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낑깡 Apr 27. 2023

좋아하는 것을 내버려두는 마음

불필요한 것 없이 깔끔한 행복 01


볕이 따뜻하고 바람은 선선한 어느 날, 우리는 어김없이 한강에 앉아있다. 나는 유난스럽게 우리에 대해 생각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날들이 지속된다면 가장 먼저 우리를 위해 내 건강이 쓰여진다면 좋겠다. 올해는 5개월을 꼬박 아파서 제일 좋아하던 커피와 술을 끊었다. 우리가 함께하던 금요일 단골코스는 뜸해졌지만함께 살아갈 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늘었다. 폐허에도 꽃이피듯 우리는 더 단단해져간다.



한강의 풍경은 유독 생생하다. 정적이면서도 다분히 육체적이다. 그늘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 자기의 열배는 되는 덩치의 골든 리트리버에게 낑낑되며 연신 포복 자세를 취하는 갈색 푸들이 이리 저리 뛰어다닌다. 인이와 나는 그 모습이 어이없고 귀여워서 한참을 쳐다보며 웃는다. 그 사이 하늘은 푸른색에서 핑크색으로 핑크색에서 붉은 색으로 변한다. 우리가 자주가는 잠원 한강은 건너편에 남산타워가 엽서처럼 보인다. 매일봐도 매일 예쁘다.


우리의 검정 캠핑의자와 나무 테이블은 항상 차에 실려있다. 한강에 자리를 만들 때마다 너무 잘샀다며 아낌없이 만족감을 드러낸다. 5천원 남짓의 주차비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니 세상엔 감사할 것들이 더 많다. 여유롭지 못한 시절이 온다 해도 한강은 언제나 열려있겠지. 그것만으로 마음이 놓인다.


“자기 나 야구 결과만 볼께.“

“응! 오늘 야구해?“


인이는 야구를 좋아한다.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해서 일관된 사람이라 생각한다. 예상이 가능해서 불안하지 않다. 그의 여러 구석 중 내가 젤 좋아하는 구석이다. 그가 야구를 보기 시작하면 나는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한다. 그러다보면 꼭 같은 걸 좋아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야구를 좋아하지만 내게 함께 보자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가사가 좋은 노래를 좋아하지만 그는 딱히 개의치않는다.


“나 이 부분 너무 좋아! 이 가사 말이야(대체로 크게 따라부른다). ”

“그러네. 노래 좋다! 이거.(들어도 가사가 뭔지 잘 모른다 ).”

“그치! 요즘 보는 엠넷 프로그램에 나온 밴드인데 이 사람이 가사를 왜 잘 쓰냐면...어쩌고 저쩌고.“


여기서 그의 노래 좋다와 내가 좋다고 말한 부분은 엄밀히 차이가 있지만 나는 신나서 조잘거린다. 그는 운전을 하며 ‘그러네, 오! 혹은 좋다’라며 추임새를 넣는다. 심오하게 파고들거나 현란한 지식을 늘어 놓지 않는다. 그럴때면 나는 멋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존중 받는 기분이 든다. 그저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할 수 있어 기쁘다.


얼마못가 인이는 화면을 끄고 내게 말을 건다. 내가 더 봐도 좋다고 말하면 이따 결과만 보면 돼, 라고 말한다. 정말 더 봐도 좋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편이 역시 더 좋다. 나는 뭉근한 마음이 들어 그의 어깨에 볼을 부빈다. 지금은 함께 있는 시간을 쪼개서 쓰지만 하루종일 붙어 있게 된다면 가끔은 한강에 나와 그는 야구를 보고 나는 책을 읽어도 좋겠다.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내버려두며.


© Happiness from small things








작가의 이전글 그 책의 제목처럼 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