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 작가 첫 시집
- 『빛나는 다정함으로 버틴 하루들 』에서 찾은 것들.
"늦게 피었다고 해서
늦은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돌아온 시간이 아니라
이제 시작할 시간이었습니다."
늦게 피었다는 말은 때로는 오해를 낳는 말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시간이란 것에 순서를 매기고, 그것들이 모인 삶에도 속도를 부여하며, 또다시 누군가의 계절을 앞서거나 뒤처진 것으로 판단한다.
그 판단이 얼마나 자의적이라거나, 그것으로 인해 파생되어 나오는 결과에는 관심이 없다.
윤슬 작가의 첫 시집 『빛나는 다정함으로 버틴 하루들 』. 이하 『빛다하』는 그래서 더욱 시선을 붙잡는다.
이 시집 『빛다하』는 모든 시간의 규정을 조용히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시작을 여는 문장에서처럼, 여기에서의 ‘늦음’은 지연이 아니라 도착이다. 끝이 아니라 비로소 열리는 문이다.
『빛다하』는 빛에 대한 이야기면서, 빛을 기다려온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시집에 실린 시들은 눈부신 순간을 노래하기보다, 빛에 이르기까지의 어둠과 침묵, 그리고 그 사이에서 버텨온 존재의 내면을 더 오래 응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의 언어는 조용하고, 그 조용함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눌러 담은 시간만큼 깊고, 지나온 계절만큼 단단하다.
그 시간들은 어쩌면 ‘빛나는 다정함으로 버틴 하루들’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몰래 삼킨 한숨과, 끝내 내뱉지 않은 말들, 무너지기 직전에 스스로를 다독이던 낮은 목소리. 피곤한 몸으로도 누군가에게 건넸던 짧은 안부와, 이유 없이 창밖을 오래 바라보던 시간들. 다 식은 하루를 끝내 마시듯 견뎌낸 저녁들. 그 모든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시집의 문장들로 스며들어 있다.
빛나는 다정함은 환하게 드러나는 친절이 아니라, 부서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조금씩 감싸 안는 힘에 가깝다.
그래서 시집은 말없이 증명한다. 어떤 하루들은 다정함 하나로도 끝내 지나갈 수 있었다는 것을.
윤슬 작가의 시는 ‘이제’라는 시간에 머문다.
지나간 것들을 후회로 묶지 않고, 다가올 것을 불안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을, 가장 늦었기에 가장 정확한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태도로 독자에게도 묻는다.
당신에게도 아직 시작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은가.
『빛다하』는 어떤 결론을 제시하는 시집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쉽게 결론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미완의 상태야말로 살아 있음의 또 다른 이름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늦게 피어난 꽃이 더 오래 향기를 남기듯, 시집의 문장들은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마음에 머문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시간이 어디든 상관없다.
시집은 말하고 있다. 빛은 늘, 시작의 편에 있다고.
달고나
국자 위 설탕이
천천히 녹아가던 저녁
골목 끝에 서서
우리는 불꽃을 들여다봤다
젓다 보면 투명하던 것이
엷은 갈색으로 변했다
조금만 더 두면 타버리고
제대로 부풀지 못했다
사랑도 그랬다
달아지는 순간은 짧았고
식어가는 일은 빨랐다
별 모양을 찍어
조심스레 깨물던 입술처럼
우리는 서로를
가장자리부터 잃어갔다
입안의 단맛은 금세 사라졌지만
손끝에 남은 끈적임처럼
너는 한동안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 시는 아주 익숙한 대상인 '달고나'라는 시재를 통해 사랑의 시간성과 소멸을 정교하게 비유해 낸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과장 없이 담담하게 흘러가지만, 감각을 촘촘히 불러오면서도, 일상의 사물을 은유로 확장하고, 절제된 서술로 감정을 오래 붙든다
특히 “너는 한동안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는 문장은 집요하게 남아 있는 감정의 잔여를 절제된 어조로 전달하며, 시 전체를 과잉 없이 마무리한다.
다만 한 가지, 이미 충분히 쌓인 이미지들 사이에서 ‘사랑도 그랬다’는 말은, 독자가 스스로 연결할 여지를 조금 먼저 닫아버리는 느낌도 있다.
이런 직설적 전환을 조금 더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시를 대하는 이가 스스로 만든 이미지로 의미를 완성하는 즐거움이 더 커질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달콤함이 사라진 이후에도 남는 것’에 대해 나직이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윤슬 작가의 시는 그래서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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