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비속에서

by 몽유

가을이 지난다고

이별인 줄도 모르고

비는 우리가 앉던 벤치를 오래 두드렸습니다

동심원으로 번지는 빗물이 발목을 스치며

당신의 얼굴을 그립니다


나는 우산을 접고 서 있었습니다

비에 젖은 나무들이 서로의 어깨를 기울이며

한숨처럼 툭툭 고개를 떨구고

바람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지납니다


당신이 떠난 뒤,

나는 자주 바람길을 따라 걷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물끄러미 하늘을 봅니다

비 내리는 날엔,

낙엽이 흩날리던 기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나

흐르는 빗줄기 사이로 젖어듭니다

가을날의 이별은 늘 그렇습니다


혹시

비 그친 오후,

당신이 이 길을 지난다면

젖은 벤치 위에 앉지 마세요

빗물이 다 그리지 못한

당신의 얼굴을 지우면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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