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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chi Mar 22. 2019

감사

정호승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왕벚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동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쥐똥나무는 몇 알


쥐똥만 떨어뜨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내가 굳이 풀잎같이 


작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까닭을 


그제서야 알고


감사하며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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