘는 첫 번째 단계다.(행복한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자본을 위한 시간과 구분이 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 일을 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라는 말을 하는데 정말 일을 사랑해서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지만 돌려 생각해 본다면 내가 어떤 일을 하며 행복함을 느끼는지 모르고 있다는 말일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 모르는 경우가 많고 행복한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게 되므로 자신의 어떤 일에 행복을 느끼는지 알기 위해선 자신을 제일 잘 알아야 한다. 만약 내가 어떤 일에 행복을 느끼는지 모른다면 지금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공적, 사적인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며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이 역할수행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 욕심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았다면 마음속에 저울을 준비한 후 ’ 자본을 위한, 일을 위해 소비하는 시간‘, 한쪽은 ’이 일을 하지 않을 경우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올려두고 무게를 측정한다. 만약 자본을 위한 시간으로 저울이 기운다면 현재 일을 꼭 해야 하는 일이므로 그 일에 집중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일보다는 행복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추천하는데 앞서 말했듯 이 저울은 현재의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가끔 일을 하며 돈을 더 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다시 첫 번째 단계로 돌아가는 것을 권장하는데 내가 행복을 돈을 더 버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이유가 내면의 행복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기 위해선지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 자본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본을 위한 시간마저 행복을 추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더 큰 꿈을 위해 자본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면 시간을 정해두고 할애하길 바란다. 더 큰 꿈을 이루기엔 현재 자본이 부족하고 시간을 배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을 자본으로 다 몰아 쓰는 경우로 정해진 시간이 없다면 언제까지 꿈만 꾸며 돈을 버는데 그 꿈을 이룰 시간을 다 써버리게 된다. 이런 경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시작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하며 작은 시작이라도 빨리 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실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무한하지 않다. 특히 시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한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한하지 않고 얼마가 주어져 있는지 알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을 잘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간을 잘 쓴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자원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특히나 시간과 같은 한정적인 자원을 활용하여 나의 행복을 위해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나의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행복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수도 있고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만 얼마나 많은 행복을 이룰지 또한 시간의 활용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도 이 일을 어느 선까지 하고 다른 행복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이 행복만으로 만족할 것인지에 따라 시간의 쓰임이 달라진다. 이런 시간을 우리가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에 따라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 결정이 되는데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현재 자본을 위해 쓰는 시간은 행복을 위한 시간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며 이러한 과정에서 인생의 중심은 자본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자본으로 옮겨진 중심이 다시 행복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잃게 만드는데 우선 잃어버리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에 포함되어 있는 일생에 놓치면 돌아올 수 없는 순간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중심을 행복에 두고 그 중심이 변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행복이 무엇인지, 그 행복과 자본 사이의 기준인 ‘욕심의 경계’가 필요하다.


처음 입사를 하고 일에 대해 아직 익숙지 않은 가운데 주요한 업무를 맡게 되었다. 사실 그렇게 주요 자리는 내가 갈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나보다 더 나은 누군가 그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연찮게 제안이 들어왔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대뜸 한다고 했는데 이후 손대는 일마다 터져버렸다. 다른 부서에서 민원은 계속 들어오고 심지어 다른 부서의 장에게 불려 가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니 같은 부서는 어떠했을까. 정말 하루하루가 눈치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억울해서, 서러워서, 스스로 한심해서 온갖 부정적인 이유로 일에 대한 혐오와 기피만 심해져 갔는데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일에 대한 오기로 모든 시간을 쏟아부은 적이 있었다. 주중은 야근으로 주말도 야근으로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시간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당시에 일하던 곳과 본가는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당시 엄마는 나를 주말에 보는 것이 사는 낙이라고 말씀하곤 하셨다. 엄마는 몸이 안 좋아서 10년 가까이 병원과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었는데 일에 모든 시간을 쏟겠다 하고 두 달 가까이 집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일에 여유가 생겨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집에 갔는데 그렇게 두 달 정도 지났을까? 엄마는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고 난 뒤 일과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었단 시간을 바꾼 게 너무 후회되었다. 나 역시 엄마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게 유일한 낙이였는데 더 이상 그 시간을 보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을 더 같이 보낼걸 후회를 한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을 잘 쓰지 못한 나의 뒤늦은 후회였다.


우리에게 시간은 중요하다. 그리고 자본 또한 중요하며 그 중심을 얼마나 잘 맞출지는 더 중요하다.  사실 자본을 예로 들었지만 우리가 행복을 위한 시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 욕심의 경계‘는 자본 대신 그 중요한 것으로 바꿔도 된다. 그리고 행복을 위해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한다고 해도 더 행복해지지 않으며 행복의 반대에 있는 것과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더 행복할 수 있다. 만약 엄마와의 시간을 위해 일을 포기했다면 난 직장에 나가 일을 하는 시간 내내 괴로울 것이었다. 괴로워하는 나를 보는 엄마의 마음 또한 불편했을 것이며 결국 엄마와 나는 둘 다 행복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금 자신의 중심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이라면 다시 중심을 잡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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