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로부터 30년이 흘렀습니다.
오늘은 제가 교사로 발령받은 지 만 30년이 되는 날입니다.
평소 흐르는 시간 위에 점을 찍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기념일 따위는 무심하게 넘기곤 했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느낌이 다릅니다.
창밖의 공기도, 교실의 소음도 평소와는 다르게 가슴에 와닿는 하루입니다.
1995년 3월 25일, 부천의 한 초등학교에 교사로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시 군 입대를 위한 훈련소 입대를 기다리고 있던 차에 갑작스럽게 난 발령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개교 2년 차였던 그 학교는 젊은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스승의 날 배구대회 우승을 위해 매일같이 땀 흘려 연습했고, 경기가 끝난 저녁엔 승리의 기쁨이나 패배의 아쉬움을 술 한잔으로 달래곤 했지요.
서울교대를 졸업하신 90학번의 이00 선생님을 유독 따랐던 기억이 납니다.
반년 간의 짧은 전담 교사 생활을 마치고 18개월의 공익근무요원 생활 끝에 다시 그 학교로 복직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주0, 경0이, 아0이, 현0 등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제자들을 만났고, 이후 5개 학교를 거쳐 현재 부천에 있는 00초서 3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재직하신 대선배님들에 비하면 30년은 아직 명함도 못 내밀 처지이지만, 정년까지 남은 9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승진의 길을 일찍이 내려놓은 제게는, 역설적이게도 참 많은 선택지가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는 늘봄 실장으로 나가라거나, 명예퇴직을 해서 조금 더 일찍 자유로운 삶을 살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현장에서 아이들과 복닥거리는 생활이 좋습니다.
특히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제게 선물같은 학교랍니다.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순수한 학생들, 권위보다 배려를 앞세우는 관리자분들, 그리고 열정 넘치는 후배 선생님들까지.
무엇보다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는 민원이나 갈등 대신, 착한 아이들과 점잖은 학부모님들이 계신 이 환경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부천에서 보낼 수 있는 남은 2년의 시간을 이곳에서 계속 채워가려 합니다.
올해는 기분 좋은 욕심이 하나 생겼습니다.
작년 2학기부터 함께 땀 흘리며 지도하고 있는 배드민턴 선수반을 이끌고 반드시 남녀부 동반 우승의 기쁨을 맛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셔틀콕을 주고받으며 배우는 건 기술만이 아니라, 서로를 믿는 마음과 끝가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료 선생님을 도와, 공교롭게도 제 첫 발령지였던 학교를 상대로 티볼부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유쾌한 반란도 꿈꿔봅니다.
30년 전,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마냥 두렵고 서툴렀던 새내기 교사 '김 선생'이 어느덧 머리에 희끗한 눈이 내려앉은 '명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줄 때 느끼는 설렘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남은 9년, 저는 화려한 승진의 훈장 대신 아이들의 땀방울과 웃음소리를 훈장 삼아 걸어가려 합니다.
'명쌤'이라는 이름이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양지녁이 되고, 저 스스로에게는 부끄럽지 않은 긍지가 되도록, 남은 발자취를 정성껏 꾹꾹 눌러 담겠습니다.
저의 이 서툰 기록이, 어딘가에서 묵묵히 교실을 지키는 동료들에게는 작은 공감이, 아이들에게는 훗날 꺼내볼 수 있는 따뜻한 기억의 조각이 되길 소망합니다.
남은 9년도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멋진 스승이자 아이들의 영원한 친구로 남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