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그만둔 지 벌써 3개월이다. "몸이 근질거려 그렇게 오래 못 쉴걸?" 주변의 반응이 무색하게,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갔다. 일을 그만두면 일상성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살아보겠다고 꾸역꾸역 하던 운동도 결국은 시간에 쫓겨 그만둬야 했고, 반복되는 야근에 평일 저녁의 삶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주말에는 방전되어 무언갈 시도할 수 조차 없던, 그랬던 시간들이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살겠지 싶어 혼자서 참아내던, 그런 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후배들에게 종종 말했다.
"일과 생활을 분리해야 해. 안 그러면 일상 밸런스 무너지는 거 한 순간이야. 일이 내 삶을 다 책임져주는 거 아니니까. 퇴근할 때 저 문 나서는 순간, 직업도 여기다 내려두고,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해. 몸은 퇴근하는데, 정신은 여전히 회사일로 속 시끄러우면 퇴근해도 퇴근하는 거 아니다. 그게 자꾸 반복되면 바로 만성피로야. 퇴근할 때 마음도 같이 퇴근시키는 거, 그게 가장 중요한 거야."
그랬다. 첫 직장에서도, 두 번째 직장에서도 나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일은 줄어들지 않고, 늘 일에 허덕이며 살았다. 퇴근을 해도, 업무 뒤치다꺼리하느라 쉬어도 쉬는 거 같지 않았다. 그러니 툭하면 감기몸살에, 장염을 달고 살았고, 그래도 영 컨디션 회복이 안되면 살아보겠노라고 수액 맞으며 버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나는 그저 내가 맡은 일을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 욕심이, 내가 나를 갉아먹는 걸까.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나를 못살게구니, 몸도 두 손 두발 드는 거라고.
그런 나에게 친구가 정신 차리라며 한마디 했다. "야. 회사에서 일 잘하는 놈은 뭔 줄 알아?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게 아니고, 일 잘하는 놈 또 일 하나 주는 거야. 못 미더운 직원한테 큰 프로젝트 가는 거 봤어? 정신차려. 그렇게 열심히 일 해봐야 너는 또 큰 프로젝트 떠맡는 거야. 일개미의 최후는 일개미뿐이다 너. 똑같은 월급받고 일하는데, 쟤는 일 못한다는 이유로 자꾸 쉬운 일만 하고, 너한테만 일 몰리잖아. 그거 왜 그러겠어?"
일개미의 최후는 일개미라니. 웃었지만, 씁쓸했다. 그래. 일 잘하는 놈의 최후는 더 큰 프로젝트, 골치 아픈 프로젝트이지. 그러네. 그러니까, 직장생활 2년차까지는 그게 참 어려웠다. 열심히 하는 게 최선은 아니라는 것,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 그걸 몰라 멘땅에 헤딩했다. 힘들게 몸으로 체득한 것들은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직장인은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해야 해." 이런 자조 섞인 농담이 그냥 농담이 아닌 것도 알았다. 직장생활 5년차가 넘어갈 땐, 내가 열심히 그리고 무리해서 일을 하면 그것이 누군가에겐 또 다른 피해가 된다는 것도 알았다. 혼자서 감당하긴 벅찬, 그러니까 업무의 적정선이라는 게 있는데, 상황에 떠밀려 자꾸만 해내다 보면 그것이 마지노선이 아니라 업무의 평균이 된다는 것을. 그건 나에게도, 나의 동료들에게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직장인이 'NO'라고 말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면 부당한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도 그 시기의 중요한 몫이라는 것도.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이지만, 사회에 나올 때까지,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직업은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도구이고 수단이지,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되면 안 되는데, 그게 참 어렵고 또 어렵다.
퇴근할 때 마음도 같이 내려놓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혹시나 집에 가서 읽진 않을까 싶어, 마음의 부담감이라도 줄이고 싶어 가방에 잔뜩 챙겨 온 서류부터 빼야 한다. 퇴근하면 어차피 처리할 수 없는 업무전화나 이메일은 확인하지 않는다. 혼자서 처리하기 어려운 일들은 팀장에게 보고하여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혼자서 고민하는 사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고, 그 프로젝트의 최종 책임자는 실무자가 아니라 팀장이다. 프로젝트의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것과 별개로 중요한 결정들은 프로젝트 책임자가 책임지는 거다. 그리고 실무자가 큰 건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때때로 팀장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실무자가 뭐든 잘할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업무상 감정노동에 휘말렸을 경우, '어디에나 또라이는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 미친 사람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봤자, 이해할 수 없다. 그 사람은 그냥 그런 사람이다. 그 사람이 내뿜는 부정적 에너지는 일단 차치하고, 상황의 팩트만 체크하자. 그런 상황일수록 꼼꼼히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사람은 자꾸 말을 뒤집고, 책임을 전가하므로 업무의 중요한 안건과 결정사항들은 이메일과 문자 등으로 무조건 기록을 남기고, 회의 안건들은 발언자별로 정리해두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라이에게 같이 화내고, 휘둘러봤자 정말이지 나만 손해다. 퇴근해서도 그 또라이가 나한테 뱉은 말들을 곱씹지 말자. 눈물나게 쏙 매운 음식에 맥주 한 잔 먹으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길. 하룻밤 자고 출근해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 쉽진 않겠지만, 뭐든 시작이 어렵고, 시작이 반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내가 나를 걱정하고 챙겨야지, 이 험난한 세상 건강하게 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