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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Aug 04. 2019

나는 마당의 음식을 먹고 자랐다

도토리묵, 할머니와 정우 어머니의 합작품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가꿔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당이었다. 아장아장 걷고, 폴짝폴짝 뛰고, 네발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았던 아이의 마당이었다. 때로는 튀김 냄새가, 때로는 구수한 냄새가 그득했던 네 가구의 마당이었다. 


짙은 청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대문은 ‘모두’의 골목길과 ‘우리’의 마당을 구분 짓는 경계였다. 끼익, 소리는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공간으로 이끌었다. 크지 않은 마당이었지만, 이를 가운데에 두고 아이의 조부모, 스물 대여섯의 삼촌,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이모, 그리고 아이와 동갑내기였던 남자아이와 그의 부모까지, 총 네 가구가 마당을 공유했다. 


아이의 할머니와 할머니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남자아이의 어머니에겐, 마당이 요리 무대이자, 대화의 장이자, 쉼터였다. 요리를 즐기는 형님과 말동무가 되어준 아우는 서로가 지치지 않도록, 심심하지 않도록 각자의 소임에 최선을 다했다.






할머니의 돌절구가 쿵쿵쿵, 소리를 내었다. 동글동글한 도토리들이 거칠게 갈렸고, 할머니의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쿵, 흐쌰, 쿵, 흐쌰, 쿵, 흐쌰. 반복될수록 도토리의 형체는 점점 사라졌다. 아이는 절구 옆에 쪼그리고 앉아 도토리 서너 알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굴리었다. 별 재미는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조금만 기다리면 친구가 짜잔, 나타날 테니까.


아주머니에게는 ‘정우’라는 아이가 있었다. 외동아들이었다. 종이접기를 좋아해 혼자서도 잘 논다고 했다. 굳이 친구가 필요하지 않았던 정우와는 달리, 아이는 마당에서 친구와 함께 네발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같이 놀 구실이 없어 기회만 틈틈이 엿보던 아이에게, 할머니가 음식을 하는 날은 더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아주머니가 일손을 도울 때면 정우는 반강제로 마당에 불려 나왔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돌절구 소리가 친구를 부르는 주문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재빠르게 네발자전거를 끌고 와 정우 앞에 섰다. 기꺼이 양보하겠노라는 아이의 의지였다. 장난감을 양보했다는 사실이 한없이 자랑스러운 아이였다. 정우는 싫은 내색 없이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았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만큼 즐거워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상당히 귀찮고 힘이 드는 놀이였다는 걸,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전에 시작한 요리는 늦은 오후 무렵에 끝이 났다. 반나절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한 인내의 음식이었다. 할머니는 네모난 통에 담긴 도토리묵을 도마 위에 뒤집어 쏟았다. 탱글탱글, 매끄러운 게 꼭 아이가 즐겨 먹던 젤리 같았다. 칼이 훑고 지나가자 접시에 가지런히 묵이 놓였다. 아이는 엄지와 검지로 야무지게 집어 들고선 좌우로 흔들어댔다. “할머니, 아줌마! 봐요. 묵이 춤을 춰요!”라며 깔깔거리고 웃느라, 친구가 세 점을 먹을 동안 한 점밖에 먹지 못했다.


자전거를 양보했을 때도 웃지 않던 정우는 아이의 행동을 따라 하며 배시시 웃었다. 아이는 친구가 자전거보다 묵을 더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건 아이에게 나쁜 건 없었다. 할머니의 음식을 좋아해 준다는 건 마치 자신을 칭찬해주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일이었으니까. 


할머니는 커다란 통에 담긴 묵에 열십자를 긋고는 접시에 묵 세 덩이를 옮겼다. 

“이건 정우 엄마 가져가서 정우 아버지랑 먹어. 오늘 고생 많았어.” 

“아유, 고생은 뭘요. 잘 먹을게요, 형님.” 

이모와 삼촌 몫도 빼놓지 않고 챙겨두었다. 아이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종일 힘들게 만든 묵을 왜 다 나눠주는 거지? 

할머니에겐 이들이 자식 같고 동생 같다는 걸, 아이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시나브로 그렇게 되었다. 아직은 20대였던 어리고 여린 자식이, 부모의 품을 떠나 홀로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게 못내 안타까웠을 것이다. 부모를 대신해 밥 한 끼라도 먹이고 싶은 할머니의 정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마당이, 아이의 마당이, 우리의 마당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렸다. 옆이 아니라 위로 쌓아 올리는 집을 짓는다고 했다. 함께 살던 식구들은 각자의 터전을 찾아 떠났고, 아이의 할머니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마당이 없는 집이었다. 아이는 한동안 친구와 마당에서 신나게 놀던 기억을, 쿵쿵 소리를 내며 으깨지던 도토리들을, 두 어른이 합심해서 만든 도토리묵을 생각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옅은 그리움이었다. 천천히 흐릿해져 결국엔 사라져버리는, 잠시뿐인 아쉬움이었다. 


학교에서는 뛰어놀기 좋아하는 친구들을 사귀었고, 페달을 몇 번 밟으면 한 바퀴를 돌던 작은 마당보다 훨씬 넓은 운동장에서 두발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급식은 다양한 맛을 경험하게 해줬다. 도토리묵을 그리워하기엔 세상엔 맛있고 자극적인 음식이 많다는 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배워나갔다. 또렷했던 아이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쌉싸래한 도토리묵의 맛도, 마당에서 보낸 어린 시절도. 아이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메뉴는 단출했다. 6천 원짜리 묵밥과 5천 원짜리 국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들어간 식당이었고 단 두 개뿐인 메뉴에 적잖이 실망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묵밥 하나 주세요.” 그때는 몰랐다. 이 한마디가 이 이야기의 시작점이 될 줄은.




상이 차려지고 내 앞에 놓인 음식은 지워졌던 기억을 재빠르게 그려내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해주시던 그것과 제법 비슷하구나. 도토리묵을 두껍게 채 썰어 시원한 생수에 말고 김과 양념간장으로 간을 맞춘 게 전부였던, 우리 할머니의 소박한 밥상이 낯선 곳에서 나를 맞아주었다.



끼익, 오래된 철문이 열리고 있었다. 영영 사라져버린 마당이지만 기억 속에선 여전히 존재하는 공간. ‘우리’의 마당이 작은 식당에서 되살아났다. 무더운 여름엔 큰 대야 물을 받아 물놀이를 하고, 할아버지가 사 온 수박 한 덩이를 온 ‘식구’가 나눠 먹곤 했다. 

가끔은 할머니의 마루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와 마당을 채웠다. 정우 어머니가 시작한 노래가 할머니에게로 넘어갔다. 어렸던 나는 할머니를 따라 신나게 손뼉을 부딪쳤다. 두 어른이 그런 나를 보고 하하하, 크게 웃었다.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그로부터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할 게 분명하다.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젊은 이모와 삼촌은 쉰을 가까이 바라보는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종이접기를 좋아하던 정우는 자신의 가정을 꾸렸을지도 모른다. 마당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딱 고만한 아이를 키우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우리’의 마당이 아직 존재하고 있을지. 할머니와 정우 어머니의 도토리묵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을지. 아니다, 진즉 사라져버렸을 확률이 높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편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록 핏줄로 연결된 진짜 가족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음식으로 연결된 ‘진짜 식구’라고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이라는 건 바쁘고 또 바쁜 사람이니까 그럴 여유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욕심을 내고 싶다. 어느 날, 우연히라도 오래된 우리의 마당을 떠올려준다면 좋겠다. 그들의 하루를 잠시나마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추억으로 되살아난다면 좋겠다. 나의 할머니를, 탱글탱글한 도토리묵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나는 그날 심심한 묵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냈다. 할머니의 손맛엔 미치지 못했지만 잊고 있던 추억을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한 그릇이었다. 우리 식구들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식당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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