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by 몽유

저만치에서 혼자 앞서가던 계절이

살결처럼 얇아진 기억 위로

밤마다 낙인으로 어둠을 번진다


시린 계절을 맨몸으로 걷다보면

늙은 몸에 하나둘 구멍이 생겨나고

틈마다 우주가 흘러들어

잊힌 죄의 기억마저 새어 나가고 마는 것을


나는 다시 방향을 잃고 머뭇거리는데

허공은 구멍 난 내 발끝을 핥으며

굶주림을 숨기려고 애쓴다


양말은 이제 침묵의 그릇,

가난을 담아두는 그림자,

나는 그 속에 먼지처럼 웅크리지만

끝내 드러나는 건 헐벗은 마음뿐


어느새, 밤은 더욱 짙어지고

바람은 희미한 내 기억을 흔든다

발밑에서 허물어진 양말처럼

희망이 얇은 껍질로 벗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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