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한 번 정리를 하고 넘어갈 필요성이 느껴졌다. 나는 왜 브런치에 글을 쓰는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두 달쯤 됐다. 정확히 올 4월 26일에 첫 글을 쓰고 55일이 지났다. 그리고 41개의 글을 올렸으니 나름 부지런히 끄적였다고 생각한다. 지난 일 년 동안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주로 설거지,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하거나 걸으러 나갔다. 하지만 브런치를 시작하고 난 뒤부터는 몽땅 뒤로 미루고 책상에 앉는 일이 많아졌다.
갑작스럽게 공주로 내려오면서 같이 얘기 나누고 마음 나누던 사람들과 단절돼 버렸고 많이 힘들고 답답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내가 느끼는 답답함을 매번 남편에게 얘기할 수도 없는 일이고 어떤 경우에는 얘기하고 나면 더 답답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 쌓이는 무언가를 털어낼 수단이 필요했다. 나도 남도 상처받지 않을 만한 방법으로.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방법으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버리는 감정과 상황들을 기록하다 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조금씩 정돈되어가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올라온 다른 글을 읽다 보면 과연 내 일상과 내 생각이 기록으로 남길만한 것인가를 생각할 때가 있다. 가히 기록의 홍수 시대. 누구나 작가가 되고 책을 내는 시대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본인의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작가 지망생이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물론 누구나 창작자가 되고 자기 이름으로 창작물을 남긴다는 의미는 작지 않다. 하지만 결과물에 담긴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나도 무언가를 쓸 때 한 줄 한 줄 단어 하나하나에 고민과 의미를 담지만 그 범위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나의 기준과 다른 사람들의 기준은 당연히 다르니까 나의 만족이 누군가에게는 택도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블루스’의 엔딩처럼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야 할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으니까. 대단한 내용이 아니라 해도 사심 없이 기록하는 동안 내가 즐겁고 의미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위한 결론을 내려버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또 하나의 생각, 그렇다면 혼자 쓰고 혼자 보는 일기면 족하지 않나? 변명하자면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다. 관심 가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많아 요즘도 심심치 않게 나와의 약속 내지 다짐을 한다. 하지만 며칠 못 가 흐지부지 되기 일쑤다. 그나마 베란다 실험실과 해금은 아직까지 용케 붙들고 있다. 그래서 브런치를 선택했다. 누군가 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책임감이 생기지 않을까. 꾸준히 이어가려고 조금 더 애쓰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브런치를 시작하고 알게 된 것이 또 있다. 세상에 글 잘 쓰는 숨은 고수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 빅데이터를 통해 노출되는 비슷비슷한 글 말고 어렵게 어렵게 찾아 들어갔다가 나와 마음이 통하는 글을 만나게 됐을 때 느껴지는 동질감 혹은 묘한 동지애는 열 시간의 대화보다 큰 힘을 갖는다. 브런치는 책 보다 훨씬 가깝다. 검증되고 정제된 출판 글은 힘(권력일 수도 있는)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겠지만 브런치의 글은 날것의 느낌이 있다. 그래서 더 친밀하다.
나의 브런치는 소소하다. 구독자 수도 라이킷 수도 그렇다. 그래서 홀가분하다. 부담도 없다. 일로 글을 쓸 때면 자주 부담스러웠다. 이렇게 쓰면 될까? 더 나은 결과물은 없나? 세상에 내놓기 부끄럽지 않은가? 어차피 시청률이 높지 않은데도 늘 부담스러웠다. 브런치에서는 그런 부담을 내려놓았다. 객관적일 필요도 강박적으로 논리적일 필요도 없고 그저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그만이다.
대신 점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어쩌다 지나가는 길에 들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 글을 읽고 작은 마음의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아니, 거창하게 위안이랄 것도 없다. 그저 맞아, 나도 이런 생각을 했었어.. 나도 이런 마음이었을 때가 있었어.. 하는 작은 마음맞춤이어도 좋겠다. 내가 그랬듯이.
이러고 저러고를 다 떠나서 브런치가 요즘의 나에게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거면 됐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