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 맞은편 근현대사를 담은 복합문화공간 "창비"가 문을 닫다.
전시관람과 인터뷰를 마친 뒤
곧바로 아래층 창비로 내려갔다.
낡은 목재와 빨간 벽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소중한 공간,
유지되어 있는 건물의 잔재들에 감탄을 연발했다.
문화생활을 통 하지 못한 탓에 꽤 오래된 이곳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
아주 멋진 곳이구나!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낡고 따뜻한 계단을 내리며 어느 한 공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깔끔하고 넓은 것도 좋지만, 이런 내부의 자연스러움은 의도한다고 만들어지지 않기에
섬세하게 남겨진 공간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따뜻한 공간을 마주한 순간,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유는 부산역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임대비가 상승을 하는 등의 여러 복합적 이유로
며칠 뒤 지난 뒤 폐점 한다는 안내를 보았기 때문이다.
장소는 사라지지만 운영을 방안을 모색해 그대로 이어갈 것이라 하였다.
작가와의 인터뷰를 위한 북토크 공간들과 그간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보이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참 많이 아쉬웠다.
입구에서 한숨을 쉬며 공간의 소멸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보았다.
여기서 얻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겠지,
그분의 한숨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한 공간에 문화적인 것이 주는 영향력은 크다고 생각한다.
이곳 백제병원은 상징적으로 의미가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담은 곳에 문화적 요새로 만들어졌던 창비, 갤러리도 문화적인 영향이 컸지만,
창비는 수많은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모든 작가들의 아지트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에게는 즐거운 추억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이제 창비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불탈시간이 돌아올 것이다.
나는 프리랜서를 시작하며 아트웍과 글쓰기기반의 채널 운영을 진행했었다.
그간 자기 계발을 위해서 추구하며 노력했던 이상적 포지션은 전문성을 가진 멀티모달형 창작 크리에이터에 가까웠다.
모든 글 쓰는 행위를 통해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도록 이상적 사고를 전하는 것이
나의 1차적인 목표였기에 갈아 넣는 시간만큼 나의 생각이 반영되는 산출물이 남는 것만으로 충분했었다.
산출물이 남는 결론만 생각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며 변화한 것들은 많았다.
그것들은 결국 내게 선명히 보였는데, 글 쓰는 행위가 주는 것은 내게 큰 것을 남겨주었기 때문에
창비부산의 폐점은 이런 나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좋은 기회를 잃게 되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한 달 전쯤 내가 사회에 고백하는 일기장으로 선택한,
글쓰기 기반의 새로운 플랫폼인 브런치에 작가로 합류하였다.
이제는 하고 싶은 더 많은 주제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 것을 새삼 체감했다.
많은 것들이 바뀌어있었다.
경험과 자리가 중요한 것은 당연했다.
창비라는 공간의 의미는 공간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고적인 측면에서의
순기능이 너무도 명확했기 때문에 안타까웠다.
운영했던 취지와 의미를 담아 온 시간은 단순한 경험의 산물로 남아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뇌리에 남아 시대를 이어가는 강한 힘이 있는데, 이는 이어지지 못하니까,
이곳에서는 비평을 위한 공간, 작가와의 대화를 위한 공간, 추억을 위해 마음에 드는 책갈피를 만들 수 있는 공간, 새로 나온 따뜻한 신간을 차례로 쌓아놓은 공간으로 버선발로 달려 나오는 듯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적 의미를 가진 건물의 의미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던 시간을 만들어준 공간.
내가 느낀 창비는 많은 멋짐을 수용하는 소란스러운 곳이었다.
엄마가 말했다.
조용히 작업할 거면 카페보다 창비가 훨씬 편하고 좋을 거라고.
엄마는 가끔 미술수업이 끝난 뒤 창비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공부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창비는 엄마의 추억이기도 했다.
결과물이 중요해지는 요즘, 나의 모교는 미술학과를 폐과 했다.
머리를 깎는 시위에도 철학과와 순수예술과 들은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경험하였다.
나의 전공학과는 사라졌고 아동미술학과만 남았다고 들었다.
이유는 그거였다.
학과 내에 취업률이 낮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취업을 했다.
아동미술학 자격증이 발급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미술학과 졸업장을 보고 나는 왠지 상업적으로 보였던
아동미술을 하기가 싫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미술은 가슴 한편에 담아두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나는 컴퓨터를 전공으로 하는 직군으로 새로운 도전을 했고 학과가 폐과 된다는 소식을
뉴스와 신문을 통해 들었다.
나는 이제 와서 순수예술의 힘에 나의 노력을 보태기로 했다.
창비의 폐점은 내게 많은 의미가 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문화, 예술이 가지고 갈 수 있는 진취적 발전상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창비의 안내문에는 오프라인에서는 볼 수 없지만 계속 이어나갈 거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나는 우리를 달래는 이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며, 나 나름의 자리에서 그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창비에 대한 글을 남기며 쉼표일기 6편을 마무리해 본다.
책과 이야기가 머무는 곳
부산역 맞은편, 붉은 벽돌의 옛 백제병원 건물 2층.
이곳이 바로 곧 사라질 창비 부산이 자리하는 공간입니다.
1920년대 지어진 이 건물은 부산 근대사의 숨결을 품고 있었고, 그 위에 출판사 창비가 지역 독자와 만나기 위한 복합문화공간을 열었습니다.
2021년 4월, 서울 중심이 아닌 부산에서 새로운 출판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지역 밀착과 문화공간이라는 콘셉트 아래, 책방 이상의 의미를 담는 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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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거점이 된 이유
창비 부산은
• 누구든 무료로 들어가 책을 읽고 머물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습니다.
• 북토크, 작가 강연, 독서모임, 지역 작가 소개 등 다양한 인문 프로그램이 운영되었습니다.
• 지역과 도시의 교차점, 여행자와 시민이 섞이는 장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부산역이라는 교통 허브 옆이라는 위치가 이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공간은 “책이 머물고, 사람이 머무는” 장소로, 도시 문화의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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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남긴 흔적
이 작은 공간이 남긴 의미, 세 가지로 나뉩니다.
지역성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거점을 설치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대형 출판사가 지역 독자·문화시장과 직접 만나려는 시도, 이는 지역 문화의 ‘존재감’을 높이는 행위였습니다.
문화생태계
책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이 단순히 판매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독서문화·토크·작가교류까지 포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습니다.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 지역 작가의 기획전 등이 이뤄졌습니다.
도시 브랜드
부산역 앞, 역사적 건축물 위에 문화공간이 열린다는 것은 도시 이미지에 있어서도 긍정적이었습니다.
여행자들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르는 부산의 장소”로 기억하게 만든 요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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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다,
그러나 2025년 11월, 창비 부산은 11월 20일을 기점으로 운영을 종료한다고 발표되었습니다.
폐점 배경에는 임대료·운영비 상승, 출판환경의 변화 등이 언급되었습니다.
이 ‘끝’은 책과 문화 공간이 직면한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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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고 전망하기
창비 부산의 4년 7개월 여정은 끝났지만, 그 과정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 지역에서 출판·문화공간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는 모델은 가능한가?
• 책과 독자가 만나는 문화거점이 도시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 복합문화공간이 도시 브랜드·문화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창비 측은 공간은 닫지만, 그간 이뤄졌던 독서·문화 프로그램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래서 폐점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전환점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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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머물고 이야기가 솟는 곳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은 씁쓸합니다.
이곳 창비 부산이 보여준 것은 ‘도시 한복판에서 책과 문화가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앞으로 누군가가 다시 펼쳐야 할 과제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