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상호작용 속에서 파악되어지는 '입체적 존재'
00초에서의 새 학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 교실, 새 친구, 새 담임에 대한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마주하면, 교사인 저조차 마음이 설렙니다.
이 맑은 눈동자들을 만나는 일은 매년 겪는 일임에도 늘 저를 긴장시키고 또 기대하게 만들죠.
그런데 오늘, 유독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아이 한 명이 보였습니다.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유혹이 일었습니다.
'작년 생활기록부를 한번 열어볼까?'
'전 학년 담임 선생님께 슬쩍 연락해서 어떤 아이인지 물어볼까?'
교사로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아이를 빨리 파악하고 싶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효율성'의 논리가 고개를 든 것이지요.
하지만 그 순간, 제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었던 초임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발령 초창기, 저는 제가 제가 가르쳤던 아이들에 대한 '소개 편지'를 써서 새 담임 선생님들께 전달하곤 했습니다.
마치 금지옥엽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이었달까요.
이 아이의 장점은 무엇인지, 어떤 점을 고쳐주어야 하는지 빼곡히 적어 내려갔습니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다른 선생님들은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내 아이가 새 교실에서도 잘 적응하길 바라는 간절함이 담긴 마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무척이나 부끄러운 오지랖이었습니다.
종이 위의 평면, 관계 속의 입체
당시 제 편지를 받으신 나이 지긋한 선배 선생님 한 분이 저를 조용히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다정한, 그러나 묵직한 한마디를 건네셨죠.
"김 선생, 편지는 잘 받았네. 하지만 나는 그 편지를 읽지 않을 생각이야. 그 편지가 아이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야."
의아해하는 제게 선배님은 영원히 잊지 못할 몇 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인간은 종이 위에 쓰이는 '평면적 존재'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 작용 속에서 파악되어지는 '입체적 존재'이기 때문이네."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천천히 어떤 아이들인지 알아가 보겠네."
"편지 쓰느라 고생 많았을 텐데 읽지 못해서 미안하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이를 돕는답시고, 그 아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제가 써 내려간 몇 줄의 문장 안에 가두려 했던 것입니다.
너는 신이 아니야
오늘 제가 본 아이의 모습은 그 아이가 살아온 13년 세월 중 단 하루의 단면일 겁니다.
찰나의 행동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려 들다니요.
"너는 신이 아니야."
스스로에게 나직이 읊조려 봅니다.
생활기록부라는 닫힌 텍스트 속에 아이를 가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수많은 시간 속에서, 오해하고 다시 이해하며, 조금씩 그 아이라는 세계를 알아가려 합니다.
오늘도 교실 문을 열며 다짐합니다.
기록된 과거보다, 지금 내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입체적인 너'를 먼저 사랑하겠노라고.
소중한 가르침을 남겨주신, 이제는 성함조차 가물가물한 그 선배 선생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