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말했었다. 나는.
한라산을 갈 것이라고. 달리기를 다시 하고 싶다고.
산책을 나갔던 초겨울 어느 날.
공원을 산책하다가, 몇 년 전 달리기를 연습했었던, 나의 땀과 한계 그리고 도전을 추억하고 있는 축구장 트랙에 갔다. 뛰지 않고서부터 그곳엔 가지 않았었는데. 오랜만에 가니, 걷기 라인과 뛰기 라인이 나뉘어 있었다. 라인이 나뉘기 전, 축구장 트랙에는 걷는 사람과 뛰는 사람이 뒤엉켜 질서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뛰지 못했던 이유는, 무릎이 다시 아플까 봐서였다.
뛰고 싶지만 무릎이 아플까 봐 두려워서 시작할 수 없었다.
한라산을 가고 싶었다. 가고 싶다는 그 말을 너에게 했던 그때의 나와는 상관없이, 네가 없는 지금도. 내가 원래 그렇게 하고 싶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네가 있을 때에도 혼자 가려고 했었는데, 그때와 지금이 다른 건, 그때는 네가 있었고, 지금은 네가 없다는 것이다. 막상 혼자 가려니 용기가 안 났다.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였다. 엄마에게 한라산에 같이 가자고 했더니, 평소에 산도 안 가고 싫어하는 애가 어떻게 가냐고 했다. 나는 평소에 연습하고, 체력을 키워서 가면 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달리기를 해야 했고 산을 자주 가야만 했다.
그날도 어떻게 축구장 트랙까지는 들어왔지만, 그저 걷기만을 하며, 뛰는 것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5미터 단위로 걷기와 뛰기 글씨가 계속 보이는데, '중간에 멈추더라도 한번 뛰어볼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지나쳐 뛰어갔다. 천천히 달리던 15분까지는 나를 네 번이나 지나쳐간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나를 지나쳐 가도 상관없었다. 원래 승부욕이 없기도 하지만, 나는 다시 뛰고 있음이 그저 좋았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실패하고 아플게 두려워서 시작도 못하고 있었는데, 막상 뛰다 보니 성공할 것 같았다. 그냥 웃겼다. 생각 하나로 몇 년을 못 달렸는데, 내가 달릴 수 있었다니. 그리고는 몇 년 전 내가 목표로 하고 결국 이루어냈던 5km, 30분 달리기를 오늘 다시 이루어냈다.
'나, 할 수 있었구나.'
너를 위주로 돌아가던 내 생각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 하나로. 그때에도 나의 의지였고 지금도 내 의지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앞으로도 원래 그게 나의 의지였다는 듯이 그렇게 살아갈 것이고, 이제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네 생각도 무시할 것이다. 그때의 너를 좋아했던 내 감정이 자꾸 떠오르지만, 무시하고 너의 세상에서 온전히 뒤돌아 설 것이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달리기를 하며 앞으로만 나아가다 보니, 네가 없는 너의 세상에만 머무르고 있던 내가.
너의 세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그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